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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대 Apr 07. 2022

춤추는 앵두나무

봄이 익어간다.

봄이 익어가는 속도는 내가 생각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

겨우내 기다렸던 꽃피는 따스한 봄날을 오래도록 잡아놓고 싶은 바람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릴레이 계주를 즐기듯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거침없고 미련 없이 빠른 속도로 연이어 꽃들이 피고 진다.

우리 집 뒤편 텃밭에 활짝 핀 매화꽃이 지기 시작할 즈음 입을 앙 다물고 있던 살구꽃 봉오리가 자신의 차례가 돌아온 것을 어떻게 알고 하나둘씩 하루가 멀다 하고 하얀 꽃으로 피어 얼굴을 내밀더니 어느샌가 꽃잎을 떨구기 시작한다.

살구나무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있는 앵두나무가 바통을 이어받아 가지마다 빼곡히 꽃 봉오리를 달고 며칠째 연신 하얀 꽃을 피워내고 있다.

이사를 두 번 다닌 바로 그 앵두나무다.

그 앵두나무가 춤을 추었다.

내가 보기에 그렇게 보였다. 사방으로 쭉쭉 뻗은 가지들에 잔뜩 흰꽃을 달고 살랑거리는 모습이 축제를 즐기는 청년의 춤사위처럼 느껴졌다.

춤추는 앵두나무. 우리 집 텃밭 건너편에 있는 복숭아 과수원을 배경으로 하늘을 향해 힘차게 가지를 뻗고 있다.


춤추는 앵두나무는 사연이 있는 나무다.

지금 살고 있는 시골의 주택으로 이사 온 그 해 6월경.

손위 동서 내외가 5살 배기 손녀딸을 데리고 우리 집에 나들이 온 어느 날,  하필이면 집 맞은편 아래쪽에 주인을 알 수 없는 작은 텃밭에 가지마다 루비가 박힌 듯 강열히 붉은빛을 발하는 앵두를 헤아릴 수 없이 달고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나와 아내 그리고 5살 배기 어린아이는 나무 한 그루 없는 텅 빈 우리 집 마당에 서서 밀려드는 박탈감을 느끼면서 하염없이 그 선명히 빛나는 붉은빛들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사심을 품고 오랫동안 쳐다보면 안 될 빛들임을 서로가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5살 배기가 이윽고 홀린 듯이 그 빛들을 향해 망설임 없이 걸어가더니 포동 포동한 작은 두 손 가득 앵두를 채워서 의기양양하게 돌아왔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와~~~ 용감하네. 괜찮다. 잘했다.”하면서 고사리 손에 담긴 앵두를 날름날름 나의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사실 그 앵두들의 존재를 그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그저 군침만 흘릴 뿐 달리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남의 집 앵두라서 그런지 그 새콤 달콤한 맛이 얼마나 더욱 감칠맛이 나던지 셋이서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그 맛에 마취된 5살 배기는 또다시 앵두나무를 향해 걸음을 옮겼고 나도, 아내도 그냥 그 발걸음을 바라보기만 했다. 오히려 더 큰 무언가를 기대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을 것이다.

되돌아온 녀석의 두 손바닥에 얹혀 빛을 발하는 앵두를 쳐다보며 내가 말했다.

“얘야. 저 앵두나무는 아마도 주인이 별로 신경도 안 쓰는 나무일 거야. 그리고 앵두가 워낙 많이 달려서 우리가 몇 알 먹어도 표시도 안 날 거야.”

이 말은 내가 나를 위한 위로의 변명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집 앞에 사는 이웃분이 어린아이가 포함된 과일 서리를 두 번이나 목격하고서 우리에게 앵두를 한 접시 기증해 주었다. 앞집 마당에는 앵두나무가 있었던 모양이다.

