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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이슈 Oct 03. 2021

사랑했어, 엄마  #2 더 많이 받아 놓을걸

더 많이 받아 놓을걸

사랑했어, 엄마 #2 더 많이 받아 놓을걸


 이제 결혼한 지 3년이 조금 넘은 우리 집에는 나와 내 남편의 취향대로 물건들이 들어차 있다. 처음 신혼집을 꾸미게 될 때 여러모로 심사숙고하여 골랐던 만큼 굉장히 만족하며 사는 중이다. 특히 요즘처럼 집 밖으로 나가는 횟수가 줄어든 지금 더욱 그렇다.


 이러한 신혼집이 만들어지도록 공을 세운 사람이 나와 남편만은 아니다. 나와 남편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도움이 곁들여져 있다. 우리 엄마도 그 지분이 높은 편이다.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집 안에 엄마의 흔적들 또한 더욱 집을 편안한 공간으로 만들어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엄마에게 더 많이 받아 놓을 걸 그랬다.



 남편도 나도 재택으로 일하는 시간이 길다 보니 대부분이 집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있다. 배달 음식을 시켜 먹기도 하지만 배달 음식에서 나오는 일회용품 쓰레기도 싫고 더 건강한 음식 재료로 만든 영양가 있는 식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점점 요리하는 시간이 늘고 있는 것 같다.

 요리를 하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양념들을 사용한다. 우리 집 부엌에 있는 소금, 간장, 꿀, 된장, 고추장 모두 엄마가 준 것들이다.


“밥해 먹으려면 이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지.”


 이렇게까지 많이 필요 없다는 말에도 엄마는 자꾸만 뭐를 가져 왔었다. 간장도 종류별로 소금도 종류별로, 고추장은 직접 담가서 가져다줬다. 우리 딸 잘 먹어야 한다며 그밖에도 야채며 과일이며 고기며 계속해서 냉장고를, 식료품 보관장을 가득 채웠다. 그때는 그 모든 것들이 뭐가 그렇게 짐스럽게 느껴졌었는지 그만 좀 주지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것들 모두 다 굉장히 잘 먹었음에도 말이다.

 얼마 전 엄마가 준 된장을 다 먹었다. 된장이 담겨있던 유리병 벽면에 남아있던 된장도 아까워 그 병에 고추장, 다진 마늘, 매실액, 올리고당, 참기름을 넣어 섞어 쌈장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 놓은 쌈장도 언젠가는 다 먹고 그 병을 씻어내야만 하는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다른 것들도, 그렇다. 간장도 소금도 꿀도 언젠가는 다 먹어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엄마가 준 것들이 줄어드는 것을 볼 때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다. 그렇다고 먹지 않고 상하게 되어 버리게 되는 일은 더더욱 참을 수 없는 노릇이라 부지런히 요리를 해 먹는 중이다.


 음식들이 다 만둘어지면 엄마에게 받은 그릇에 담아 먹는다. 그릇들을 고를 때에도 엄마와 티격태격했었다.

 꽃무늬를 좋아하는 엄마와 심플한 디자인을 좋아하는 나, 결국 내 신혼집에서 쓸 그릇이니 내 취향대로 골랐다. 그 이후에도 엄마는 미련을 못 버려 이건 어떠냐 저건 어떠냐 하며 사진을 보내왔었다. 나는 남편이랑 둘만 사는 집에 그릇이 뭐가 그리 쓰냐고 괜찮다고, 필요 없다고 하며 내 취향이 아닌 그릇들을 에둘러 거절했다. 그래도 엄마는 주고 싶은 마음을 접지 못했다. 어느 날 집 앞에는 배달된 택배 상자 안에는 내가 좋아할 만한 군더더기 없이 새하얀 그릇들이 꼼꼼하게 포장된 채 잔뜩 들어있었다.

 내 신혼집이니 내가 좋아하는 대로, 내 취향대로만 할 거야라고 했던 것이 왜 이렇게 후회가 되는지 모르겠다. 그냥 엄마가 딸 챙겨주고 싶은 대로 하게 둘걸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우리 집 부엌에는 엄마의 흔적들이 가득하다. 집밥의 가장 기본이 되는 양념들부터 완성된 음식들을 담는 그릇들까지. 양념들은 먹다 보면 언젠가 다 사라질 것이다. 이미 다 먹어 없어진 것들도 있다. 그렇게 하나씩 사라질 때마다 마음이 좋지만은 않다. 그래도 어느 것 하나 버리는 것 없게 끝까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맛있게 먹어 사라지게 할 것이다. 다 먹어 사라져도 부엌에는 아직 그릇들이 있으니 괜찮다. 부엌에서 엄마의 흔적이 다 사라질 일은 없어서 안심이다.

 


 밥 굶을까 봐 노심초사했던 것 말고도 엄마는 딸에 대한 걱정이 늘 가득했다. 아프게 된 사람이 더 건강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마 당연할 것이다. 우리 엄마도 그랬는데 그만큼 딸에 대한 걱정이 늘었었다.

