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화장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것이 중요하다 싸움보다 중요한 화해의 기술
90년대 유행했던 광고 카피 중 “화장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것이 중요합니다.”라는 문구가 있다(이 광고를 기억한다면 당신은 최소한 80년대생이다). 화장을 하는 것에만 관심을 두었지, 지우는 것이 피부관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인식이 없었던 당시 상황에서 이 문구는 많은 소비자의 뇌리에 강렬하게 박혔다.
연애나 결혼에 있어서 이것과는 정반대로 자주 사용되는 속담 중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이 있다. 평생 같이 살을 맞대고 사는 부부끼리 아무리 싸워봤자 결국 다시 화해하게 되어 있고, 싸워봤자 별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기도 하다.
연애 중인 친구 혹은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가 연인이나 배우자와 싸우고 난 후 한참 흉을 보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그럴 때 우리는 좋은 친구라면 응당 친구의 입장에 공감해주고 친구 편을 들어주는 것이라고 사회적 학습 과정을 거쳤다. 그래서 교양 있는 문화인, 충분히 사회화된 사람답게 친구의 말을 경청하며 함께 친구의 연인 또는 배우자를 탓하며 친구 편을 들어준다. 그랬을 때 친구의 반응은?
아마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 답을 짐작하기도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조금 전까지 애인, 배우자 욕을 그렇게 하던 친구가 갑자기 탈룰라급으로 태세를 전환하더니 자기편을 들어준 나를 나무란다.
‘아니 나는 네 애인이나 배우자한테 조금도 억하심정이 없어요. 그냥 네가 하도 속상해하길래 장단에 같이 맞춰준 것뿐인데 이게 지금 머선 일이고?!’
억울함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지만 차마 친구에게는 말도 못 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속으로 삼킨다. 이럴 때 우리의 친구들이 하는 말은 언제나 한결같다.
“내 애인/가족 나는 욕해도 남이 욕하는 건 못 듣겠어.”
이런 논리도 없고 근거도 없어 보이는 한마디로 모든 상황은 게임 끝이다. 이 말에 논리적으로 반박하거나 따지려고 들면 그건 그냥 싸우자는 말밖에 되지 않으므로, 우리는 억울하지만 한발 물러서기로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제삼자가 봤을 때는 ‘칼로 물 베기’인 것 같은 연인 혹은 부부 사이의 싸움은 그들에게 있어서도 정말로 물 베기인 걸까.
연애 또는 결혼생활은 당사자들 말고는 아무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들 한다. 그렇기에 우리 역시 주변의 이런 친구들이 정말로 우리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금세 연인이나 배우자의 잘못을 잊고 다시 그들의 편으로 돌아갈지 혹은 뒤끝이 오래 남아 두고두고 갈등의 씨앗으로 자라날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남의 연애사, 결혼사는 알 수 없을지언정 우리는 자신의 과거 혹은 현재 연애사, 결혼생활을 통해 정말 이런 싸움이 ‘칼로 물 베기’가 되는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 돌아볼 수 있다. 자,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진지하게 돌아보자. 싸움 후 화해는 반드시 자연스러운 세트처럼 따라오는 것이었는지, 혹은 의지와 노력이 수반되는 일이었는지 말이다.
“화장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서두를 열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화장을 하고 나서 저절로 지워지는 법은 없다. 클렌징 오일로 색조를 지우고, 클렌징 폼으로 다시 닦아내고, 토너와 로션, 크림을 발라주며 꼼꼼히 보습과 영양에도 신경을 써줘야 건강한 피부가 유지된다. 화장을 아무리 예쁘게 잘했더라도 지우지 않고 그대로 둔 채 잠드는 것은 피부 건강에는 최악이다.
연애 혹은 결혼에서의 싸움도 마찬가지다. 어느 인간관계에서나 그렇듯 연인이나 부부관계에서도 갈등이나 싸움이 없을 수는 없다. 오히려 다른 누구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정서적 거리가 가까우며 깊이 연결되어있는 만큼 갈등이 일어날 소지도 많다. 이때 갈등이나 싸움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단기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도 관계 지속 여부를 결정짓는 데 핵심적이다.
다툼이 계속되고 갈등이 고조되면 ‘내가 왜 이 사람을 만났을까’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기도 한다. 하지만 명심하자. 이 사람이 아닌 다른 누구를 만났더라도 갈등이 없었을 리는 없다는 것을. 그러니 지금 내 옆에 있는 상대방을 너무 미워할 필요는 없다.
