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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Dec 15. 2023

스테이크는 아름다워

 대학교 1학년 1, 2학기를 연달아 학사 경고를 맞고 휴학한  뒤 내 인생의 적성과 목표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나는 비로소 소질이라 할만한 걸 찾을 수 있었다. 삼겹살 집에서 반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깨달은 거였다. 나는 고기를 잘 구웠다. 부끄럽지만 가히 천재적이라 할 만했다. 일하던 곳은 그 당시 유행하던 돌판 삼겹살 집이었는데 나는 달궈진 돌 위에서 익어가는 삼겹살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처음엔 누구에게나 그 목소리가 들리는 줄 알았다. 그러나 돌판에 닿지 않은 고기의 반대 면이 땀을 흘리기도 전에 고기를 뒤집거나 고기가 거의 튀겨질 때까지 익혀서 맛없게 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보고 고기를 굽는 것 또한 하나의 재능임을 알았다.


 돌판이 달궈질 때까지 기다려.

 지금이야, 뒤집어 줘.

 어서 잘라.

 마르기 전에 가장자리로 밀어줘.


 나 홀로 그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고기 앞의 베토벤이 된 기분이었다. 그 재능을 더더욱 갈고닦은 덕에 이젠 회식 자리에서 고기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범인들의 앞접시에 알맞게 구워진 고기를 올려주는 게 일상이 되었다. 그러면 사람들은 나와 함께 앉은 테이블의 고기가 왜 맛있는 건지 이해하지 못한 채 허튼소리들을 했다. 여기 고기 맛있네. 소주랑 같이 먹어서 그런가. 회사 돈으로 먹어서 맛나네. 근데 고기가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 등등등, 등등등. 그러면 고기 굽기의 천재, 바로 이 몸은 속으로 고기의 ㄱ 자도 모르는 이들의 우둔함을 안타까워하며 홀로 빛나는 재능을 불판 위에서 불사르곤 했다.


 여하튼 그런 내게도 위기가 찾아온 일이 있었다. 어머니가 코스트코에서 스테이크용 소고기를 사다 주신 날이었다. 나는 약 4센티 두께로 썰린 소고기 덩어리를 프라이팬에 올렸고, 평소처럼 고기의 목소리가 들려오길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지금쯤 뒤집으면 되려나, 너무 이른가, 아니 너무 빠른가, 스테이크야, 뭐라고 말 좀 해 봐. 바로 그때, 어디선가 점잖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네, 스테이크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스테이크는 인생이라네. 스테이크가 말했다.

 스테이크는 고기지 무슨 소리야. 내가 말했다.

 자넨 스테이크를 먹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군! 스테이크가 화를 냈다.

 미안해. 스테이크가 인생이란 게 무슨 의미지? 내가 바짝 엎드려 물었다.

 맨 처음 스테이크는 뜨겁게 달군 프라이팬에 구워야 한다네. 젊은 시절에 넘치는 기운으로 자기를 내던지는 것과 같지.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앞뒤로 바싹 구워 육즙을 가둔다네.

 그럴듯하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은 약불로 줄이고 프라이팬 위에 뚜껑을 덮어 익히는 단계지. 바로 중년이야. 이 시기에 접어들면 사람은 인내하고 절제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네. 그렇게 겉뿐 아니라 속까지 고기를 익히는 거지. 그리고 마지막은,

 마지막은?

 그냥 내버려 두는 단계라네. 스테이크가 웃으며 말했다.

 내버려 둔다니? 내가 놀라서 물었다.

 사실 가장 중요한 단계지만 사람들은 종종 그 의미를 간과하곤 하지. 잘 구워진 고기를 한 김 식히는 동안 내부의 열기가 고기 안쪽 구석구석까지 전해지도록 하는 거라네. 노년의 삶이라 보면 되겠지. 그렇게 완성해야 하는 게 스테이크라네. 그리고 인생이라네.

 

 그 말을 끝으로 목소리는 사라졌다. 그리고 내 눈앞엔 겉이 다소 타지 않았나 싶은 스테이크 고기 한 덩이가 남았다.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잘 드는 칼로 고기 옆면을 자르자 연분홍 빛이 꽃처럼 퍼져 있는 스테이크 속살이 드러났다. 한 조각을 썰어 입에 넣었다. 그건 그저 맛있는 걸 넘어서 아름답기까지 한 맛이었다. 인생의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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