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발이 아팠다. 통풍은 정말 더러운 병이다. 사람이 쓰러져 있다는 신고였는데 신고받고 나가다 되려 내가 쓰러질 것 같았다. 끼적이는 지금도 아프다. 이런 생각하면 안 되는 거 알지만 아침 9시 퇴근까지 출동이 없었으면 좋겠다. 비야 나 좀 도와주라. 너 때문에 미끄러지는 차 없게 조금만 내려라.
좌우로 논을 끼고 있는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십여 분쯤 가니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신고자는 자기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쓰러진 분은 어디 계세요? 묻자, 구급차가 정차하고 있는 위치 바로 좌측 길이 꺾어지는 곳을 가리켰다. 차가 모르고 밟고 지나가기 딱 좋은 위치에 사람이 누워 있었다. 꿈쩍도 않아서 처음엔 심정진 줄 알았다. 주먹의 마디 부분으로 가슴뼈를 문지르자 남자가 기겁을 하며 눈을 떴다. 그는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고, 대답을 듣고는 자기가 집에서 오 킬로도 더 떨어진 동네까지 무의식 중에 걸어왔다는 걸 깨달았다. 미안합니다. 말하는데 술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열받는 일이 있어서 열 병도 더 마셨다고 했다. 미안합니다. 남자는 쓰고 있던 검은색 야구모자챙으로 자기 눈을 가려버렸다. 그냥 내가 죽어버려야 하는데.
남자를 구급차에 실었다. 반쯤 잠이 든 남자의 호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주민등록증에 적힌 주소지를 보고 여기가 댁이 맞냐고 물으니 예, 예, 예, 답이 돌아왔다. 집에 거의 다 와갈 즈음 남자가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어디 가는 겁니까. 댁에 가는 거지요. 선생님이 제 집을 어떻게 알아요. 주민등록증 보고 알았는데요. 이거 혹시 그런 거 아닙니까, 인신매매? 아니니까 염려 마세요. 차가 멈췄고, 처치실 문이 열리면서 남자가 운영하는 방앗간 간판이 나타났고, 그는 놀라는 동시에 안심하며 내 손을 잡고 차에서 내렸다.
전자도어록이 삑삑삑삑 소릴 내며 열렸다. 한 번에 정답을 맞힌 걸 보니 어지간히 정신이 든 모양이었다. 그럼 저흰 들어가 보겠습니다. 말하고 돌아서려 하자 남자가 팔을 벌려 나를 끌어안았다. 정말 고맙습니다. 방앗간 안쪽에서 알싸한 고춧가루 냄새와 고소한 깨 냄새가 훅 끼쳤다. 뜬금없이 외할머니 생각이 났다. 할머니 몸에서 꼭 이런 냄새가 났더랬다. 2월 시푸른 하늘을 품은 함박눈의 냄새도, 할머니 방 간이화로에서 할머니 대신 타오르던 번개탄의 냄새도, 그 냄새를 전부 지우진 못했다. 나는 팔을 들어 손바닥으로 남자의 등을 두드렸다. 그때 쑥스러워서 못한 걸 이제야 했다.
할머니, 잘 지내요? 나는 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