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네? 정전이요?

by 안 희

* 3년 전 제주살이 당시의 기록을 재편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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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주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전국이 비상이었죠. 태어나서 이 정도로 공포에 질려보기는 처음일 정도로 제주는 특급 비상이었습니다. '매미'보다 강한 태풍이 제주도를 관통한다는 예상이 사실화되면서 긴장감은 하루하루 더 깊어져갔고 서울에 있는 지인분들의 걱정은 커져갔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마트 진열장이 비어진 걸 목격했습니다. 영화에서나 보던 상황 속에 들어가 있으니 실제로 웃음이 났습니다. '이게 뭐야.' 전파를 통해 들리는 소리와 다르게 제주는 조용했습니다. 네, 맞습니다. 폭풍전야예요.





tempImagew9iquu.heic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외로움'이란 순수한 감정에 이어 '폭풍전야' 속에 들어있는 기분을 고스란히 느낍니다. 집 안은 고요하고 이중창문의 기능이 빛을 발휘하며 빗소리의 손길조차 들리지 않습니다. 번개는 제 속에서만 치고 있습니다. 육체는 고요 속에 어울리 듯 침묵의 자세를 유지합니다. 소리 없이 창문을 두들기는 비는 내게 안전하지 않음을 알려줍니다. 뇌가 소리칩니다. '도망가!'


두려움은 인간을 한없이 작아지게 만듭니다. 태어나 처음 경험해 본 태풍의 공포 속에 항체가 없음을 굴복하며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나 너네 집 가도 돼?"


'가만있어봐, 뭘 챙겨야 하지? 혹시 집이 무너질지도 모르니까.. 노트북, 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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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로 대피했습니다. 내게 필요한 건 안정감이었어요. 안전한 집이 아니었습니다. 친구네 집은 바다와 더 가까웠거든요. 제게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온기가 채워지자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그 자리에 걱정이 들어옵니다. 두려움은 내가 느끼는 것이고 걱정은 타인을 느끼는 것이라 생각하니 제 마음이 종이 한 장보다 가볍다고 느껴집니다.


태풍이 밤 새 이곳을 지나간다는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어요. 뜬 눈으로 상황을 지켜보며 무언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으로 새로고침 버튼을 눌렀어요. 태풍의 경로에 따라 그 아래에 사는 사람들의 소식이 시시각각 올라왔어요. 그때, 정전이 납니다. '팍!' 그나마 있던 불빛마저 사라진 암흑, 갑자기 공포가 급습합니다. 화들짝 놀라 거실로 뛰쳐나갔습니다. 친구네 가족들도 약속한 듯 나왔어요.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우왕좌왕하는 상황 속에서도 각자가 느끼는 두려움의 박동을 들을 수 있었어요. 잠시 후 연약한 불씨가 피어오르자 안도감이 터져 나왔습니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촛불을 함께 바라보고 있자니 갑자기 서글퍼졌습니다. 이 무서움을 혼자 겪었을 끔찍한 상황을 상상하니 이 별 것 아닌 것이 그저 우리가 같이 앉아 촛불을 바라보고 있는 이 해프닝이, 이 평범한 일상이 내 삶에는 없는 것이라는 것이 보여서 슬펐습니다. 다행히 큰 피해 없이 밤을 보냈습니다. 태풍의 길목 안에서 모든 신에게 기도 했습니다. 부디 모두가 안전하게 해달라고 무사히 오늘을 보낼 수 있게 해달라고 그리고 우리에게 두려움을 이겨낼 각자만의 '온기'를 하나씩 달라고요.





스크린샷 2025-02-21 오후 8.58.13.png 다시 찾아온 평화





tempImageGCzEWe.heic 제주에서의 첫 노을.




눈을 떠보니 태어나 처음으로 본 하늘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파랗고 맑은, 먼지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청량함이 흩뿌려져 있는 하늘, 감탄에 말 문이 막힐 정도였어요. 이곳에서는 자연이 움직이는 걸 느낄 수 있고 자연과 내가 관계를 맺는다는 기분이 듭니다. 서울에 살 땐 느끼는 것조차 노력이 필요했던 것들이 이곳에서는 머물기만 하면 가능한 일이 되는 게 신기해요. 내가 자연 안에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저녁에는 오직 노을을 보기 위해 바닷가로 나갔습니다. 이제 태풍의 흔적은 기억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낮에 불던 잔바람마저 사라진 저녁공기를 통해 실감합니다. 가만히 앉아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눈에 걸리는 것들에 고개를 돌려봅니다. 정신과 몸이 이 세상과 하나가 되는 기분이랄까요? 형용할 수 없는 풍경 앞에 내가 다시 일상이 되어 앉아있음을 사실로 느끼니 공포의 밤을 무사히 보낸 것이 정말로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해가 잠을 자러 가는 길 목에 물들어지는 하늘의 색에 감탄하며 살아있음을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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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겨울이 와 함께한 첫 피크닉. (싸들고 온 짐들을 유용하게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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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차례상에 카스테라와 해산물로 만든 꼬지를 올린다.




제주도에서 맞이하는 첫 명절, 추석이 왔어요. 어멍을 뵈러 겨울이 와 함께 제주시로 갑니다. 제주도에서 버스를 타려면 정류장에 붙은 시간표를 꼭 체크하세요. 배차간격이 서울처럼 5~10분 단위로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앱사용은 무용했어요. 날이 좋아 겨울이 와 함께 산책을 하며 버스를 기다리면서 아직 낯선 환경을 느껴봅니다. 제주버스는 서울시내버스와 다르게 더 많이 흔들리고 불편해서 멀미도 쉽게 느껴졌어요. 한 번도 싫은 내색 하지 않고 잘 참아준 겨울이가 얼마나 기특하고 고마웠는지 모를 정도예요.


제주도는 카스텔라를 차례상 위에 올립니다. 파리바게트 매장에는 카스텔라를 주문받는다는 안내가 붙어있었어요. 제주땅은 화산토인 탓에 벼농사가 되지 않아 쌀이 귀했다고 해요. 이 때문에 떡 대신 올린 빵이 유래되어 카스텔라를 올리게 되었다고 해요. 뿐만 아니라 뿔소라와 낙지로 꼬지를 하는 것도 신기했어요. 처음 경험하는 제주도 지역 문화에 재밌고 북적북적 보내는 명절과 처음 먹어보는 음식들에 마음도 배만큼 불어난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직도 생각하면 웃음이 지어질 정도로 사람이 사는 냄새가 가득한 날이었어요.




tempImage6YVBEm.heic 달 보러 나가서 뛰어놀던 추석날에



100년 만에 뜨는 달을 보기 위해 조카들과 함께 바다로 나갔습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신나게 뛰어놀았어요. 이쯤 되면 달을 보러 나온 건지 놀기 위해 나온 건지 헷갈립니다. 구름은 우리를 질투해 달을 가렸지만 그것만으로 이 웃음을 잠재울 수는 없을 겁니다.


'40년 뒤에야 다시 볼 수 있대. 우리 어디에서라도 그 달을 보게 되면 그때 오늘을 기억하자. 그리고 서로를 안녕하자.' 우리는 이 약속을 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제주는 '나'에게 집중하는 법을 부드럽게 알려줍니다.

자연 안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감각을 깨워줍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지구와 주변을 돌아보게 됩니다. 이 모든 게 너무나도 일상이라 꿈만 같습니다.



2022.9.10

3화 End.




저 어떡하죠?
제주에 흠뻑 빠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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