 밥은 잘 챙겨 먹는지, 전자파 때문에 건강을 해치지는 않는지, 잠은 잘 자는지, 스트레스받는 일은 없는지 딸에 대한 걱정 투성이었다. 건강에 좋다고 하는 것들을 계속해서 챙겨주었었고 그것 중에 식물 화분도 있었다.

 남편은 식물을 화분을 좋아하지 않는다. 식물뿐만이 아니라 그냥 생명체에 대한 책임감을 크게 느끼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개나 고양이는 물론이거니와 식물도 집에 들이고 싶어 하지 않아 했다. 나도 그다지 식물을 좋아하는 편은 아닌지라 그럼 집에 식물을 들여놓지 말자는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내 집이 아닌 나와 남편이 사는 우리 부부가 사는 집이니 어느 한 사람도 불만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내린 결론이었다. 당연히 그 결정을 엄마에게도 전했었다. 그렇지만 엄마의 머릿속에는 딸이 공기 좋은 집에서 전자파로 인한 피해 없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공기 정화에 좋다고 하는 산세베리아와 전자파 차단에 좋다고 하는 스투키. 이렇게 우리 집에 올 때면 자꾸만 화분을 하나둘 가져오는 엄마에게 이거까지만 받고 이제 그만 줘도 된다고 몇 번을 이야기했었다. 그렇게 가져온 화분들을 차마 거절할 수 없어 남편에게는 엄마가 생각해서 준 건데 이거까지만 받겠다며 미안하다고, 내가 다 책임지고 관리하겠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기왕 그렇게 되었던 거 끝까지 다 받았으면 좋았으련만 그러지 못했다.


 일교차가 컸던 어느 날, 내가 감기를 심하게 앓았었다. 아파서 집에서 쉬고 있다는 말을 들은 엄마는 한달음에 달려왔다. 익숙하지 않은 동네라 우리 집과 꽤나 떨어진 곳에서 택시를 내려 헤매고 있었다. 엄마의 전화에 대충 옷을 걸치고 달려 나가자 저 멀리서 엄마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화가 났다. 낙지죽, 잣죽, 야채죽들과 각종 반찬이 담긴 가방과 실내 공기 정화에 좋다는 또 다른 화분까지. 자기가 더 아프면서, 자기 몸부터 챙기지. 자기 몸이 더 성치 못하면서 이까짓 감기가 뭐라고 이 먼 곳까지 무거운 짐들을 들고 왔는지. 예전보다 훨씬 야윈 몸으로 짐을 잔뜩 가지고 서있는 엄마의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 눈물이 왈칵 났다.


 “나 좀 쉬게 두지 왜 왔어? 집도 제대로 찾아오지 못할 거면서 왜 이렇게 많은 짐을 들고 왔어? 결국 내가 나와서 들고 와야 하잖아.”


 나는 화를 내며 울었다. 엄마는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착한 우리 엄마는 내 딸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침대에 누웠고 그런 내 곁에서 엄마는 손을 가만히 잡아주었다. 내 손을 잡고 있지 않은 다른 손으로는 내 이마를 쓰다듬어주었다. 엄마가 살이 빠진 만큼 앙상하고 거칠어진 손이었다. 잠이 들듯 말 듯 한 몽롱한 상태에서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을 느끼며 잠이 들었다. 그 어느 날보다도 편하고 따뜻한 잠을 잤던 것 같다.

 잠을 자고 일어나자 엄마가 죽을 데워주었다. 하나하나 너무나 익숙한 맛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먹어왔던 엄마의 맛이었다.

 죽을 어느 정도 먹고 난 뒤, 엄마에게 말했다. 감사하고 고맙지만 이제 화분은 그만 받겠다고 남편이 화분을 싫어한다고 얘기했었지 않았느냐고 말이다. 엄마는 알겠다고, 미안하다고 화분은 도로 가져가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죽은 남기지 말고 다 챙겨 먹고 몸 찰 챙기라고 했다.


 우리 집에 남은 화분들은 관심받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그 화분들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이미 많이 시들고 죽은 아이들도 있었다. 어떻게든 그 화분들을 살리고 싶었다. 그제서야 분갈이도 하고 영양제도 주고 햇빛도 물도 주기적으로 주었다. 갖은 노력 끝에 겨우겨우 엄마가 준 화분들이 어느 정도 되살아날 수 있었다. 그렇게 또 화분에 점차 무신경해져 갔다.

