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친정에 갔다. 애들도 데리고 갔다. 겨울바람은 따스하고 바람에 실려 굴러가는 쓰레기도 예쁘다. 나는 들뜬 마음으로 집 근처 통닭집에 들른다.
안녕하세요! 내가 말한다.
뭐 좋으신 일 있나 봐요? 사장님이 답한다.
좋으면 안 되는데 좋네요.
예?
그런 게 있어요. 후라이드 한 마리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가게 앞 간이 테이블에 앉아 맥주 한 캔을 딴다. 맥주가 달다. 달다 못해 꿀이다. 식구들이랑 마실 땐 눈치가 보여 홀짝 홀짝인데 오늘은 한 모금에 다 털어 넣는다. 맥주는 역시 원샷이다. 나는 괜히 전화기를 들어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어어, 새해 복 많이 받아라.
그래, 너도. 웬일이냐?
그냥 새해 인사나 하려고 전화했지.
뭐 좋은 일 있는가. 목소리가 흥분한 거 같은데.
그게, 인생이란 게 참 살만하다고 생각하지 않냐?
미쳤나.
전화가 끊어진다. 옆 테이블엔 거나하게 취한 아저씨들이 담배를 태우고 있다. 오늘따라 담배 냄새가 구수하다. 가끔은 간접흡연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가로등 빛을 머금고 흘러가는 담배연기가 마치 은하수 같다. 다 됐습니다. 사장님이 문을 열고 말씀하신다. 오늘은 만 오천 원짜리 닭 한 마리면 충분하다. 한 마리를 시킬까 두 마리를 시킬까 감자튀김이나 치즈볼을 더해야 하나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은 아내가 친정에 갔기 때문이다. 애들도 데려갔기 때문이다.
현관문을 연다. 집에는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는 집이 쓸쓸하다고 누가 그랬나. 나는 식탁에 통닭 박스를 올리고, 치킨무와 소금을 세팅하고, 스피커의 전원을 켠다. 아트 페퍼의 Art Pepper meets The Rhythem Section 앨범을 재생한다. 통통 튀는 피아노 사이로 색소폰이 여유롭게 걸음을 놓는다. 드럼과 색소폰이 솔로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습은 흡사 재즈바에서 바텐더와 이야기를 나누는 멋쟁이 신사를 떠올리게 한다. 나는 위스키 대신 통닭과 맥주를 먹고 마시며 그 영화 같은 장면의 일부가 된다. 그냥 식사만 하는 건데 즐겁다. 아이들 만화영화 재생용으로 천대받고 있던 태블릿으로 알고리즘의 신이 인도하는 대로 아무 생각 없이 유튜브를 본다. 정치, 과학, 종교, 철학, 만화, 영화, 주제를 막론하고 전부 너무 재미있다고 느낀다. 세상에 아직 이렇게 재밌는 일들이 많다는 것에 놀란다. 맥주 한 캔이 또 동이 날 때까지 태블릿을 본다. 그런데, 갑자기 잠이 쏟아진다. 이 귀한 시간에 잠을 퍼 잘 생각을 하다니. 술을 마시는 게 아니었어. 밤 10시 넘어서까지 책을 읽어줘야 할 존재가 옆에 없다는 것 만으로 긴장이 풀어질 줄이야. 아쉽다. 이 밤이 가는 게 너무 아쉬워.
잠에서 깬다. 시계는 새벽 5시를 가리키고 있다. 평소처럼 침대 옆에 누워 있는 사람이 없는 게 조금 이상하다. 글을 쓰는 동안에 7시면 깨서 아빠 무릎에 올라와 있는 아이들이 없는 것도 이상하다. 덕분에 10시까지 방해받지 않고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그래, 좋긴 한데, 어제까지만 해도 이 순간 시간이 멈춰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는데, 이상한 건 이상한 거다. 완벽하게 맞춘 퍼즐에서 홀로 떨어져 나온 기분이다. 그리고 그런 내가 꼭 내가 아닌 것 같다.
라면을 끓인다. 속도 풀고 기운도 차릴 요량으로 삼겹살도 세 줄이나 구워 라면에 얹는다. 일단 비주얼은 합격이다. 한 젓가락 집어 입에 넣는다. 그런데 도통 뭔 맛인지 모르겠다. 면은 종이를 씹는 것 같고 삼겹살은 고무줄 같다. 라면을 반쯤 먹어갈 즈음 아내에게 문자가 온다. 오후 3시에 친정에서 출발하면 5시면 집에 온다는 이야기다. 신이 난다. 라면도 갑자기 맛있다. 삼겹살을 구워 올린 게 신의 한 수였어. 동시에 5시까지 어떻게 기다리나 까마득하다고 느낀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아내가 친정 가니까 한 100 가지 좋은 점이 있는데 딱 하나 안 좋은 점이 있다고.
보고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