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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Dec 14. 2023

죽음은 감기가 아니다

  나는 노을이 지는 도심을 걷고 있었다. 팔짱 낀 연인들이 수다를 떨며 공중으로 하얀 입김을 뿜고 화장한 여자들에게선 달콤한 냄새가 났다. 붕어빵이 가득 담긴 봉지를 받아 드는 아버지의 손, 그 아래 머리를 바가지 모양으로 잘라놓은 아들, 구세군의 종소리, 십자가, 아직 날이 매섭게 돌아서지 않은 덕에 벤치에 앉아 여유롭게 책장을 넘기는 학생. 나도 그 평화로운 풍경 중 하나였고 그래서 행복하다고 느꼈다. 그러다 멀찍이 무언가 솟아오르는 걸 보았다. 미치광이가 쏘아 올린 미사일인지 우주에 보내는 로켓인지 뭔지 알 수 없었다. 힘껏 솟아오르던 그건 갑자기 추진력을 잃고 땅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각자의 일에 몰두하느라 그걸 보지 못했고, 나는 홀로 그걸 보았다. 근처에 세워져 있던 아무 차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 순간 불길이 사방을 휩쓸고 지나갔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내가 타고 있던 차에 매달렸다. 나는 비명이 잦아들 때까지 문을 걸어 잠그고 눈을 감고 귀를 양 손바닥으로 막은 채 조수석 대시보드에 고개를 처박고 앉아 있었다.


 엊저녁에 나간 출동 탓에 그런 꿈을 꾼 것 같다. 심정지였다. 80대 여성이었고 평소에 부정맥과 심근경색을 앓았다. 함께 살던 딸이 쓰러지는 걸 발견했으니 심장이 멈춘 지 오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 희망으로 자동제세동기의 패치를 노인의 몸에 붙였다. 모니터가 잔잔한 평행선을 그렸다. 바람 없는 호수처럼, 거울처럼 매끄러운 평행선. 그건 내가 아는 한 심장이 완전히 수명을 다했다는 표시였고 그걸 원래처럼 뛰게 만들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단 의미였다.

 따님, 저희가 어머니 소생술 계속하길 원하세요? 내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결정해 주셔야 해요.

 그래도 병원엔 가야 하지 않나요.

 계속해 주세요. 딸이 답했다.

 병원에 가면 죽음이 물러나기라도 하는가. 주사 한 대 맞고 목구멍으로 약을 털어 넘기면 죽은 사람도 벌떡 일어나리라 기대하는 것 같았다. 그런 기대마저 외면할 수는 없어서 본격적으로 소생술을 시작했다. 망자의 입에 뱀 머리 모양 성문외기도기를 집어넣어 숨길을 트고 자동 산소소생기를 연결하고 늙어서 쪼그라든 혈관 이곳저곳을 찔러 겨우 정맥로를 확보하고 자동가슴압박장치를 연결했다. 매달린 것들이 너무 많아서 눈앞의 그녀가 사람인지 기계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슉 슉 슉 슉 6초 간격으로  소생기 노즐에서 허파로 산소를 밀어 넣는 소리, 철커덕 철커덕 철커덕 플라스틱 압착판이 가슴뼈를 압박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착각이었을지 모르나 그 소리가 꼭 노인의 비명처럼 들렸다. 그만 자기를 놓아 달라고, 죽음으로 향하는 문을 막지 말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 외침을 무시하며 기어이 망자를 병원까지 데려갔다.


 어쩌면 어떤 죽음에 대한 가장 현명한 처방은 죽음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무지막지한 기계, 억지로 심장을 뛰게 만드는 약물, 천만 번에 하나 살아날 수도 있다는 희망고문이 아니라. 왜냐하면 죽음은 감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완전한 죽음을 낫게 할 약은 이 세상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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