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경 Dec 18. 2023

아내가 셀럽입니다

 집중 안 되면 카페에서 보면 되지. 내가 말했다.

 볼 수는 있는데 신경이 쓰여. 아내가 말했다.

 뭐가?

 사람들이 쳐다봐.

 사람들이 당신 책 보는 걸 쳐다본다고? 내가 코웃음을 쳤다.

 진짜라니까.

 카페가 시끄럽다가도 내가 책만 들면 조용해져.

 아니, 진짜라고! 겨우 웃음을 참고 있는 내게 아내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이야기의 요지는 대강 이렇다. 집은 애들 장난감이다 빨래다 뭐다 어수선해서 책을 읽기 어렵다는 게 아내의 주장이었고, 그런 아내에게 나는 집 근처 카페에서 3000 원짜리 따뜻한 커피 한 잔 시키고 여유롭게 독서를 즐기라고 조언을 했다. 그런데 아내가 하는 말이 자기가 책을 손에 집기만 하면 거짓말처럼 주변이 조용해진다는 거였다. 책에 시선을 주는 틈을 타서 주변 사람들이 자기를 면밀하게 관찰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건 공주병도 아니고 주인공병 뭐 그런 걸까. 만 삼십팔 년을 살면서 내가 깨달은 건 세상이 내가 기대하는 것만큼 나를 주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렸을 땐 거기에 대해 적잖이 실망을 했지만 이젠 익숙해졌다. 내가 우리 은하의 변두리 중에서도 나선팔 끄트머리에 위치한 지구, 그곳에서 70억 인구 가운데 겨우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단 걸 알았다. 그러니 자기가 책을 집어 들면 우주가 침묵한다는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얼마나 기가 찼을까는 상상에 맡긴다.


 나는 지금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아내의 모습을 떠올리며 끼적이는 중이다. 웃음이 난다. 남이 책 보는 걸 누가 신경이나 쓴다고. 나도 어렸을 땐 달이 나를 쫓아오는 줄로만 알았지. 타닥, 타다닥, 타다다닥 자판 두드리는 소리, 찰리 헤이든의 베이스와 키스 자렛의 피아노 소리가 카페를 가득 채운다. 사람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래, 사람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럴 리가? 10개가 넘는 테이블에 사람이 다 들어찼는데 조용하다고? 타닥, 타다닥,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재빨리 든다. 그와 동시에 키이이이잉 하며 에스프레소 머신이 원두를 분쇄하는 소리, 왁자한 웃음소리, 휘핑은 많이 올려주시고 시나몬 가루는 빼 주시고 시럽은 세 번 추가해 주세요, 오천 사백 원입니다, 띵동! 배달의 민족 주문! 여기저기서 소리가 터져 나온다. 나는 어떤 이질감을 느끼며 고개를 갸우뚱하고 다시 노트북으로 시선을 가져간다. 타닥, 타다닥, 타다다닥. 그 많던 소리들이 서서히 페이드아웃 되고 다시 자판 두드리는 소리와 음악 소리만 남는다. 갑자기 소름이 돋아 고개는 그대로 숙인 채 눈만 들어 노트북 너머를 본다. 저쪽 구석에 앉은 여자는 분명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다. 그녀가 나와 눈을 마주친다. 그리고 그녀는 황급히 시선을 피한다. 카페에 있는 사람들은 각자의 대화를 하는 듯 보이지만 시선은 오직 한 곳, 나에게 향하고 있음을 느낀다. 테이블에 홀로 앉아 전화를 하는 사람도 그렇고, 내게 등을 보이며 핸드폰을 만지고 있는 사람도 분명 나를 주목하고 있다. 어쩌면 그 핸드폰 화면에는 어떤 부부의 사생활이 실시간으로 송출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로 나와 아내. 이제 막 세상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주목하고 있음을 깨달은 비련의 주인공 부부.


 이제야 가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당신의 어떤 행동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단호박이 들어간 된장찌개, 삼단 도시락 한 칸을 가득 채웠던 초코파이,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방향과 반대로 모는 자동차, 태평양처럼 넓은 주차장에서 굳이 좁은 자리에 주차를 하다가 다른 차를 긁기도 하고, 그래서 올해 자동차 보험료가 또 할증이 됐지, 분명 내가 사과를 받아야 할 상황인데 어쩐지 내가 당신에게 사과를 하고 있고. 그런 모든 일화들이 사실 아내가 의도한 거라면?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평범하고 얌전한 여자의 모습을 벗어나기 위해, 시스템을 탈피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거라면?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게 맞아떨어진다. 아내는 일찍이 우리 부부의 숨통을 죄는 어떤 시선에 저항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의 행동들 하나하나엔 사실 의미가 있었음을, 우리가 세상이 원하는 대로 뜨뜻미지근한 부부로 남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음을, 나는 지금 이 순간 그걸 깨달았고 그래서 당신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신의 엉뚱함마저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테이크는 아름다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