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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즈와케이크 Jan 05. 2022

무거운 아침

자작 소설 도입부 1

새해맞이로 구상 중인 소설의 도입부입니다 :)


 커튼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눈부신 광명, 아스팔트를 무겁게 짓누르는 자동차 소리와 보도블록을 날카롭게 쓸어내리는 경비원의 빗자루질 소리가 이루는 시끄러운 이중창. 창밖의 상황으로 보아 해는 이미 아침을 넘어 중천에 다다른 듯했지만, 내 의식은 여전히 새벽녘을 헤매며 한껏 늦잠을 자고 있었다. 


 불현듯 눈을 떴을 땐, 누군가가 강제로 흔들어 깨운 듯한 불쾌감을 안고 잠을 깨었지만, 핸드폰을 잡고 시간을 보자 나는 깜짝 놀라 이불을 젖힐 수밖에 없었다. 대학생의 방학이라는 것이 아무리 정해진 기상시간이 없다고 해도, 이건 너무 늦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렇게나 늦게 일어났는데도, 내 뒷목은 한숨도 자지 못한 듯이 뻣뻣한 데다 눈은 뜨기도 힘들 정도로 잔뜩 부어올라서 마치 최소한의 수면시간조차 채우지 못한 듯했다.


 요즘 내 수면의 질은 말이 아니었다. 잠에 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겨우 눈을 감아도 새벽에 다시 눈을 뜨거나, 아니면 가위눌림을 겪는 바람에 당최 긴 잠을 잘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게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도 나질 않았다.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불면의 증상들이 습관처럼 체화되었기 때문이었는진 잘 모르겠지만 어느새부턴가 불면의 내 삶의 일부처럼 자리 잡게 되었다. 잠을 자다가 문득 가위눌림이 찾아와도 일체 공포감을 느끼는 일 없이, ‘아 또 왔네’ 하며 일상적인 불쾌감을 느끼고, 아무리 잠을 자도 피곤하고, 무거운 아침 속에 사지육신이 쑤셔오는 비일상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서글픈 적응력을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나날 중에서도 오늘은 유난히도 늦고 무거운 아침이었다, 아마도 어제는 꿈에 시달리느라 새벽부터 잠을 설쳤던 것이 그 원인이었던 것 같다. 내가 흐릿한 눈을 비비며 다급히 몸을 일으키자, 관자놀이에 아릿한 두통이 밀물처럼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감각을 뒤흔드는 아찔한 통증에 얼굴을 한껏 찡그리며 침대에 다시 걸터앉아 두통을 소화시키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눈앞에 만연한 어둠에 몰두하자, 간밤에 꾸었던 꿈속의 이미지들이 정돈되지 않은 채로 눈앞에 불쑥불쑥 떠오르기 시작했다. 불면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이후로, 꿈은 마치 내 수면의 부속품처럼 따라다니며 안 그래도 불안정한 내 수면을 더욱더 혼란스럽게 만들어놓았다. 내가 가위에 자주 눌리면 눌릴수록, 내가 잠에 늦게 들면 들수록, 꿈은 내 기억의 잔재들과 무의식을 한껏 어지럽게 뒤섞어 놓아서 정돈되지 않은 장면들의 연속을 우스꽝스럽게 연출해놓곤 했다. 하지만 잠에서 깨고 나면 그 무의식 속의 혼돈들은 마치 없던 것처럼 단 한 장면도 기억에 남지 않은 채, 무거운 아침과 어지러운 두통만 남기곤 했다. 

 나는 손으로 머리를 쥐어 싸매고. 거실 TV다이의 서랍을 열어재끼며 진통제를 뒤적거렸다. 하지만 소화제, 항생제, 알레르기약, 근이완제, 고지혈증 약 등 약국을 방불케 하는 다양한 경구약들 가운데서도 진통제만 하나도 없다는 놀라운 사실에 나는 짜증을 감출 수가 없었다, 가족 중에 진통제를 찾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서 진통제를 몇 통이나 사놓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무래도 이 집에는 진통제 먹는 괴물이 살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거실 소파에 등을 대고 앉아 긴 한숨을 쉬었다. 거실 바닥의 썰렁한 공기가 두통으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한층 더 아프게 만들자, 왜 이 추위는 끝나지 않는 걸까 하고 불현듯 생각했다. 올해 겨울은 조금 일찍 찾아왔었다. 여름날, 몇 주간 길게 쏟아 내린 장마가 뜨거운 여름의 마침표가 되어준 이후로 계절은 쓸쓸한 노란빛의 서늘함으로 가을의 시작을 알렸다. 하지만 다급한 겨울은 마치 가을의 시간을 기다려줄 수 없다는 듯 급격한 기온 저하와 함께 가을을 밀쳐내고 계절의 중심을 차지했다. 항상 변화에 둔감했던 나조차도 반팔 반바지로 드러난 맨살에 급격한 서늘함이 감싸는 걸 느끼고, 겨울의 추위를 실감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꽤 흐른 것 같았는데도, 겨울은 당최 가시질 않았다. 구름 밑을 짙게 칠한 군청색의 하늘이 여름의 백열 하는 태양을 아득한 옛날처럼 보이게 할 정도로 지겹게 지속되었다. 겨울은 완고했다. 동생의 애원에도 결코 컴퓨터 자리를 양보해주지 않는 매정한 형처럼 완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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