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욕한다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이 마음은 숨겨지지 않습니다. 지금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내 입장이 된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핑계 같다고요. 철딱서니 없는 남자라고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낼모레 마흔이 될 어른의 이성 이전에 아주 오래도록 제 안에 자리 잡은 본성 탓입니다. 거스르려 하면 할수록 정신을 흐리게 만들고 온전한 나를 지워버리는 위험한 마음입니다.
우리는 겨우 한 번 만났습니다. 사실 나는 당신 곁을 지날 때마다 당신을 눈여겨보았습니다. 말을 걸기 전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처음 만난 날부터 용기를 낼 걸 하는 후회를 종종 합니다. 그랬다면, 좀 더 많이 만났다면 지금처럼 그립지 않았을 테니까요. 아니, 어쩌면 더 그리웠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날도 오늘처럼 차가운 날이었습니다. 아파트 입구 울타리 곁에 당신은 또 그렇게 홀로 서 있었습니다. 날이 유독 추워서 덩그러니 누군가를 기다리는 당신이 더 쓸쓸해 보였습니다. 어쩌면 쓸쓸한 건 당신이 아니라 나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핑계 같지만 말을 걸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나는 낯을 많이 가리는 남자라 처음엔 당신을 경계했습니다. 나를 속일지도 모른다고, 더 많이 줄 것처럼 하다가 결국 기대한 만큼도 주지 않을지 모른다고 의심했습니다. 입술만 옴싹거리는 내게 당신이 먼저 말을 붙였습니다.
처음 오셨나요.
네.
그럼 먼저 맛을 보여드려야지. 그리고 당신은 사각 스테인리스 통에 담긴 자투리 족발 하나를 꺼내 내게 건넸습니다. 차갑게 식었지만 아주 맛이 좋았습니다.
어떻게 한 번도 안 오셨데? 여기 자주 오는데.
그러니까요. 달지도 않고 너무 맛있는데요.
그렇죠? 하며 당신은 이만 원짜리보다 이만 이천 원짜리가 양이 훨씬 많다고 꼭 내게만 알려주는 비밀처럼 말했습니다. 오늘 당신이 그리워 인터넷을 뒤져보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꼭 같은 말을 하셨더군요. 요새 말로 그런 걸 플러팅(flirting)이라 한다고 합니다.
안 마시려고 했는데 소주 한 병 사가야겠어요. 사진 찍어도 되나요.
그래주면 고맙지, 어디 올리시게? 블로거?
네, 비슷한 거예요.
기뻐하는 당신 손에 이만 이천 원을 건네고 저녁으로 족발 먹을 생각에 신이 나서 현금 영수증을 끊어달라 말하는 것도 잊었습니다. 당신을 다시 만나면 그때 이만 이천 원 어치 영수증도 함께 끊어달라고 말하고 싶은데 너무 질척이는 것처럼 보일까 봐 걱정입니다. 혹시라도 당신이 기분 상해서 다신 우리 아파트 앞으로 트럭을 몰고 오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조용히 입을 다물겠습니다.
올해 첫눈이 내리고 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그날 이후로 당신의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내가 근무하는 날만 골라서 찾아오기라도 한 걸까요. 매일 저녁 퇴근하는 직장이었다면 한 번쯤은 볼 수 있었을 텐데, 오늘따라 내가 소방관이라는 사실이 참 마음이 아픕니다. 누군가는 전화 한 통이면 맛있는 족발을 얼마든지 배달해 먹을 수 있다고 말하겠지만 그건 그 사람들이 잘 몰라서 하는 소립니다. 그리워도 매일 만날 수 없는 그 맛을, 나의 퇴근 시간과 족발 트럭의 동선이 겹치는 귀중한 순간에만 맛볼 수 있는 그 맛을 아직 몰라서 하는 소립니다.
오늘따라 당신이 많이 보고 싶습니다.
족발이 없어 슬픈 저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