연애와 결혼생활에서의 싸움만으로도 진이 빠지는데, 진로와 커리어의 영역에서도 우리는 갈등을 경험한다. 그것은 나 자신과의 싸움 즉 내면적 갈등일 수도 있고, 동료, 상사, 회사나 소속한 조직과의 눈에 보이는 갈등일 수도 혹은 몸담은 분야에 대한 회의감 같은 형태를 띠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어떤 경우에서든 이런 ‘싸움’이 발생했을 때 단계에 따라 정도는 다를 수 있지만 우리는 이미 상당히 지친 상태일 때가 많다. 문제 발생 초기라면 비교적 심적 신체적 여유가 있고 갈등을 잘 해결해보려고 노력하겠지만 같은 혹은 비슷한 문제가 계속 생길 때는 전의를 상실하기도 한다.
한때는 분명 사랑까지는 아니어도 나름대로 열정도 있었고 잘해보고 싶었던 회사였는데 어느새 이렇게 밉상이 된 건가 싶다. 지금 내 옆에 있는 동료, 후배, 선배, 상사들도 마찬가지다. 분명 그들에게도 인간으로서 그래도 최소한 좋은 점 하나씩은 있을 텐데 왜 내 눈에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질 않는 건지 모르겠다. 분명 우리에게도 좋은 날이 있었던 것 같은데, 언제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혹은 감은 오지만 이제 되돌아가기엔 너무 늦은 것 같다.
이럴 때 우리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이제 정말 떠나야 할 때인가?’
많은 직장인이 1, 3, 5, 7의 법칙을 경험하고 공감한다. 1년 차, 3년 차, 5년 차, 7년 차가 될 때마다 이직이나 퇴사를 고민한다는 것이다. 어디 이런 마음이 직장인뿐이랴. 그 어떤 직종의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든 누구나 이런 마음의 크고 작은 파도들을 경험한다. 국가대표가 될 정도로 기량이 뛰어난 운동선수들도 학창 시절 연습이 너무 힘들어서 도망가거나 그만두려고 했던 때가 있다고 하니 우리 평범한 소시민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영 이상한 일은 아닐 거다.
이렇게 우리가 다른 선택지를 생각하게 되는 것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생겨서 혹은 발전을 위한 내적 동기에 의한 경우도 있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 혹은 조직, 주변 사람들 등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인 때가 많다. ‘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혹은 ‘가고 싶은 곳이 있어서’가 아닌 ‘이 일이 싫어서’, ‘여기가 싫어서’, ‘이 사람들이 싫어서’가 이유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도피성 의도로 새로운 곳을 선택했을 때 만족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가 이미 잘 아는 물리 법칙 ‘또라이 보존의 법칙’과 ‘지X 총량의 법칙’이 어디서든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 또라이를 피해서 갔더니 더 큰 또라이가 있고, 이 꼰대를 피해서 갔더니 옛 꼰대가 명관이었다 싶은 불상사가 생긴다. 물론 이런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유토피아 같은 곳을 찾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축하한다. 찾았다면 부디 나에게도 공유 부탁드린다.
이처럼 새로운 곳에 가더라도 지뢰밭을 피하리란 보장이 없기에 우리는 갈 때 가더라도 일단은 잘 싸우고, 잘 화해해봐야 한다.
연애와 결혼에서도 허니문이 끝나고 난 후에는 엄청난 갈등과 싸움, 폭풍의 시기가 시작된다. 평생을 다른 환경과 습관을 갖고 살아온 두 사람이 처음부터 잘 맞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수도 있다. 커리어와 진로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자신이 좋아서 선택한 일, 영역이라도 명암이 있게 마련이다. 내가 좋아하는 부분만큼 싫어하는 부분 역시 필연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어떻게 조율하고 맞춰나갈 것인지 고민하고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연애나 결혼생활에서 최선을 다했던 사람들은 설사 헤어졌다 하더라도 미련이 없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봤기에 더 이상의 미련이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그런 노력 없이 생각과는 달리 섣불리 헤어지거나 자존심을 세우다가 관계가 깨진 경우에는 그 후유증이 오래 남는다.
진로와 커리어도 역시 내가 애정과 관심,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은 영역인 만큼 혹시 끝내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헤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맞춰가기 위해 노력해보기를 권한다. 물론 나 혼자만 맞추려고 노력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연애나 결혼과 마찬가지로 진로나 커리어도 쌍방향적인 것이기에 나만 잘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갈등이 생겼을 때 잘 해결하고 화해하기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했을 때 우리는 설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떠나는 한이 있어도 "졌. 잘. 싸 (졌지만 잘 싸웠다)"를 외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가 있다.
그러면 잘 싸우고, 잘 화해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