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천시가 어디 있는 도시예요?
아니.. 그게 도시겠냐?

(RR02) 한국어 통역이 필요한 한국인

by Yeshiva Salon

주제 제안 및 작성자

금일 업로드되는 브런치는 빨간 볼락의 발행임을 알립니다.


골초부엉이

게으른뚱냥이

침 뱉는 알파카

빨간 볼락 : 디지털 헬스케어 프로덕트를 만드는 간호사

진지한 미술관


1. 주제 선정 배경

2. MBN 뉴스 캡처.png MNB 뉴스 캡처본

같은 언어, 다른 의미

우리는 아주 오래 전, 중국이 만든 한자로 소통했다.

그러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며, 소통을 할 수 있는 우리만의 언어가 등장했다.

물론 그때의 한글과, 지금의 한글을 비교하자면, 다소 차이가 있으나, 언어체계의 뿌리를 만들어낸 것은 세종대왕임을 모두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지금 과거에 쓰던 한자와 병용해 한글을 사용하고 있다.

때로는 한글로 간결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말을 한자로 표현하기도 하고, 한자로 표현되는 것들을 한글로 풀어쓰기도 하며 말이다.


그러던 중 최근 부쩍 여러 SNS와 커뮤니티를 통해, 한자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케이스들을 접하게 되었다.

스크린샷 2025-10-25 134445.png 조금 더 풀어쓰는게 좋을지도..


특히나 이러한 문제는 신세대들, 즉 MZ세대에서 더욱 대두되는 것 같다.

비단 한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젊은 층 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단어들과 트렌드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기성세대들을 포함하여, 이번 주제를 다루게 되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

언어가 가지는 의미는, ‘소통’이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인 소통을 위해서는 문자 그 자체인 언어만을 공부하고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

소통을 하고있는 대상의 지식수준, 가치관, 그 대상을 만들어낸 문화까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한국의 기성세대와 신세대는 같은 ‘언어’를 쓰고 있지만, 서로의 가치관과 배경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급격한 경제 성장이 이루어지며, 기성세대가 살아왔던 그 시대와, 현재 신세대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가 엄청난 괴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4. 경제성장 비교.png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밟아야하는 첫걸음이다.

우리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다름은 종종 ‘그름’으로 해석이 되며, 그에 따라 더욱 배타적인 관계가 형성되는 것 같다.


나는 다름이 어떻게 잘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를 멤버분들과 살롱에서 다루고 싶었다.



2. 빨간 볼락의 주관


틀린 사람은 없다.

그렇다, 틀린것이 아니라, 다름이다.

그러나, 이 다름을 ‘그름’으로 인식한다면, 우리는 평생 서로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우천을 ‘비가오는 날씨’로 표현하든, ‘Rainy day’로 표현하든, 이는 그저 하나의 현상을 설명하는 여러 형태의 표현법이지 않을까?


언어는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던 무형의 개념을 특정 대상에 입히는 도구일 뿐, 누군가를 평가하기 위한 수단이 아닐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앞으로 소통을 어떻게 해야 할까?

소통의 방향성을 정하고자 한다면,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이 어디인지를 먼저 고려해보아야 한다.

우리에게 부족한 점은,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다.


그리고 이번 주제를 통해 내가 목표로 했던 지점은, 우천시, 등의 한자어들로 시작을 했으나,

궁극적으로는, 세대간의 언어적, 문화적 차이를 줄일 수 있는 소통방법을 논의하는 것이었다.


5. 퉁퉁 퉁사후르.jpg 퉁x9 사후르

한동안 밈이되어, 유튜브 알고리즘을 점령했던 퉁퉁퉁 사후르를 예로 들자면,

기성세대는 퉁이 왜 무조건 9번이어야 하는지, 이것이 왜 밈이되었는지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하는 것과 같이, 신세대 또한 여전히 사용되고있는 쉬운 한국어 단어들이 있음에도, 어려운 한자어들을 왜 쓰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케이스가 있다.


이런 차이들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공적 대화보다 사적 대화가 주류가 되고있다.

우리는 불과 15년 전 까지만 해도, 신문, 뉴스 등을 통해 ‘정제된 단어들로’ 정보를 습득할 수 있었다. 이러한 매체들은 단방향성을 가지고 있음에 따라 , 작성된 내용을 습득할 수 있을 뿐, 그 내용을 토대로 다른 독자들과 이야기한다거나, 언론사와 직접적으로 소통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1. 신문보는 인구.png 종이신문과 인터넷신문의 독자 비율 비교 (미디어오늘, 2019)

그러나 이 흐름은 위 통계에서 알 수 있다시피 변해가고 있다.

종이신문의 구독자는 1/3수준으로 급감하였으며, 인터넷신문의 독자는 오히려 더 늘어났다.

더 이상 사람들은 일방적인 정보습득을 하지 않을뿐더러, 인터넷 신문 기사의 댓글 기능을 통해 독자들간의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따라, 활용되는 단어와 문화도 당연하게 바뀌고 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Meta 플랫폼 생태계에 속한 ‘Thread’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반말로 소통 하는 것이 하나의 암묵적인 룰로 여겨지고 있다.


서구권이라면 모르겠지만, 언어의 계층과 장유유서의 한국사회에서 50대와 10대가 반말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감히 상상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다.


6. 도지사 반말 트렌드.jpg 정치권에서도 참여하는 트렌드...

물론 이는 여전히 온라인 상에서, 그 중에서도 일부 플랫폼들에서만 이뤄지고있는 변화다, 오프라인에서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어려워하고, 서로의 입장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 어떤 대화를 하게되고, 어떤 문화를 형성하게 될까?