덕분에 우리의 앵두 서리는 두 번으로 끝이 났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시골에 살면서 6월의 집 마당에 앵두나무가 없는 것은 삶에서 겪어야 할 큰 설움의 한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나는 작은 텃밭의 주인이 가족들과 함께 어디선가 나타나서 앵두를 사그리 따가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분들께 서리에 대한 미안함보다는 한꺼번에 홀랑 사라져 버리는 앵두에 대한 미련과 함께 앵두나무를 소유해야겠다는 욕구가 거세게 밀려오는 것을 앵두의 그 붉음만큼 이나 강열하게 느꼈다.

이듬해 이른 봄.

아내와 나는 인근 묘목특구의 규모 큰 농원 주인에게 올여름에 바로 열매를 맺는 튼실하고 키 큰 앵두나무 한 녀석을 골라 달라고 부탁했다. 나무 값이 얼마가 되었던 지불할 의사가 있었다.

그렇게 우리 집의 첫 번째 앵두나무가 정성스레 마당에 심겼다.

그 해 6월.

우리 집의 작은 마당에도 붉은빛의 루비가 햇볕에 반짝였다.

그것은 분명 보석이었다. 내 마음을 환히 밝혀주어 지난해의 결핍감을 한 방에 날려 버리는 그런 보석이었다. 

금세 개수를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가지에 띄엄띄엄 달렸지만 흐뭇하게 그 녀석들을 바라보면서 아내에게 말했다.

“야~~~ 올해 심었는데도 정말 앵두가 달렸네. 우리 이 앵두는 동서 형님이 손녀딸과 놀러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따먹자.”

서리를 방조했던 아내가 대답했다. “네~~~ ^^”




다음 해 봄, 집 뒤편 텃밭에 심을 나무를 몇 가지 구입하면서 아내가 앵두나무를 한 그루 더 심어서 원 없이 앵두를 먹어보자고 해서 추가로 데려오게 되었다.

문제의 발단은 나의 허황한 비교 심리였다.

왠지 새로 데려온 앵두나무가 작년에 처음 심었던 앵두나무보다 모양새가 좋아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아내에게 새로 데려온 녀석을 마당에 심는 대신 첫 번째 녀석을 집 뒤편 텃밭 입구로 옮기자고 제안했고 아내도 내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

첫째 녀석을 땅에서 파내는 삽질을 하면서 1년 동안 자리를 잡고 있던 뿌리 일부가 잘려나가는 것을 보면서, 본질을 떠난 포장지의 환상에 빠져 나의 허세가 기세를 키워 괜한 짓을 하는 것은 아닌지 마음 한 구석이 켕기기는 했지만 시작한 일이라 결국 실행에 옮기고 말았다.

한번 옮기게 된 첫째 앵두나무의 시련은 계속되었다. 

그 이듬해 봄기운이 완연할 때, 아내가 위쪽에 사는 친한 이웃인 안단테네와 공유할 수 있는 부추밭을 만든다면서 또 그 앵두나무를 옮겨 주어야겠다는 것이다.

나는 아내에게 정색을 하며 이번만큼은 안된다고 강력히 반대 의사를 내비쳤다.

<땅에 자신의 뿌리를 내리고 사는 생명을 함부로 옮기는 것은 나무의 입장을 너무나 모르는 처사>라는 게 내 항변의 요지였지만 아내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고 안단테네와 약속을 했으니 집 뒤편 텃밭 끝쪽 가장자리로 이사 장소를 지정해 주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 집 마당에 처음 자리를 잡았던 그 앵두나무는 결국 텃밭 끝자락까지 밀려나게 되었다. 이런 사연으로 인해서 미안함과 함께 앞으로 건강하게 잘 자라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앵두나무를 쳐다보곤 했지만 결국 지난해에는 곁이 쭈글쭈글한 쭉정이 열매만 맺고 말았다.

하지만 올해 봄에는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나간 가지마다 소복이 하얀 꽃들을 피워내며 활기찬 생명의 춤을 추고 있다. 

자기 자리를 잡은 것이다.

아마도 6월에는 많은 앵두를 우리 가족에게 선물해주지 않을까 싶다.

봄이 익어간다.

가슴 설레고 아름답고 감사한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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