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쓰는 제주도
섬
무작위로 고른 어떠한 날로부터
시계도 친구도 보지 않고 지내고 맞은
며칠 후의 어떠한 그날
선글라스를 쓰고 밖을 나서면
남색 하늘에 푸른 물결의 파도 드리워져 있고
섬처럼 시간과 육지로부터 동떨어져 있다
시간을 얕본 적 없기에
마음속으로 시간을 세지 않고
하늘을 우러러본 적 없기에
색깔로 밤낮 구분하지 않았다
젊은이는 범섬에 살았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아도
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곳에서
육지처럼 보이는 섬을 지켜보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발대는 땅이
어디로부터 흘러나오는지 잊기로 했다
땅은 솟아있는가 떠있는가
모호한 질문을 잊고 밤낮을 잊고
달리는 범섬의 젊은이는
육지와 섬이 멀어져 가는 것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서귀포에서 남향으로 바다를 바라보면 범섬이 보인다. 무인도이지만 갯바위 위에서 열심히 취미 생활을 즐기는 낚시꾼들과 다이버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범섬은 제주도의 많은 부속섬들 중 하나다. 총 70개가 넘는 유·무인 부속섬을 모두 합쳐 제주도가 된다.
제주에 온 지 3년이 넘었다. 직장을 비롯한 현 생활에 굉장히 만족한다. 제주에 정착했다는 기분이 들면서도 더 좋은 기회를 찾아 떠날 마음도 없진 않다. 어찌 됐든 제주도민인 나는 이런 의미에서 아직 섬사람이 덜 됐다. 나의 많은 것들이 여전히 육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떠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존재하는 한, 정착했다고도, 섬사람이 됐다고도 말할 수 없다.
섬은 떠있다고 표현을 한다. 바다에 둘러싸여 떠있어 보이지만 사실 육지든 섬이든 똑같이 지각 밑바닥에서부터 솟아 있는 땅이다. 그럼에도 육지와 섬은 구분되어야 한다. 제주도는 한반도에 부속되어 있고 범섬은 제주도에 부속되어 있다. 세상은 하루의 시작을 아침으로, 땅의 시작은 육지로 정했다. 이 사실 잊고 사는 사람은 정착하지 않고 동동 떠다니는 삶을 살게 되겠지. 유랑은 정착에 부속된 개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