또 더 나은 방향을 위해 세대 간 무엇을 조율해야 할까?



3. Yeshiva Salon에서 논의된 언어 / 문화의 격차

(1) 언어가 점점 함축에서 벗어나고 있다.

과거 우리가 사용해왔던 혹은 학습해왔던 언어들은 함축적이고, 추상적이었다.

즉, 짧은 글자속에 많은 의미를 담아내는 것이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보다 훨씬 미학적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며, 그것이 곧 사회의 지식층으로부터 발행되는 글들이었다.


예시로 우천(雨天), 중식(中食), 석식(夕食), 함축(含蓄)을 풀어쓰면 아래와 같다.

우천(雨天) : 비가오는 날씨

중식(中食) : 점심에 먹는 끼니

석식(夕食) : 저녁에 먹는 끼니

함축(含蓄) : 깊이 압축하여 담고 있는 상태가 되는 것

한자어 중심의 함축적인 글은 풀어서 이해해야하는 절차가 추가됨에 따라 지식형 언어로 분류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는 보다 직접적으로, 더욱 빠르게 정보를 습득해야한다.


마우스 스크롤을 한 번 내리면 새로운 온갖 뉴스 헤드라인들이 쏟아지고, 클릭 한 번에 많은 양의 새로운 화면과 내용들이 보여진다.


즉, 사람들이 함축적인 단어보다 풀어쓰는 단어를 훨씬 더 많이 접하는 환경에 노출됨에 따라, 한자어의 의미 자체를 모르게 되는 것 또한 당연하다.


정리하자면, ‘우천’이라는 단어를 굳이 해석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다.

언어가 ‘지식인의 전유물’에서 ‘모두의 도구’로 내려온 셈이다.


이건 퇴화가 아니라, 언어의 민주화라고 볼 수 있다.

정보를 쉽게, 정확히, 그리고 빠르게 주고받기 위한 진화인 것이다.



(2) 언어가 문화를 바꾸는 것 혹은 문화가 언어를 바꾸는 것은, 닭과 달걀 중 무엇이 먼저냐와 같다.

언어와 문화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언어는 문화를 담는 그릇이면서, 동시에 문화를 만들어내는 도구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효(孝)’라는 단어는 단순한 덕목이 아니라, 오랜 시간 한국 사회의 위계 구조를 지탱해온 문화적 기둥이었다.


그 단어가 사라지거나 변형되면, 그에 따른 문화도 달라진다.

반대로 ‘존중’이라는 단어가 일상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수평적 관계를 중시하는 문화가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결국 언어와 문화는 서로를 밀고 당기는 관계 속에서 진화한다.

밈, 신조어, 유행어처럼 짧은 언어가 순식간에 사회적 의미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정책, 제도, 교육처럼 문화가 새로운 언어를 낳기도 한다.


즉, 닭과 달걀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이 둘이 끊임없이 서로를 갱신하며, 지금의 우리를 말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3) 언어에는 지위가 녹여져 있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신호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이를 ‘언어적 자본(linguistic capital)’이라 불렀다.

사람이 어떤 단어를 쓰는가, 어떤 어조로 말하는가는 곧 그의 교육 수준, 계층, 심지어 권력 구조를 반영한다.

예를 들어, 영어권에서는 “toilet”, “lavatory”, “restroom”이라는 단어가 각각 다른 사회적 층위를 나타낸다.


라틴어 뿌리를 가진 단어일수록 고급스러움이 부여되고, 일상어는 평민적이다.

한글 역시 비슷한 길을 걸었다.


한국에서도 “화장실”과 “욕실”, “편의시설”이라는 표현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쓰인다.

뿐만 아니라, 처음 창제될 당시, 한글은 ‘하층민의 문자’로 여겨졌다.

반면 한자는 학문과 권력의 상징이었다.


즉, 언어는 언제나 지위를 구분하는 경계선으로 작동해왔다.

지금의 IT 업계에서도 이런 현상은 여전하다.


경력이 쌓인 사람일수록 전문 용어를 섞어 ‘어렵게’ 말하려 하고,

신입일수록 자신의 언어로 ‘쉽게’ 풀어내려 한다.


결국 말의 난이도는 지식을 과시하기 위한 무기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이해를 돕기 위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4) 세대 간 발생하는 장벽의 문제를 꼭 고칠 필요가 있을까?

꼭 그래야 할까?


‘다름’을 ‘그름’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장벽은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세대 간의 언어는 시대의 산물이다.


기성세대가 “사후르” 밈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MZ세대가 “우천시”라는 표현에 멈칫하는 것도 당연하다.


서로가 자라온 문화적 맥락이 다르고, 경험의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차이를 억지로 줄이려 하기보다,


“아, 저 세대는 저런 맥락에서 저 말을 쓰는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게 더 현실적일지도 모른다.

결국 중요한 건, 서로의 언어를 해석하려는 태도다.


우리가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더라도,

그 속에 담긴 감정과 의도를 이해하려는 순간,

그건 이미 ‘소통’이다.



4. 결론과 생각거리들

우천을 ‘비 오는 날씨’라 부르든, ‘Rainy day’라 부르든,

결국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건 같다.

다만 그 표현 속에는 서로 다른 문화, 시대, 그리고 세대의 이야기가 스며 있을 뿐이다.




예시바 살롱을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면?

https://superb-crepe-f8a.notion.site/yeshiva?pv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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