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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대 Nov 08. 2021

60 너머의 가을

00 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스마트폰 작품사진 만들기> 강좌를 매주 한 번 저녁시간에 수강하게 되었다. 매주 정해진 기일 안에 강의 내용을 활용해서 찍은 사진들을 수강생들의 단체 카톡방에 올려야 하는 과제가 주어진다.

예나 지금이나 과제에 대한 부담감은 한결같지만 좋아서 하는 일인지라 몰입도와 흥미는 예전의 과제 수행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40대 초반에 시골의 가을 풍경을 보며 ‘나는 죽어서 가을이 되겠다’라고 혼잣말을 한 기억이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 가을의 쨍한 햇살과 그 햇살에 반사되는 풀잎의 누런 빛이 왜 그렇게  내 가슴을 절실히 비추어 내었을까? 


가을만이 품고 있는 빛.

어떤 계절의 빛과도 선명히 구분되는 그 빛은 하나의 영혼이 들어앉아 근심 없이 졸고 싶은, 맑으면서도 포근한 그런 공간을 담고 있다.


과제 덕분에 휴대폰을 100% 충전시켜 모처럼 동네 주변을 산책 삼아 느긋하지만 섬세한 탐험가의 눈으로 가을빛을 모으러 다니게 되었다.

산책에 나서기 전에 우리 집 고양이 풍요에게 밥부터 챙겨 주었다.

선명한 그림자를 만들어 내는 가을빛이 풍요의 콧잔등에 닿아있다.




황금빛은 없다.

벼 이삭이 익는 들녘의 빛은 ‘황금빛’이라고 이름 붙여져 신뢰성 높은 공공의 브랜드처럼 사용된다. 하지만 거기에는 황금빛은 없다.

들녘을 쳐다보면서 “아! 황금빛이로군”하고는 바로 고개를 돌려 급히 어디론가 걸어간다면 헛것을 본 것이다.


그 빛을 향해 잠시만 멍하게 서있으면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이리저리 비틀리고 꼬이기도 하면서 들끓어 오르는 감정의 동요를 느낄 수 있다. 

가슴을 뭉클거리게 하는 그 무엇을 언어로 입밖에 내뱉을 단어가 없어 답답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가을 들녘에는 빛이 있다.

그곳에 실제로 있는 빛을 보아야 한다.

마음을 황홀하게 비추어주는 세상의 모든 빛이 모여있다.

그 빛들을 보아야 가을 들녘을 본 것이다.



이 사진을 찍다가 잠시 부동산에서 나온 아저씨가 되었다.

한동안 들녘을 바라보다가 사진도 찍는 나를 발견하고 웬 아주머니가 “아저씨. 부동산에서 나왔어요?”하고 물어왔다. 

“아닌데요, 왜 그러시죠?”했더니 부동산에서 나왔으면 자기 논을 팔아 주도록 부탁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분이 오해할 만큼 사진을 여러 각도로 많이 찍었는데 위의 사진이 가장 마음에 들어 실어본다. 빛과 그림자는 하나다. 떼려야 뗄 수가 없다.





퇴직 후 혼자만의 시간을 저절로 많이 갖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업무상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지금은 사람 아닌 것들을 참으로 많이 만난다.

눈길이 자연스럽게 그것들로 향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무엇이라도 만나야 한다는 습관의 연장선일 수도 있겠다.


갈대를 만났다. 그 옆에 앉아 보았다.

갈대 그림자와 나의 그림자.

가을빛이 친절하게도 두 개의 그림자를 동시에 그려내어 나에게 선뜻 안겨주고는 앞에 피어있는 엉겅퀴 꽃에 가서 세차게 부딪쳤다. 엉겅퀴 꽃이 흔들거렸다.

가을 햇살이 눈부신 날이었다.

상큼한 가을 공기를 뒤흔들어 바람도 살랑거렸다.





해 질 녘에 집 앞에서 또 갈대를 만났다.

그리고 하늘과 구름, 산들과도 만났다. 그것들은 가을빛 속에 들어앉아 조용히 쉬는 듯 보였다.

고요한 음이 흘렀다.

자장가보다는 좀 더 율동적인 선율이었다.

나도 한동안 그 음을 같이 들었다. 온 공간을 가득 채운 음이었다.





청화 쑥부쟁이 꽃의 보라 빛이 절정에 달했다 싶으니까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사람들을 만났다. 동서 내외분과 손녀가 가을 나들이 삼아 우리 집에 온 것이다.



기묘한 일이었다.

그 주에는 인물사진을 과제로 제출해야 하는데 적당한 모델은 없고 시일은 촉박한, 다소 난감한 상황이었지만 달리 방도가 없어서 그냥 운에 맡겨보고 더 이상 고민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다음 날 모델이 알아서 척하고 나타난 것이다.


초등학교 2학년인 그 녀석에게 네 얼굴 좀 찍자고 간곡히 부탁해도 기어코 거절하더니 동서가 집 뒤편에 만발한 청화 쑥부쟁이로 꽃다발을 만들어 손에 쥐어주니 드디어 모델을 하겠다고 나섰다. 나는 그 녀석이 곧 변심이라도 할 것처럼 서둘러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다.


가을꽃 향기.

그 향기는 나이 60이 넘은 나에게도, 9살인 어린 모델에게도 똑 같이 코를 발름거리게 하고 눈을 반쯤 감기게 하는 마력이 있다. 가을빛이 피어내는 향기다.





펼쳤다가 끝까지 읽지 못하고 책장에 꽂아 둔 책들을 많이 갖고 있다.

책 욕심은 많아서  사놓기는 하지만 다 읽어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게으른 탓도 있을 것이다.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에크하르트 툴레 저>

올 가을에 다시 책장에서 꺼내어 집어 든 책이다.

내 손 안으로 여러 번 들락거렸던 책이다. 이번에 곰곰이 따져보니 구입한 지 10년은 족히 되었다. 


‘그냥 한번 뒤돌아 보았는데 그 사이 10년이 흘렀구나’


이 책을 처음 집어 들었을 때는 분명 나의 존재에 대한 많은 의문들을 풀어내고 보다 향상된 인간 삶을 살아내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그대로인 나 자신이 참으로 허망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나를 다시 집어 들었으니 한걸음이라도 나아가면 되지 않겠는가?

가을빛이 나를 집어 들었으니.


가슴 설레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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