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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딘 Jun 07. 2024

좋아하는 것. 상상하기

'나의 문구 여행기'를 읽고서.

어쩌면 이 글의 시작은 제주도 여행이었다.

아내가 '여름문구사'라는 소품샵에 가고 싶다고 했지만 닫혀있어 방문하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와 밀린 집안일과 미뤄둔 일들로 며칠간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그렇게 우리 가족들은 일상으로 돌아왔고, 아내는 나에게 책 한 권을 던져주었다.


'여름문구사'


특별한 이야기가 있거나 새로운 정보를 주는 책은 아니었다.

그저 제주도에서의 일상을 그린 책이었다.

그래도 다음에 읽을 책이 남았다.


'나의 문구 여행기'


부랴부랴 도서관에 책이 있는지 알아보고 빌렸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에 대하여'


겉표지에 적혀있던 소제목이 맘에 들었고, 자신의 꿈이 구체화되는 과정이 담겨있는 책이었다.

또한 이런 방식의 여행도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용기가 좋아 보였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 고민되기도 했다.


나도 문구 참 좋아한다.

집에는 아이가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서 색색의 사인펜, 색연필을 비롯하여 다양한 볼펜을 소유하고 있고, 나름 건축한답시고 다양한 샤프를 소유 중이다. 신혼여행으로 체코에 갔을 때도 굵은 홀더샤프를 구매했었고, 그림 그릴 때 간간히 사용한다.


이 책을 읽으며 소중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상상 속의 나는 문구점 사장이 되어 있었다.


반듯하게 올린 포마드머리에 땡그란 뿔테안경을 쓰고 문 밖의 미래 손님을 향해 옅은 미소를 짓고 있다.

상의는 체크난방에 단단한 베스트를 입고, 언밸런스한 컬러의 넥타이를 착용했다.

바지는 8부 짙은 갈색의 일자 면바지에 발목 위까지 가린 양말과 뭉툭한 구두를 신었다.


문구점의 컨셉은 멋진 서재를 모티브로 분위기를 잡았다.

비록 10평 남짓한 크기이지만 흑색 계열의 페인트를 칠했고, 벽면에는 목재로 선반이라든지 책장 등의 가구를 제작했다. 참죽나무를 사용하고 싶었지만 가격 때문에 저렴한 집성목에 짙은 색상의 스테인으로 마감하여 벽면과 비슷한 느낌으로 마감하였다. 카운터 겸 책상에는 커피머신도 있고, 뒷면에는 창고도 만들어 적당히 재고들을 정리해 두었다.


전체적인 매장의 분위기는 조명이 마무리해 주었다. 3000K의 색온도를 가진 전구로 따뜻한 느낌을 주었고, 주력상품에는 좀 더 높은 색온도의 하이라이트를 이용해 돋보이게 해 주었다.


문구 종류는 서재에서 쓸만한 제품들로 구성했다. 필기류는 1~2종류의 만년필과 적당히 막 쓰기 편한 볼펜, 샤프, 연필까지 있다. 붓펜도 추가해도 좋을 것 같다.


노트는 선, 그리드, 무지노트들과 가볍게 사용하기 편한 드로잉 노트까지 준비했다. 스프링노트는 없지만 속지의 재질을 2~3가지로 준비해 두었다. 그리고 다양한 크기의 포스트잇도 있다.


각각의 필기류와 노트는 사이즈에 맞는 선반 위에 있으며, 제품마다 직접 사용해 보고 느낀 점을 포스트잇에 적어 붙여두었다.(현실로 돌아와서 개인적으로 포스트잇은 아이디어들 적어서 붙여놓고, 분류작업하거나 해야 할 일들 적어서 붙여놓고 다하면 때어 버리기에 좋아서 자주 사용한다. 요즘에는 냉장고 재료들 적어서 붙여두고 체크하는 용도로 사용 중이다.)


한편에는 다양한 재질의 종이에 여러 필기류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이게 다가 아니다. 편지지도 물론 있고, 엽서도 있다.


그 외의 물품들도 존재한다.

책장 칸에는 역시 직접 읽어보고 공유하고자 하는 책들도 판매 중이다. 단, 2~4개의 테마로 큐레이팅하였다.


카운터 옆에는 커피머신을 설치해서 카페도 함께 운영 중이지만 좀 더 문구류에 무게를 두었다.

테이블과 의자 2개씩 2세트가 있고, 개별 조명을 설치해서 원하는 색온도를 소유할 수 있다.

커피 한 모금에 글을 쓸 수 있는 그런 공간이다.

혹은 책을 읽어도 괜찮다.


마침 한 손님이 들어왔다. 많지 않은 제품들 구경하고, 펜하나 엽서, 커피와 쿠키를 구매해서 자리에 앉았다. 쿠키 한입에 커피 한 모금 그리고, 끄적이기를 반복하다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렀고, 올려둔 폰에 버튼을 눌러 시간을 확인해 보고는 괜히 헛기침을 하였다.


또 다른 손님이 들어와서 문구만 몇 가지 구매했다. 포장 봉투를 꺼내 담으며 동시에 켜둔 초 위에 왁스를 녹였다. 봉투를 접고 녹인 왁스를 부었다. 그리고 스탬프를 꾹 찍은 뒤 살살 때 주는 것으로 포장 완료이다. 

포장완료까지 대략 1~2분 정도 소요되는데 번거롭지만 나름 고급스러운 전략이라 생각하고 있다.


여기까지 재미난 상상 해보았다.

좋아하는 것들을 다 하는 듯한 느낌이지만 뭐 하나 놓치고 싶지 않기도 하다.


물론 현실은 하루하루 손님이 없어 피말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현실로 돌아왔고,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를 가지기 위해서는 살부터 빼야 해서 당장은 힘들 것 같다.

그럼에도 그저 막연한 상상으로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현실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 중이다.


그렇게 오늘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열심히 생각 중이고,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다음에는 어떤 상상을 해볼까?


상상은 공짜니까!

맘껏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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