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첫 만남의 순간, 소개팅과 면접- “나는 을이 아니다”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모르는 사람과의 만남이든, 이미 알고 있는 사람과의 만남이든 썸/데이트 단계에서는 이성으로서 서로를 만나는 '첫 만남'의 순간들이 있다. 연락만 주고받다가 마침내 얼굴을 마주하는 때 말이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떨리는 마음으로 서로의 첫인상이나 느낌을 확인하고, 내가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상대방의 이미지가 과연 생각대로인지 혹은 극복할 수 없을 만큼의 갭 차이를 보이는지 더 탐색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러면서 문자나 전화, 메신저 등만으로는 자세히 알기 어려웠던 상대방의 생활 패턴이나 가치관, 취미, 습관, 성격 등을 면밀하게 파악한다. 그렇게 수집된 모든 정보는 상대방이 향후 나와 연인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기 위한 판단 기준으로 활용된다.
실제로 얼굴을 마주하기 전 문자나 통화 상으로는 코드도 너무 잘 맞고 유쾌했는데 막상 만나보니 생각했던 느낌과 영 딴판이거나, 극복할 수 없는 난관을 발견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한다. 물론 누구를 만나도 100% 만족스럽고 내가 원하는 조건에 모두 부합되는 상대방을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반대로 자신도 상대방에게 그런 사람이 되기 어렵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조건을 다 맞추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몇 가지 기준에 상대방이 얼마나 근접한지 혹은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한 번의 만남으로 이 모든 과정을 다 거치기가 어렵기 때문일까. 아마 지인들로부터 흔히 "그래도 사람은 최소한 세 번은 만나봐야 한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원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어떤 상대방을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지 명확한 기준이 없거나 호불호가 뚜렷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 말이 적용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연인을 고르는 기준이 까다롭지 않거나, 누군가가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거나 잘해주면 그에 따라 반응적으로 함께 호감이나 애정도가 상승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더 천천히 시간을 두고 여러 번 만나면서 상대방이 가진 장단점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자신과 잘 맞을지 상호 케미를 확인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반대로 원하는 이성상이나 기준이 뚜렷하고 주관이 확실한 편이라면 '삼세번의 법칙'이 잘 적용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과 좋고 싫음에 대해서 이미 명확하게 알고 있고, 그 기준이 쉽게 바뀌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첫 만남에서 아니라고 생각되는 상대방을 여러 번 다시 만난다고 해서 처음의 생각이 바뀌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따라서 이런 경우라면 굳이 삼 세 번을 참고 만나는 것이 본인에게나 상대방에게 서로 못할 짓이 될 수도 있다.
어쨌든 이렇게 한 번의 만남이든 세 번의 만남이든,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만남을 통해 나와 상대방이 어느 정도 잘 맞고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를 잘 분석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내 마음에 드는지와 함께 내가 상대방에게 좋은 연인이 될 수 있을 것인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연인 관계라는 것은 누구 한 사람만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상호 합이 잘 맞아야 하고, 서로 노력이 필요한 관계다. 그렇기 때문에 '나' 위주의 관점에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자신과 상대방이 서로를 위해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인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와 어영부영 연인 관계가 되면 연애를 시작해도 기쁘거나 즐겁지 않다. 몸은 같이 있는데 마음은 콩밭에 가있거나 연애를 하는 중에도 계속 더 좋은 상대가 나타나면 갈아타는 '환승 연애'를 꿈꾸게 될 수도 있다. 반대로 내가 아무리 마음에 드는 상대방이라고 해도 나에게 관심이 없거나, 나의 노력과 헌신으로 연인이 된다 해도 나에게 성실하지 않은 상대방을 만나면 그때부터 헬게이트가 열리기 시작한다. 건강하지 않은 연애는 몸과 마음, 시간과 돈,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소중한 우리의 자존감을 갉아먹는 해충에 불과하다.
진로와 커리어의 세계에 이 단계를 적용하면 취업하고자 하는 회사나 기관, 혹은 창업이나 동업이라면 관련자와의 '면접'에 해당한다. 많은 사람들이 면접이라고 하면 자신이 '평가받는 자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면접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쓴다. 그리고 자신 역시 면접관이나 회사를 평가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자신을 '을'의 자리에 놓고 면접관에게 '갑'으로서의 주도권과 특혜를 모두 주고 일방적이고 위계적인 구조 속에서 면접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사회생활 경험이 없는 신입 지원자 들일수록 이런 우를 범하기 쉽다.
그러나 면접 과정에서도 우리는 소개팅을 할 때처럼 상대방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물론 대부분의 면접이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에, 정해져 있는 면접의 세팅을 본인이 바꾸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면접 시간이나 방식, 면접관과 지원자의 비율 등이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규모가 큰 조직일수록 대규모로 채용이 이뤄지기 때문에 지원자 개인이 그것을 바꾼다는 것은 사실상 쉽지 않고, 간혹 불가피한 상황에서 면접 시간을 조정하는 것이 가장 큰 조율이 될 수 있다. 규모가 작은 조직이라면 조금 더 자유롭고 융통성 있게 면접이 진행될 수도 있으나, 이 때도 역시 면접에 참여할 사람을 정하는 것과 같은 큰 틀은 상대방이 정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지원자로서 면접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우리는 '을'이 아닌 동등한 면접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나 역시 내 눈앞에 있는 면접관, 혹은 해당 조직 등에 대해 면접 과정을 통해 파악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면접 '과정'이라고 한 것은 이런 탐색과 판단이 면접 당일에만 국한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원서를 작성하고 인사담당자나 실무담당자와 면접을 위한 연락을 주고받으며, 실제로 면접장에 들어서는 순간(요즘에는 코로나의 영향과 AI 기술 발달로 화상면접, AI면접을 진행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면접을 마치고 결과를 듣는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우리는 해당 기업이나 조직, 분야의 문화나 특성을 알 수 있다.
