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아 넌 좋겠다, 진로라도 정해져 있어서
진로 선택의 어려움을 잘 대변해주는 말로 한동안 ‘태풍아 넌 좋겠다. 진로라도 정해져 있어서.’라는 말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과연 그랬다. 앞만 보고 열심히 공부하고 대학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갔던 학창 시절을 지나 매 학기 최대 학점을 꽉꽉 채워 들으며 4.0 이상의 평점을 유지하며 최선을 다했던 학부 시기를 보내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학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만큼 취업이라는 관문으로 가기까지 남들보다 긴 유예기간이 있는 셈이었지만, 긴 준비 시간을 거친 만큼 처음 사회에 내딛는 발걸음이 더욱 조심스럽고 떨렸다. 그리고 ‘직업’과 ‘진로’라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오던 그 시점에 막연함과 불안함의 크기와는 반비례하게도,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와 가용 자원에 대한 메타인지는 실로 보잘것없었다. 졸업할 때가 되어서야 전공과 관련된 직업군, 연봉, 처우, 장래 지속성과 같은 실제적인 부분들을 고려하기 시작했고, 충분한 숙고를 거치기보다는 누군가에게 쫓기는 마음으로 이곳저곳 문어발식으로 취업을 준비했다.
그렇게 시작한 첫 사회생활에서 기본적인 업무 처리방식과 인간관계의 기본을 배웠다는 점에서 그 나름대로 의미 있었지만 '이게 정말 내 길인가, 내가 이 일을 하기 위해 평생을 준비해온 것인가' 하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후에도 몇 번의 시행착오들을 더 거치면서 일반 기업, 연구소, 정규직, 계약직, 프리랜서, 일반사원, 연구원, 전문 집필자, 팀장 등 다양한 형태의 직업군, 직무군, 고용 형태, 직급 등을 경험했다.
그러면서 ‘이런 일, 혹은 이런 업무방식, 이런 역할은 나와는 정말 잘 맞는구나, 혹은 맞지 않는구나’를 몸소 체감하며 배울 수 있었다. 그럴 때면 주위 사람들은 으레 “넌 참 그만두기도 잘하고 다시 들어가기도 잘한다.” 라며, 얼마 전 방영된 한 예능 프로그램의 ‘이직의 기술’ 편 게스트로 나가도 되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충동적일 수도, 용기 혹은 똘끼(이 둘은 늘 한 끗 차이다) 있어 보일 수도 있을 선택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과정이 다 성공적이지는 않았고, 지금도 완전한 해법을 찾은 것은 아니다. 어쩌면 아직도 여전히 헤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사회생활을 통해 느낀 점, 진로 교육, 심리검사, 코칭 등을 진행하며 마주쳤던 무수한 눈빛들이 나에게 말해주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든, 기업 인사담당자, 교사, 상담사 등 다양한 직업군에서 이미 베테랑으로서 활동하고 있는 교육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든 그들의 눈빛에는 항상 동일한 목마름과 갈구가 어려있었다.
이제 사회생활을 준비하는 대학생이든, 40~50대 혹은 그 이상이 된 사람들이든 너나 할 것 없이 진로 고민에는 끝이 없었다. 실상 진로 고민이라는 것은 평생 가는 것인가 보다. 그렇기에 그들은 바쁜 일상 중 짬을 내어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고 그곳까지 찾아왔던 것일 테다. 더군다나 백세 시대라고 하는 요즘 시대에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하나의 직업, 평생직장의 개념은 이미 옛말이 된 지 오래라 하나의 커리어가 끝난 후 혹은 그것과 동시적으로 병행해서 또 다른 제2, 제3의 커리어를 찾아야 하고, 그러려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단순히 ‘직장’이 아닌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전문가로서 기능하는 것이 중요해진 것이다.
하지만 그 단계에서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한 이해다. 단기간의 경제적 이익이나 타인의 시선, 평가와 같은 외부적 요소만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본인의 흥미와 성향, 적성에 맞는 길을 선택하고 즐겁게 오래, 내재적 동기에 의해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로를 통한 지속 가능한 발전의 길일 것이다. 독자들이 각자 외롭게 걸을 그 길이 조금이나마 덜 고되고 덜 막연하기를 바라며 나의 그간의 시행착오 경험과 심리학 공부를 통해, 또 관련 업무를 경험하며 쌓아온 잡다한 지식을 이 글에 녹여내었다.
그리고 그 길에 어떻게 하면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을까, 또 그에 대해 어떻게 하면 독자들이 조금 더 생생하고 와닿는 이야기로 느껴질 수 있을까 생각해보다가 문득 이런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흥미와 적성을 찾고, 진로를 찾아가는 일-취업이든 창업이든 다른 제3의 길이든-이 연애(혹은 결혼생활까지를 포함)하는 과정과 많이 닮아있다는 것이다.
진로를 찾는 일이 연애와 비슷하다니. 시작 단계에서는 두근두근 설렘과 행복감을 안겨주지만 잘 안 풀릴 때는 세상 모든 고통과 번뇌를 안겨주는 감정 소모전이 따로 없는 그 연애? 그래서 일찍이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은 심리⋅사회적 발달단계 이론에서 청소년기의 정체감 형성, 자기 이해에 이어 초기 성인기 및 성인기의 발달과업으로 ‘일’과 ‘사랑’을 꼽았던 것일까.
물론 그가 진로 발견의 과정을 연애에 비유하는 이런 이상한 후학이 나오리라고 예상했을 리는 만무하지만, 그만큼 일과 사랑이 우리가 독립적이고 성숙한 개별 주체로서 삶을 일구어가는 데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진로를 연애에 빗대어 설명하려는 이 시도가 그렇게 황당무계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부디 독자들도 함께 자신의 지난 연애, 혹은 현재의 연애/결혼생활, 다가올 연애/결혼을 떠올리며 천로역정보다 더 험하고 먼 길이 될지 모를 ‘진로역정’의 여정에 함께 하시길 바란다.
Welcome on bo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