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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쟁이 Oct 24. 2021

마지막 남은 친구

         나의 수많은 단점 중에서 가장 큰 단점은 다른 사람 일에 관심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어떤 계기였는지 어떤 이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기애가 충만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에만 유달리 관심이 많은 편이다. 천운이지 모르겠지만, 리스닝 스킬에 잼병이고 똘기 충만한 순수 AB형인 나에게는 왕따 걱정할 일없이 한결같이 나를 좋아해 준던 친구들이 있었다. 나에게 어떤 매력을 느꼈는지, 세상 다정한 그 친구들과의 인연은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서른 후반이 되도록 싱글로 남아줬던 3명의 친구들이 있는데 올해 2월을 마지막으로 친구들 모두가 기혼자가 되었다. 


         똘기가 제일 충만했던 중학교 시절. 초코파이 얻어먹으러 따라간 교회에서 우연히 J양을 만났다. 나를 좋아해 주던 친구들 중에 제일 이유를 알 수 없었던 J양의 심성은 예수님의 딸이 아니였을까 싶을 정도로 천사표 친구였다. 초.중.고등학교도 같이 다녀본 적 없는 나에게 뜨거운 관심과 애정을 보내주었다.  15살에 처음 만나 지금까지 이 친구를 만난 횟수는 총 30회도 안될법한 녀석인데, 몸은 떨어져 있어도 우정을 지속해 올 수 있었던 건 J양이 노력이었다.


        99학번의 J양은 졸업을 하자마자, 서울에서 첫 직장을 잡고 의상 디자이너로서 온 힘과 노력을 다 쏟아붓었다.  30대 후반이 되어 에너지가 딸린 그녀는 어느 날 결의에 찬 어떤 목소리로 시집을 가야겠다고 했다. 일에 너무 지쳐있다고,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온 거 같다고.. 그래서 배우자 기도를 시작했다고도 했다. 정신없이 달려온 터라 쉼이 필요했을 거라 생각했고, 배우자 기도를 한들 진짜 배우자를 만날 일이 있을까 싶어 예의 바른 얼굴로 친구를 위로했다. 


        하지만 얼마 뒤 부끄러운 목소리로 전화기 넘어 뜻밖의 부탁을 했다.  미국에서 오는 남자 친구의 객실 예약 부탁이었다. 그녀는 소개팅 한 번으로 만난 미국에서 건너온 재미교포에게 첫눈에 반해 10번도 만나보지 않고 결혼을 결심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 얼마 뒤 진짜 청첩장을 건네주었다.  첫눈에 내 짝을 알아보고 태평양을 건너 머나먼 미국까지 가서 살아야겠다는 결심은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이가… 

그렇게 나의 기독교인 친구는 내 곁을 떠났다. 


          두 번째 친구는 대학에서 만난 친구로 가정형편과 성향이 비슷해, 방학에도 영어특강을 들으며 짧은 시간에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우리는 아버지가 없었고 외벌이 어머니 밑에서 착하게 자란, 상승 의지가 너무나 강해 밤낮으로 영어공부에 매진했지만 늘지 않는 영어실력도 그대로인 단짝 사이였다.  


        친구사이였지만 갑을의 관계가 존재할만큼 H양은 한결같이 나를 딸 다루듯 세심하게 보살펴주었다. 그 친구 이름에서 진하게 드러나는 부처님의 인자함이라고 할까. 불교였던 집안의 내력인지 우리가 만나는 동안 화내는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마음이 보살이었다. 탈출 의지가 좀 더 강했던 나는 영국으로 떠났고, 그 친구는 더 좋은 대학으로  편입해 공부도 더 열심히 매진하다, 영어 선생님이 되었다. 


          영국에서 귀국해 다시 그녀를 만났을 때 H양은 어떤 결심이 섰는지 착하고 성실하게만 살아온 지난 삶의 대한 후회나 회환 같은 게 있어 보였다. 어렸을 때 못 놀아 본 것에 대한 후회가 크다며 마음 가는 데로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급 소개팅을 했던 H양은 술에 취해 원나이트를 했다고 했다. 그녀가 원했던 건 방탕한 20대였는지도 모를 일이겠지만 그녀의 계획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 번의 실수로 아기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내가 다음에 그녀를 본 것은 결혼식장이었다.  그렇게 나의 불교인 친구는 내 곁을 떠났다. 


          세 번째 친구는 나와 같은 무교이다. K양은 나의 오랜 직장 동료이다. 한 살 차이에 K양은 같은 싱글에 같은 직급. 같은 호텔리어로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유달리 나와 말이 잘 통하는 친구였다. 나와 달리 주변의 인맥과 어머니의 등살에 소개팅이 끊임없이 들어왔지만, 그녀는 나를 배신하지 않고 싱글로 남아 동남아 여행도, 호주 여행도 같이다니고, 미래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할 수 있는 마음 넉넉하고 라이프 스타일도 잘 맞는 친구였다. 그러다, 부산을 떠나겠다는 나의 뜬금없는 결심에 우리는 헤어지게 됐지만, 해외를 나가는 것도 아니고 같은 하늘 아래 숨 쉬고 있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주도에 와서 새로운 사람들과 수많은 관계를 맺고 유명 관광지 여기저기를 놀러 다니며 삶의 전환점을 맞았던 나와는 달리, 변함없는 삶의 터전에서 친구를 잃었던 K양의 외로움은 생각보다 컸던 것 같았다. 한 달에 한번 부산을 방문해서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눴을때도 별말 없었던 K양은 어느 날 갑자기 남자 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정확히 2주 후 결혼을 하겠다고 했다.  제일 당황스러운 고백이었다. 싱글이었던 친구가 하루아침에 결혼을 하다니…. 사연인즉, 커플메이커를 통해 남자를 만났는데,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일사천리로 결혼을 약속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확히 한 달 후 K양은 결혼식을 올렸다. 

그렇게 나의 무교인 친구는 내 곁을 떠났다.


         내 모든 친구들은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고, 그들에게 싱글로 남아있는 마지막 친구 한 명은 내가 되었다. 쏘쿨하게 보내주고 싶지만,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이 나라는 사실을 우리 엄마가 알면 등짝 스매싱 한대 날아올 것이라는 사실이 나를 더 소름 돋게 만든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남으면서 깨달은 한 가지는, 결혼은 “결심”만 하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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