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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대 Apr 27. 2022

땅콩 선물

지난밤 사이 모처럼 단비가 내렸다.

아침에 텃밭에 나가보니 촉촉이 젖어있는 흙을 살짝 밟아보고 싶었다.

조심스럽게 두둑 끝의 흙 위에 한쪽 발을 올려놓고 약한 힘으로 지그시 눌러보았다.

부드럽고 폭신한 느낌이 발바닥으로 전해졌다.

이틀 전에 심어놓은 땅콩 모종들의 작은 잎사귀들도 탱글탱글하게 생기가 넘쳐나 보였다.

작년에도 땅콩을 심었다.

포기마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알이 굵어서 무성한 잡초와 함께 자란 것 치고는 만족할 만한 농사 

성적이라고 흐뭇해했던 기억이 난다.

둘째 딸이 친구에게 우리 집 방문 기념으로 그 땅콩들을 선물로 조금 주었더니 며칠이 지난 후 연락이 와서 땅콩이 너무 맛있다고, 그리고 우리 엄마도 이렇게 맛있는 땅콩은 처음 먹어 본다고 하시더라면서 좀 팔게 있느냐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나의 농사 실력에 괜히 뿌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사실 실력이라고 까지 할 것도 없다.

시장에서 사 온 땅콩 모종을 밭두둑에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 놓고 노랗고 작은 꽃이 피었을 무렵 자방병이 흙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포기 주변의 멀칭 비닐을 넓게 찢어주면 나머지는 자연이 알아서 길러주고, 모종도 제 살길을 찾아서 열심히 살아가기 때문이다.

특히, 작년에는 고랑에서 자라난 무수한 풀들이 땅콩 잎을 먹구름처럼 덮고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나는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것이다.'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듯 속삭이면서도 가을에 수확할 수 있는 양을 의심치 않을 수가 없었지만 다행히 기대 이상으로 주렁주렁 달린 땅콩들을 캐내면서 게으른 자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하늘을 바라보며 "감사합니다"라는 말뿐이었다.

올해는 작년보다 땅콩 심는 포기 수를 좀 더 늘렸다.

올 가을에 둘째 딸이 친구에게 더 많이 땅콩을 선물할 수 있도록.

그리고 이 말도 미리 해두어야겠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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