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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학 Jan 09. 2023

앞 / 하상만

시 읽기

앞 / 하상만


나이가 들수록 생각을 잘 택해야 한다

어떤 친구들은 부동산을 택했고

어떤 친구들은 주식을 택해서 살아가고 있다

뇌사 상태에 빠진 사람이 호흡을 멈추지 않는 것을 보고

생명이란 무엇일까, 이게 요즘 내가 택한 생각이다

친구들은 점점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나는 점점 어디에서 왔는가를 고민한다

이런 생각을 하고부터 친구들과 대화가 되지 않는다

술자리에 끼어도 재미가 없다

술 한 잔 걸치고 대리기사를 불러 집으로 간다

음악을 듣다가 아저씨 앞으로 한 곡만 돌려보세요,라고 했더니

아저씨가 한 곡 앞으로 돌린다

들려오는 노래는 방금 듣던 노래의 다음 곡이었다

나는 방금 지나온 곡을 듣고 싶었다

아저씨에게 앞은 나와 반대로

지나온 삶이 아니라 앞으로 살아가가야 할 삶이었다

모두가 앞을 향해 가고 있었다




연말연시에 읽기 좋은 시다. 연말연시가 주는 몽글몽글한 기분이 있다. 아쉬운 마무리와 설레는 시작이 함께 찾아오는 한 달 남짓의 기간 동안 사람들의 마음은 앞과 뒤를 동시에 향한다. 바뀐 연도와 나이에 익숙해져야 하는 기간인 것이다. 여담으로 한국식 세는 나이가 올해 개정된다는데, 1월 1일에 한 살을 더 먹는 기분이 사라지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화자는 '생각을 잘 택해야 한다'라고 얘기한다. 보통 자주 쓰는 '선택을 잘해야 한다'는 표현과는 의미가 사뭇 다르다. 전자 표현은 무형의 가치를, 후자는 유형의 가치를 대변한다. 술자리에서 금전을 주제로 얘기하는 친구들과는 상반되게 화자는 생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친구들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할 때 화자는 '어디에서 왔는가'를 고민함으로써 삶의 같은 위치에서 어느 방향을 더 중점으로 두는지에 대한 차이가 나타난다. 지향하는 방향이 상반된 두 부류에게 대화가 통할리 없다. 화자에게 돈 얘기는 재미가 없지만 그럼에도 계속 귀를 기울여야만 하는 주제다.


하상만 시인은 '앞'이라는 단어가 가진 모순된 두 가지 의미로 삶을 통찰한다.'앞 전(前)'은 지나온 과거(前日)를 수식하기도 하고 다가올 미래(앞날)를 수식하기도 한다. 화자는 자신을 제외한 사람들, 친구들과 대리 기사가 전날이 아닌 앞날에 중점을 두고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생각을 잘 택하는' 행위는 '앞'을 과거에 둘 것인지, 미래에 둘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다. 뇌는 죽었지만 심장이 살아 있는 사람을 죽었다고 볼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하는 화자는 어느 쪽을 앞으로 택해야 할까?


'생각을 택한다'는 표현이 재밌다. 돈을 투자할 수 있는 선택지와 생각을 할 수 있는 선택지의 범위는 무수히 차이가 난다. 꼭 술자리가 아니어도, 요즘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대화의 주제가 결국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나이대에 따른 공통된 대화 주제가 마치 정해져 있는 듯하고 실제로 그런 대화를 해야 머리도 맑아지고 즐겁다. '뇌사 상태의 빠진 사람을 사망자로 볼 것인가'에 대한 주제를 문득 던져 친구들과 찬반의견을 나누기엔 아무래도 어려움이 있으니까. 돈도 충분히 무거운 가치인데, 대화 주제로는 꽤 가벼워졌다.




시민동네 시인선 [오늘은 두 번의 내일보다 좋다] /하상만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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