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02) 친구란 무엇일까
주제 제안 및 작성자
금일 업로드되는 브런치는 진지한 미술관의 발행임을 알립니다.
골초부엉이
게으른뚱냥이
침 뱉는 알파카
빨간 볼락
진지한 미술관 : IT 기술 특화 작가 및 강연자
솔직한 대화를 통해 시작된 질문
"나 요즘 좀 힘들어. 네 고민을 들어주고 싶은데, 우리 사이가 좀 더 좋아졌을 때, 다시 들어줄 수 있을 것 같아. 우리 시간을 좀 가지자"
오랜 친구에게 이 말을 꺼내는 건 쉽지 않았다.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여겼고, 그게 친구 사이에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정적 과부하는 점점 쌓여갔고, 결국 나는 용기를 내어 솔직하게 말했다.
친구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그 말을 들은 친구는 이때까지 그렇게 생각해 왔냐며, 손절을 하자는 거냐며 화를 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다시 대화를 나눴다. 친구는 말했다. "지적받은 건 기분 나쁘지 않아. 다만, 그동안 쌓아뒀다가 한꺼번에 얘기한 게 서운했어. 나도 자립할 수 있는 힘이 부족했던 것 같아."
결국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어찌어찌 잘 마무리되었으나, 친구란 무엇인가에 대해 문득 궁금해졌다.
친구란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었나?
이 경험은 내게 하나의 의문을 남겼다. 나는 친구를 '주고받는 관계'라고 생각해 왔다. 서로의 고민을 들어주고, 힘이 될 때 함께하고, 좋은 것을 나누는 관계, 하지만 그렇게 정의하는 순간, 친구 관계는 일종의 '거래'가 되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보면 우리는 '예쁜 친구', '잘 나가는 친구'와 친해지고 싶어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그들에게서 무언가를 '받고 싶은' 욕구 때문은 아닐까? 함께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거나, 나도 더 나은 사람이 될 것 같은 느낌, 혹은 주변에서 부러워하는 시선 같은 것들 말이다. 그리고 그런 친구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친구관계가 성립한다.
결국 친구 관계도 결국 교환의 논리가 적용되는 게 아닐까?
친구의 정의를 찾아서
사실 나는 친구 관계를 맺는 것이 늘 익숙하지 않았다. 어떤 관계가 '진짜 친구'인지, 어디까지 주고 어디까지 받아야 하는지 명확한 기준이 없었다. 그것이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그래서 묻고 싶다. 친구란 무엇인가? 친구 관계에도 경계가 필요한 걸까? 그리고 '주고받는다'는 표현은 정말 거래적인 것일까, 아니면 건강한 관계의 본질일까?
친구라는 단어는 누구에게나 익숙하지만, 그 의미는 생각보다 모호하다. 따라서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친구'라는 관계를 다시 정의해 보고자 본 주제를 제안하게 되었다.
친구 관계의 본질: Give and take
이번 주제를 준비하며, 다소 철학적인 자각에 이르렀다.
친구 관계는 Give and take 가 맞는 것 같다.
이 말이 차갑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친구와 나누는 모든 것 (함께하는 시간, 감정, 대화, 웃음) 은 일종의 '자원'이다. 그 자원을 주고받을 때 관계는 유지되고, 한쪽으로만 흐를 때 관계는 무너진다.
그렇다면 '같이 보내는 시간의 즐거움' 자체도 자원을 나누는 행위가 아닐까? 함께 있을 때 느끼는 편안함, 웃음, 공감—이것들은 모두 감정적 에너지의 교환이다.
친구의 네 가지 가능성
이러한 관점에서, 나는 친구를 다음과 같이 정의해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를 '그때'로 돌아가게 해주는 존재다
어릴 적의 나, 꾸밈없는 나, 계산 없는 나. 오랜 친구를 만나면 자연스럽게 그 시절의 나로 되돌아간다. 말투도, 농담도, 생각의 결도 그때처럼 가벼워진다. 친구는 일종의 '시간 여행 장치'처럼, 과거의 나를 다시 꺼내게 만드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 없이 만날 수 있는 사람이다
"오늘 뭐 해? 나와." 이 한마디에 별다른 이유 없이 나갈 수 있는 사람. 만남의 목적이나 의미를 따지지 않아도 되는 관계. 그저 함께 있는 것 만으로 시간이 흐르는 사람. 이것이 친구의 가장 단순하면서도 본질적인 정의일지도 모른다.
만나는 시간이 즐거운 사람이다
즐거움이란 감정도 일종의 교환이다. 내가 웃으면 상대도 웃고, 상대의 이야기에 공감하면 나도 위로받는다. 이 감정적 에너지가 균형 있게 오갈 때, 우리는 그 관계를 '친구'라고 부른다.
