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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정필 Apr 18. 2023

아침밥은 먹고 가야지

사진:네이버 이미지

만둣국 식는다. 빨라 와서 아침 먹고 학교 가야지

아침부터 딸아이와 아들을 부르는 내 목소리가 우렁차다. 하지만 반복되는 내 말에 누구 하나 대꾸를 하지 않는다. 다만, 안방에서 들려오는 드라이기 소리와 문 닫힌 욕실에서의 물소리만 요란하다. 식탁 위, 온기가 가신 퍼진 만두가 안쓰럽고, 맛있는 온도에 음식을 먹지 않는 아이들이 원망스럽다. 그래서 이번에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 적당하게 하고 얼른 나와서 밥 먹어”라며 소리 지른다. 그제 서야 열심히 “똥”머리를 말던 딸아이가 말없이 식탁에 앉는다. 그리고는 만두를 한 입 넣다가 시계를 보더니 “엄마 늦었어.” 하고는 책가방을 들고 식탁을 떠난다. 곧이어 아들이 축축한 머리로 식탁에 앉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만두만 건져먹고, “엄마 시간이 늦어서 사과는 학교 갔다 와서 먹을게요.”하며 숟가락을 놓는다. “에~휴” 식탁을 바라보는 내 입에서 한숨이 나온다. 퉁퉁 불은 만두와 가지런히 깎여진 갈변한 사과 그리고 만둣국 그릇에 담겨있는 수저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나는 다짐한다. ‘내일부터는 아침밥을 하지 않기로.’      


 조금 전 나의 한숨 속에 친정 엄마의 한숨이 보인다. 나의 유년시절 우리 가족은 부모님 아래 팔 남매가 있었고, 그중 네 명이 딸이었다. 그 시절 새벽 5시가 되면 엄마는 가마솥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작은 솥에는 우리가 씻을 물을 데운다. 그러고는 6시 30분이 지나면 외지에 나간 큰언니부터 시작해서 네 자매를 부르기 시작한다. “숙아, 정희야, 옥아, 필아 빨리 와서 밥 먹고 가거라.”라는 말을 부드러운 목소리에서 쉰 목소리가 될 때까지 반복하셨다. 엄마의 말을 잘 거스르지 않는 수수한 둘째 언니는 먼저 밥상에 앉는다. 그리고 화장과 머리치장으로 바쁜 셋째 언니는 “예”라는 대답만 하고는 뒤늦게 밥상에 앉아 숟가락 든다. 그러다가 “빵~”하는 차 소리가 들리면 “엄마 통근버스 왔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밖으로 뛰쳐나간다. 그다음 책가방을 챙기고 나온 나는 밥상을 물끄러미 쳐다보고는 신발을 신는다. 그러면 내 등 뒤에서 “에~휴 이놈의 자식들 밥 한술 안 뜨고 갔네. 언제 내 마음을 알려나. 쯧쯧” 엄마의 속상한 한숨이 들려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침마다 들려오는 엄마의 한숨에는 새벽 일찍 일어나서 밥을 준비한 엄마의 노고가 있었겠지만, 아침밥을 먹지 못하고 학교와 일터로 가는 딸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컸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자식들은 하루의 첫 시작인 아침밥상에 담긴 엄마의 묵직한 사랑을, 너무나 가볍고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은 아닌지, 아침밥상을 차리는 부모가 되어보니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친정 동네는 시골이라서 하루 버스 시간 간격이 한. 두 시간이었다. 그나마 통근버스와 학교 등교시간 때인 새벽 6시부터 오전 8시까지는 1시간 간격으로 버스가 왔다. 그래서 버스를 놓치면 모두 지각이기에, 차오는 시간대에는 어느 누구도 태클을 걸지 않았다. 그리고 시골 버스는 우리가 지각하지 않게 동네 어귀에 들어서면 “빵”하고 기적소리를 울려주었다. 그때를 되돌아보면  밥을 먹지 않았던 솔직한 이유 중 하나는 버스를 놓치지 않는 것도 중요했겠지만, 엄마의 음식솜씨에  “맛”이 빠진 것 같은 허전함... 그것도 한몫을 한 것 같다. 나 또한 유일하게 엄마의 음식 솜씨를 닮았으니, 내 아이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은지 궁금해진다. 그래도 엄마가 잘하시는 요리는 한 가지 있다. 바로 “추어탕”이다.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구수하고 빡빡한  “엄마의 추어탕” 그 맛을 생각하면 지금도 입안에 군침이 돈다.     


 해가 저물고 중학생인 아이들이 집으로 들어온다. 저녁 식사 후 식탁으로 아이들을 다시 불렀다. 그리고 찬찬히 말문을 열었다. “얘들아, 아침마다 밥 먹어라는 엄마 잔소리 듣기 싫지?”라고 묻는다. 둘 다 고개만 끄떡인다. 그래서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밥을 준비하는 엄마의 고단함도 있겠지만, 아침밥을 먹지 않고 학교 가서 배고플 너희를 생각하면 엄마 마음이 속상하다”라는 말을 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엄마, 내일 아침부터 좀 일찍 일어나 볼게요.”라는 말만 남기고 일어난다. 최근에 아이들이 사춘기를 겪고 있는 중이기에, 더 이상의 다정함은 기대하지 않고 나도 등 달아 의자에서 일어난다.     


 나도 내 엄마처럼 바보 엄마가 되어 간다. 다음날, 어제 아침의 다짐은 까마득하게 잊고, 아침부터 계란찜을 준비한다. 계란찜은 바로 먹지 않으면, 식음과 동시에 계란빵은 사라지고, 식감도 떨어지기에 타이밍이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어김없이 아이들에게 외친다. “애들아, 계란찜 식는다. 얼른 먹고 학교 가야지.”라고 말하자, 딸아이가 머리를 묶으며 식탁에 앉는다. 아들도 씻기 전에 숟가락을 든다. 아이들이 가장 맛있을 때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니, 내 얼굴에 엄마 미소가 지어진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 입속으로 사과 한 조각씩 넣어 준다. 그러자 아이들은 “엄마 늦었어요. ‘라고 말하며 쏜살 같이 현관문 쪽으로 뛰어간다. 아~ 오늘 아침 햇살이 유난히 반짝이고 눈부시다. 어젯밤 비로 인한 상쾌함 일까?, 아님 내 기분 탓일까? 나도 알 수 없지만, 기분은 봄처녀가 된다.     


 내 마음속에 엄마의 마음이 비친다. 그래서 나는 늦은 밤 편의점에 가서 막걸리 한 병과 우유를 사서 집으로 왔다. 그리고 밀가루와 계란, 막걸리를 섞어 따뜻한 곳을 찾아 발효시킨다. 내일 아침쯤 막걸리가 발효되어 부글부글 올라온 반죽에 달달한 완두콩과 강낭콩을 잔뜩 넣어서 찜 기에 찔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따뜻한 ‘술 빵’을 가지고 친정으로  갈 것이다. 술 빵을 본 엄마의  얼굴에 함박꽃이 피겠지. 최근에 구순을 넘기신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달달 술 빵’이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학창 시절, 아침마다 엄마를 한숨짓게 했던 날들에 대한 막내딸의 간사한 속죄는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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