면접은 보통 1차 면접의 경우 신입 지원자는 인사담당자, 경력 지원자는 실무담당자와 진행하고, 2차 면접은 임원들과 진행한다. 인사담당자든, 실무담당자든, 임원이든 이들은 모두 해당 조직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며, 그 조직의 문화나 가치관을 잘 알고 있고 그것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들이 보이는 태도나 언행을 통해 지원자들은 해당 조직의 분위기, 문화, 가치관 등을 알 수 있다.
사소한 예로 면접을 잡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지원자의 일정이나 시간, 오가는 길을 배려해주는지를 통해 우리는 해당 조직이 얼마나 위계적이거나 자유로운 조직 분위기를 갖고 있는지, 구성원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갑작스럽게 면접 일정을 바꾸거나 일방적으로 면접 시간을 잡는 것과 같이 지원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곳이라면 조직문화가 경직되어 있고 구성원에게 희생을 강요하거나 조직에 무조건 맞출 것을 요구하는 곳일 가능성이 높다.
또, 면접 과정에서 계약 조건이나 처우 등을 갑자기 변경하는 것과 같이 신뢰를 깨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런 곳은 가지 않는 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본인의 정신과 신체 건강을 위해서 바람직하다. 면접관이 시대에 맞지 않는 가치관을 갖고 있거나 부적절한 언행을 보인다면 그런 곳 역시 조심해야 한다. 아직 해당 조직의 구성원이 아닌 외부의 낯선 지원자에게까지 그런 언행을 보이는 경우라면, 밖에서 새는 바가지가 안에서 어떤 모습일지는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면접 단계에서 내가 반드시 을이 될 필요는 없다. "아니, 나는 을이 아니다."
소개팅에서 나도 상대방도 서로를 파악하고(소위 '간을 본다'라고 하는 시기다) 동등한 입장임을 염두에 둬야 하는 것처럼, 면접에서도 우리는 더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무조건 뽑아달라고 애걸복걸하는 지원자는 면접관 입장에서도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소개팅 자리에서 제발 무조건 만나달라고 매달리는 상대방을 만난다면 어떻겠는가. '얼마나 매력이 없으면, 만날 사람이 없으면 저렇게까지 매달릴까.' 하고 있던 정도 떨어지기 십상이다.
면접 이외에도 관련 회사나 단체에서의 인턴십, 봉사활동, 경력직의 경우 파트타임, 프리랜서, 프로젝트 업무 등을 통해 지원하고자 하는 조직을 시간을 두고 자연스럽게 알아갈 수 있다. 이는 완전히 관계를 맺고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 사전 경험 단계와 같다.
이처럼 면접 또는 사전 경험 과정을 통해 상대방에게 나를 알리기도 하지만 나 역시 상대방을 알아갈 수 있다.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상대방이 나에게 기대하는 모습과 나의 모습은 어떻게 같거나 다른지, 나는 그것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 것인지를 질문하고, 자문해야 한다. 특히 경력직의 경우 직무, 직급, 연봉과 같이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사전 확인 및 조율 작업이 이 단계에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며, 처우 조율 과정에서 나와 상대방의 기대사항과 현실적인 요구조건들을 어떻게 얼마나 맞춰갈 수 있을 것인가를 탐색해가야 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외로워서 누구라도 만났으면 하던 사람들이 막상 연애를 시작하고 나서도 얼굴이 죽상이거나 금방 헤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마찬가지로 취업이 안돼서 발을 동동 구르고 초조해하며 '어디라도 들어갔으면...' 하던 사람들이 막상 취업 후 금방 그만두는 것을 보게 된다. 물론 그런 사람이 나일 수도 있다.
특히 기성세대들은 취업난 속에서 어렵게 들어간 회사를 금방 나오는 사회 초년생 젊은 세대들을 보며 "요즘 애들은 끈기가 없어서...", "고생을 안 해봐서..."라고 이야기한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젊은 세대들은 기성세대에 비하면 물질적으로 풍족한 시대에 많은 것들을 누리고 살아왔기에 인내심이 부족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젊은 세대들이 '참을성이 없어서'로만 귀인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로 얼굴도 못 본 채 신혼 첫날밤에서야 호롱불 앞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어른들이 짝지어주신 대로 결혼해서 아이 낳고 30~40년 부부의 연을 맺던 어른들의 세대와 우리는 다르다. 좋게 말하면 '참을성'이었지만 반대로 이야기하면 '선택권이 없었기에' 참았던 것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을 만나든 무작정 참으며 "내 팔자려니..." 하던 시대는 이미 아주 오래전에 지났다. 이제는 '내 팔자를 내가 만들어가는 시대'다. 연애든, 일이든 우리는 나와 잘 맞는 상대를 만나 참는 것이 아니라 즐기며, 행복하게 오래오래 동반자로서 함께 하기를 꿈꾼다.
물론 내가 선택한 상대방이라고 해도 다 좋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고, 언젠가 허니문 시기를 지나 단점도 보이게 된다. 하지만 그렇기에 어차피 언젠가 알게 될 단점이라면 빨리 파악하고 현실적으로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썸/데이트' 단계, 특히 소개팅과 면접 단계에서 서로의 장단점을 신중하게 살피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나와 상대방은 그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판단하는 과정이 잘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게 할 때 힘들게 만난 상대와 쉽게 헤어지는 불상사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