 지난 겨울, 햇빛을 받으라고 베란다에 내놓았던 화분들이 추운 날씨에 얼어버렸다.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한 내 탓이었다. 까맣게 시든 식물들처럼 내 마음의 상당 부분도 함께 얼어붙는 듯했다. 남편에게 부탁했다. 제발 저 화분들 좀 버려달라고. 나 못 보겠다고. 남편은 알았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 날이 점점 풀리고 봄이 왔지만 게으른 남편은 그냥 그 화분들을 계속해서 내버려 두었다. 그렇게 화분들은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결국 내가 치워버려야겠다고 생각하며 화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예상치 못한 초록 새싹이 화분 안에 있었다. 다 얼어 죽어버린 것은 아니었는지 날이 풀리기 시작하자 조그마한 이파리가 돋아나 와 있었다. 다행이다. 버려버리지 않아서. 항상 일을 미루기만 하는 남편이 답답하기만 했었는데 이렇게까지 고맙게 느껴졌던 적이 없었다.


아직 그 화분들은 우리 집에서 살아 있다. 고맙다 모자란 나의 보살핌에도 살아있어 줘서.

 


 딸의 신혼집에 이것저것 챙겨주고 싶어 하던 엄마였다. 그 마음을 뒤로한 채 최대한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 집을 채우고자 했었던 과거의 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무색하리만큼 엄마에게 참 많이도 받았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잠자리에 들기까지 엄마가 준 것들과 마주하게 된다.


 신혼살림을 사던 당시 다른 가구들은 다 인터넷 최저가나 가성비 좋은 것들로 구매했지만 유일하게 침대만큼은 크고 좋은 걸로 구매했었다. 이스턴킹이라는 생소한 치수의 매트리스를 직구로 구매했는데 그러다 보니 맞는 이불이나 커버가 없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당시에는 아무리 뒤져도 맞는 제품이 없었다. 맞춤으로 제작하려고 하니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놀랐다. 당시에는 금전적 여유가 없었던 탓에 그 금액이 아까웠다. 몇 날 며칠을 인터넷을 뒤져가며 침구를 찾고 있다는 내 말에 엄마는 침대 치수를 물어보더니 뚝딱 맞춤 제작하여 보내주었다. 침대에 딱 맞는 크기의 침구를 볼 때마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어느 날은 침구를 세탁해야 할 때가 된듯하여 남편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오빠, 이거 세탁 맡기는 게 제일 안 망가지는 방법이겠지?”

 “망가지면 새것 사면 되지 뭐.”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남편이었다. 남편은 이 침구가 우리 엄마가 해준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거 우리 엄마가 해준 거야. 난 이 이불 안 바꾸고 평생 쓸 거야.”

 남편 몰래 울었다.


 엄마가 준 건데 기억하지 못하는 남편이 섭섭했다. 남편은 모를 것이다. 남편은 분명히 좋은 의도로 말했던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워낙 집안 살림에 무신경한 남자라 그런 사소한 부분들까지 기억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또한 물건들이 망가지면 워낙 스트레스를 받아하는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이야기하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남편은 늘 말한다. 물건은 물건일 뿐이고 망가지면 새로 사면 된다고. 물건들에 의미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도 물건은 단지 물건일 뿐이라는 사실도 머리로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나는 집에 있는 여러 물건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추억을 되새김하고 기억을 떠올린다.


 우리 집에는 엄마가 준 것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당시에는 그 모든 것들이 고마움보다는 부담스러운 마음이 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기에 그런 보살핌이 필요 없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했었다. 엄마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하고 싶은데 자꾸만 챙겨주는 것이 싫기도 했다. 나 신경 쓸 시간에 엄마 몸이나 잘 챙기지,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감사하기만 한 것들인데 말이다. 다 엄마의 사랑이었는데 그 사랑을 그렇게 생각했던 나는 참 못난 딸이었다. 아쉽지만 못난 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이제는 없다.

 엄마에게 받은 물건들을 보며 남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집에 엄마가 준 것들이 있어서 다행이야. 이럴 줄 알았다면 더 많이 받을걸.”

 남편은 그 말에 걱정스럽게 답한다.

 “그 물건들 망가져서 너가 스트레스받을까 봐 걱정이다. 물건은 그냥 물건이야.”

 엄마에게도 똑같이 들었었던 말이다.

 어렸을 때부터 물건이 망가지거나 물건을 잃어버리는 상황이 생기면 그것에 대해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하물며 엄마에게 받은 물건은 오죽할까.


 “물건 아무것도 아니야. 엄마는 딸이 스트레스 안 받는 게 훨씬 중요해. 물건 하나도 아깝지 않아. 물건이야 새로 사면 되지.”


 아무리 조심하고 아낀다고 하더라도 물건은 망가지고 낡아 버려야 하는 시기가 온다. 엄마에게 받은 물건들도 결국에는 그럴 것이다. 실존하고 있는 것은 언젠가 사라지고 만다. 그릇들이 깨질 수도 있고 침대보가 낡아 헤질 수도 있다. 솔직하게 말해 그렇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면 속상해하지 않을 자신은 없다. 하지만 그로 인한 슬픔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엄마에게 받았던 사랑만큼은 마음속에 새겨져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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