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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쥴리 Feb 08. 2024

나비란에 꽃이 폈어, 아빠!

아빠 없는 145일째 날

아빠, 안녕?


거긴 좀 어때요? 여기 날씨는 요즘 엉망진창이야. 그냥 엉망진창. 비, 눈, 우박이 지멋대로 오는 통에 요즘 세차도 못해. 그래서 차가 엄청 더러워.


얼마 전에 집에 다녀왔어. 며칠 같이 시간을 보냈지. 그 이후로 요즘 자주 그런 생각을 해. 엄마랑 잘 지낼 수 있을까? 나는 엄마랑 너무 안 맞는 것 같아, 아니 안 맞아. 사실 안 맞는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었잖아?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으니 그래도 노력을 해보려고, 아니 하고 있었는데, 안 맞는 사람들끼리 노력을 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아니지... 노력도 사실 나 혼자 하는 것 같아. 엄마는, 음... 엄마도 힘들겠지. 엄마는 당장 우리 관계보다 혼자 그 집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당장 직면한 문제일 거야. 어쨌든 엄마는 엄마이기 때문에 오롯이 미워할 수도 없어.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죄책감이 드니까 어떻게든 엄마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어쨌든 그게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것 같아.


이 모든 생각의 근원은 엄마가 한 말 때문이야. 엄마가 내 식물들에 대해서 안 좋게 얘기를 했어. 그런 되도 안 한 식물 키우느라 쓸데없이 식물등이니 뭐니 돈을 쓴다고.


음... 일단은... 엄마가 내 식물들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어. 칠곡 어머니랑도 그런 얘기를 하셨더라고. 어머니랑 전화 통화를 하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어. 사실 내 기분은 그때 이미 잡쳤어. (잡쳤다는 말 오랜만이다!) 그래도 직접 들은 얘기가 아니니 굳이 따지진 않았어. 따져봤자 싸움 밖에 더 되겠어? 그랬는데 이번에 집에 갔을 때 K 작가님이랑 차를 마시다가 아빠 화분 얘기가 나와서 (아빠 화분 동제에 있는 거 알지?) 식물들 얘기를 하다가 자연스레 나도 식집사인데 야생화는 우리 집에서 아무리 환경을 맞춰줘도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얘기를 했는데 내 앞에서 ”시덥잖은 되도 안 한 식물 키운다고 돈이나 쓰고 있다. “ 고 하더라고. ”그럼 엄마 기준에는 뭐가 ‘된’ 식물이죠? “라고 따졌으면 좋았을 텐데 내 대답이 더 최악이었어. ”우리 집에 있는 식물들 다 비싼 거거든?” 어떻게 그렇게 끔찍한 답변을 했을까. 나는 비싼 식물들을 키우는 게 아닌데... 내가 좋아하는 식물들을 열심히 키우는 것뿐인데 왜 저따위로 말을 했을까. 우리 집 식물들에게 너무 부끄러워졌어. 그리고 아빠한테도...


내가 식물 키우는 거 아빠한테 얘기했을 때 아빠가 엄청 좋아했었지. 아빠도 오랫동안 식집사였으니까. 그치만 그것보다도 아빠는 식물을 키우는 게 내 정서에 좋을 거라며 좋은 취미를 갖게 되어서 축하한다고 해줬잖아. 식물은 주인을 모른다고 하지만 그건 안 키워본 사람들이나 하는 얘기다. 사실 식물들은 주인 발자국 소리를 듣고 크는 거라며 매일매일 잘 돌봐주라고 말해준 것도 아빠였는데. 어째서 그런 말을 해주던 아빠는 이제 내 옆에 없는 걸까?


며칠 전에 재작년 가을부터 키우던 나비란에 꽃이 폈어. 혹시 봤어? 아직 못 보셨으려나. 그 꽃을 보는 순간 얼마나 아빠한테 자랑을 하고 싶던지. 근데 아빠한테 알려줄 수가 없잖아? 너무 속상하더라. 내가 열심히 키운 식물이 자라 꽃이 폈는데 자랑하고 싶은 사람에게 자랑을 할 수가 없어서. 그래서 며칠을 무기력하게 보냈어. 그러다 마냥 이렇게 있을 순 없지 싶은 마음이 들어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어. 내가 이 글을 쓰려고 찾아보다 알았는데, 아빠 나비란의 꽃말이 뭔지 알아? 행복이 날아 온다래. 하얀 나비처럼 예쁜 꽃이 꽃말까지 이렇게 예쁘다니! 아빠, 올해는 정말 행복이 날아올까? 아빠가 없는데도 즐겁고 행복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이런 생각을 하는 나를 위해서 아빠가 나비란의 꽃을 피워준 걸까?


아빠, 나 진짜 아빠가 너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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