자원을 나누는 관계다
시간, 감정, 에너지—이 모든 것은 유한한 자원이다. 친구 관계란 이 자원을 서로 나누는 행위이며, 그 나눔이 공평하게 느껴질 때 관계는 지속된다. 이것을 '거래적'이라 부르기보다는, 건강한 관계의 조건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여전히 남은 질문
하지만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친구 관계에서 '주고받음'이 균형을 이루지 못할 때, 그것은 더 이상 우정이 아닌 걸까?
한쪽이 더 많이 주는 관계도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까?
과연 '계산 없는 우정'이라는 것은 존재할까, 아니면 그것 역시 무의식적인 교환일 뿐일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예시바 살롱 구성원들과 함께 논의해 보았다.
(1) 친구는 자발적 관계다
가족이나 직장은 끊기 어려운 관계다. 혈연으로 묶이거나, 생계를 위해 유지해야 하는 의무적 관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는 다르다. 친구는 '끊을 수 있는 관계'다. 그래서 더 자발적이고, 더 진정성 있는 선택이 된다.
어떤 친구와는 진지한 이야기를, 어떤 친구와는 가벼운 농담을 나눈다. 서로가 원하는 방식으로 연결되는 것, 그것이 진짜 친구다.
물론 친구 관계에서 시간, 감정, 에너지를 가족관계보다 더욱 깊게 교환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는 상호적 교환이며, 그 균형이 무너질 때 관계는 멀어진다.
즉, 친구란 원하는 사람과의 자발적 교류다.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기에, 그 관계는 더욱 소중해질 수 있다.
(2) 친구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다
"같은 반에 있다고 친구는 아니다."
즉, Classmate와, Friend는 같은 의미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자주 보는 사람'이 친구지만, 누군가에게는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이 친구다. 또 다른 사람에게는 '나답게 있을 수 있는 관계'가 진짜 친구다.
관계에는 단계가 있다. 찐친, 지인, 동료. 그런데 우리는 이 단계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은 채 관계를 맺고, 그렇기에 상처받는다.
서로의 친구관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부터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좋은 관계를 위해서는 '나의 친구 정의'를 언어화할 필요가 있다.
친구라는 단어의 표기는 똑같지만, 그 의미와 무게감은 사람마다 다르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기대에 충족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에 관계는 쉽게 어긋난다.
(3) 사회적 관계와 친구는 다르다
우리는 같은 학교, 같은 동아리, 같은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을 '친구'라고 부른다. 하지만 사회적 맥락 안에서의 친근감이 곧 친구일까? 실은 그건 네트워킹이었을 수도 있다.
왜 친구 관계는 이토록 혼란스러운 걸까? 친구란 정의되지 않은 관계이기에 혼란이 생긴다. 반면 연인, 가족, 사제관계는 모두 사회적으로 정의되어 있다.
연인 : 서로 사랑하는 사이
가족 : 혈연으로 맺어진 사이
사제 :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는 사이
그러나 ‘친구’는 정의되지 않은 관계다.
사랑하듯 깊이 연결되지만, 연인은 아니고
의무처럼 책임지지만, 가족은 아니다.
서로 배우고 영향을 주지만, 사제도 아니다
이처럼 친구 관계는 사회적으로 규정되지 않은 ‘공백의 관계’이기에
그만큼 해석의 여지가 많고, 따라서 혼란도 많다.
(4) 이성 간 친구는 가능한가?
많은 사람들이 '남사친', '여사친'을 연애의 후보로 여긴다.
하지만 연애라는 콘텐츠를 제외해도 즐거운 사람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친구의 본질은 감정적 가능성의 유무'가 아니라, '서로의 세계를 존중할 수 있는 거리감이다.
한편, 미래의 연애나 오해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의문도 남는다. "그렇게 닫아두면 새로운 친밀감도 막히는 건 아닐까?"
이성 친구와의 관계는 결국 내가 얼마나 스스로에게 떳떳한가의 문제다.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나 자신과의 약속이 중요하다.
언어화되지 않은 관계의 약속
우리는 연인이 되기 전 "우리 사귀자"라는 말을 하듯, 친구 관계에도 어떤 경계가 필요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그것을 명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혼란스럽다. '이 사람은 내 친구일까? 아니면 그냥 아는 사람일까?' '이 정도 부탁은 할 수 있는 사이일까?' '나는 이 사람에게 어디까지 솔직해도 될까?'
친구는 '규정하지 않고도 유지되는 관계'로 착각했기에 더욱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좋은 관계는 늘 정의로부터 시작된다.
연인 사이에는 '사귀자'는 말이 있고, 부부 사이에는 '결혼'이라는 약속이 있으며, 직장 동료 사이에는 '업무'라는 명확한 경계가 있다.
그런데 친구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당신에게 친구란 무엇인가? 그리고 당신은 친구에게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가?
예시바 살롱을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면?
https://superb-crepe-f8a.notion.site/yeshiva?pvs=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