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없는 317일째 날
아빠가 없는 삶을 사는 것은 너무나도 거지 같아, 아빠.
나 빼고 다 아빠가 있어.
물론 아니지, 근데 나는 그런 기분이야.
아빠한테 전화를 못하는 것도 너무 거지 같고,
아빠랑 놀러를 못 가는 것도 너무 거지 같고,
모르는 꽃을 만나도 물어볼 아빠가 없고,
새로운 일을 시작해도 자랑할 아빠가 없고,
힘든 일이 있어도 의논할 아빠가 없고,
나를 믿는다고 말해줄 아빠가 없어.
너무 거지 같아.
제일 거지 같은 일은 곧 아빠 제사라는 거야.
왜일까? 아빠는 아직도 집에 있을 것만 같은데...
전화를 하면 전화를 받을 것만 같은데 이상해.
사실 가끔 전화해 봤어, 아빠 번호로...
가끔이라기엔 요즘도 가끔 걸어봐.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지만.... 어쩌구저쩌구.
다 알지만 그래도 해봐.
왜냐면 전화하고 싶은 사람이 아빠뿐이니까.
처음부터 당연히 없는 번호라고 나올걸 알면서 전화를 걸었어.
해지한 거 나잖아?
너무 T 모먼트였나? 하지만 아빠도 T였을 테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지. 아빠 MBTI나 해볼걸...
어쨌든 전화하고 싶은 사람이 아빠뿐이니까 그냥 전화했어.
그래도 없는 번호라는 말에 지쳐갈 때쯤
아빠 대신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어.
엄마, 칠곡 엄마, 칠곡 아빠 모두에게 전화를 해봤어.
하지만 묘하게 채워지지 않는 기분이 들었어.
아니, 오히려 텅 빈 기분이 들었지. 더 외로워졌어.
그래서 아빠 친구한테도 전화를 해보고, 아빠 후배한테도 전화를 해보고, 아빠 선배에게도 전화를 해봤어.
그러다 그냥 내 친구한테도 전화를 해봤지만 전부 소용이 없었어.
아빠가 아니면 안 되는 거였어.
그래서 이젠 더 이상 아무에게도 전화를 하지 않아.
티비에 아빠랑 갔던 곳이 나오면 그때의 그 추억에 눈물이 나고
가기로 약속했던 곳이 나오면 가지 못한 아쉬움에 눈물이 나고
어쨌든 그냥 자주 눈물이 나.
아빠가 없는 삶이라는 게 이렇게까지 거지 같을 줄 알았으면,
아빠랑 더 즐거운 시간 많이 보낼걸.
장례식 때만 해도 ‘나는 아빠랑 여행도 다니고, 시간도 많이 보내고, 추억도 많아.’라며 우쭐해했었는데,
얼마나 어리석고 오만했었나 매일매일 뼈저리게 깨달아.
나는 아빠가 없어서 너무 불행하고 외로워.
내가 이런 시간을 보내는 걸 아빠는 원치 않겠지만,
물론 나도 이 순간이 지나면 또 원래의 나로 돌아가겠지만,
그래도 요즘 이런 순간이 너무 자주 찾아와.
다행히도 남편이 내 곁에 있고 나를 위로해 주지만,
그래도 아빠는 없잖아.
이 글도 그래. 자주 쓰고 싶은데... 왜냐면 아빠한테 하고 싶은 말이 매일매일 넘쳐나거든!
근데 어느 순간부터 글로 쓰는 것도 힘들더라.
아빠한테 말을 하듯이 쓰는 게 힘들어.
결국 혼자 글을 쓰고 있다는 걸 아니까 힘들더라고.
아빠가 지금 나를 보고 있다면 웃기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어.
이럴 거면 말이나 잘 듣던가, 그지? ㅋㅋㅋ
근데 생각해 보면 아빠 말은 잘 들었던 것 같아 -_- 아닌가?
늘 고맙고 미안해, 아빠.
왠지 아빠를 닮아서 그런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나 같은 딸은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 같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