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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 4. 연애/결혼 단계

① 달콤한 허니문이 끝나고 난 뒤

by Helping Hands

삼라만상이 모두 아름다운 허니문 시기


자기 이해와 알아가는 단계, 썸/데이트의 험난한 단계를 거쳐 드디어 연애를 시작하게 된 당신. 이제 연애 시장에서 ‘내 님은 누구일까’, ‘나를 원하는 사람이 있긴 할까’하는 고민과 염려, 불안으로부터 당신은 자유다.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나를 좋아하는’ 기적을 만나 커플이 된 것을 축하한다.


연애 초기에는 세상만사에 핑크빛 필터가 씌워지고, 행복과 기쁨의 호르몬이 몸 안에서 마구 솟구치는 것 같다. 연인의 이목구비, 사소한 행동, 말투까지 그 어느 것 하나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지금까지 도대체 어디서 무얼 하다 이제야 나타난 건지, 연인을 알기 전의 모든 시간이 아까워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면, 제대로 사랑에 빠졌다는 증거다.


대부분의 연애는 이런 콩깍지와 함께 시작되지만, 간혹 드물게 상대를 썩 좋아하지 않는 상태에서도 연애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혼자라는 외로움을 견디기 어려워서 혹은 삶이 너무 무료하고 단조로워서 누구라도 만나면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확신이 없더라도 일단 시작하고 보는 것이다. 이런 경우라면 연인의 모든 것이 예쁘고 멋있어 보인다거나, 뭘 해도 다 좋다는 느낌은 상대적으로 덜할 것이다. 혹은 반대로 내가 상대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이런 일반적이지 않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연애든 결혼이든 우리는 ‘허니문 시기(honeymoon phase)’라고 하는 시기를 필수적으로 거친다. 이 때는 아직까지 상대방이나 나의 단점은 크게 드러나지 않고 모든 것을 사랑으로 눈감아줄 수 있다.



꿈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시간


사람마다, 커플마다 혹은 상황에 따라 이런 허니문 시기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는지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수개월 혹은 길어야 일 년 이상 지속되기가 어렵다.


신데렐라가 요정의 도움을 받아 호박 마차를 타고 무도회에 가서 왕자님을 만났다가 열두 시가 되면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와 다시 ‘재투성이 아가씨’가 되었던 것처럼, 우리의 연애에도 시간의 흐름과 함께 현실성과 객관성이라는 먼지가 내려앉는 것이다. 세상 온 우주의 기운이 분명 한 목소리로 "너는 내 운명"이라고 말해주던 때가 있었는데, 이 시기가 되면 과거의 내가 혹시 환청 혹은 이명을 들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전에는 미처 보이지 않았던, 혹은 보지 않으려고 했던 상대방의 단점과 내가 싫어하는 버릇, 습관이 유난히 눈에 들어오고 거슬리기 시작한다. 참 이상하고 희한한 것이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고, 예전부터 그런 행동을 해왔을 텐데 왜 예전에는 몰랐을까, 왜 전에는 신경 쓰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 이유는 연애의 경우라면 썸을 타고 데이트를 하는 단계에서는 사귀기 시작할 때에 비해 함께 하는 시간이 현저히 적고, 삶에서 공유하는 영역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면이 미처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연애 초반까지는 서로 상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자신의 가장 좋은 모습만을 보이고, 상대에게 맞춰주려고 하기 때문에 좋지 않은 모습 혹은 나와 잘 맞지 않는 면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기도 하다.


결혼생활이라면 더 말할 나위 없다. 아무리 연애를 오래 한 커플이라고 해도 결혼 후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배우자의 모습이 반드시 있다. 사랑 하나로 먹고살 수 있을 것 같던 연애 시절, 하지만 결혼은 현실이라는 것을 매일 깨닫는다.



아 맞다, 내가 그런 약속을 했던가?!


물론 연애를 한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결혼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연애의 목적이나 종착역이 반드시 결혼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연애나 결혼 모두 공통적인 것은, 연인 또는 부부가 되기로 결심하고 관계를 시작했을 때 나와 상대방 모두에게 ‘약속과 헌신 (commitment)’이 요구된다는 사실이다.


이 약속과 헌신의 조항에는 상대방과 사귀는 혹은 결혼 관계를 유지하는 동안은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겠다는 약속, 다른 사람에게 허락하지 않는 정도의 친밀감과 사적인 영역의 공유를 허락하겠다는 약속, 상대방이 힘들고 어려울 때도 변함없이 곁을 지키며 함께 하겠다는 약속, 그리고 이 모든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헌신의 의사가 포함된다.


연애의 경우에는 결혼보다는 그 약속과 헌신의 범위, 정도가 약할 수 있으며, 이런 서약을 따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상식적, 일반적으로 연애에서도 지켜져야 하는 암묵적인 규칙들을 알고 있으며, 이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혹 상대방이 이 규칙에 대해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합의점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결혼의 경우 명시적으로 많은 사람이 증인으로 참석한 가운데 결혼 서약을 통해 이를 맹세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 유명한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를 외치며 일방 혹은 쌍방과실에 의한 계약 파기가 일어나지 않는 한 자동 연장될 종신계약에 도장을 찍는다.






달콤하고 슬기로운 나의 사회생활


진로와 커리어의 영역에서 이 시기는 입사 혹은 창업, 계약 등을 성사하고 정식으로 일을 시작하는 단계에 해당한다. 조직의 일원으로 일하는 것이든 내 사업을 시작한 것이든, 혹은 동업자로서 역할하는 것이든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그 순간 우리는 성실과 신의의 원칙에 기반한 관계를 시작하는 것이다.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사회 초년생들, 혹은 새로운 직장이나 조직에서의 커리어를 시작한 이들에게도 허니문 시기는 존재한다. 아직까지 입사한 회사 또는 새롭게 뛰어든 영역의 모든 것들이 좋아 보이고 그들도 나에게 친절한 시기다.


12년간의 의무교육과정, 그리고 대학 시기 혹은 그 이상의 고등교육과정을 거쳐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사회 초년생들은 드디어 ‘사회인’이 되었다는 생각이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가장 쉬운 예로, 신입사원으로 회사생활을 시작한 경우라면 회사에서 보내오는 입사 축하 꽃다발,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 및 연수, 다양한 사내 환영 행사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아, 회사가 이토록 달콤하고 재미있는 곳이었나 싶다. 나의 젊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독려하고 무엇이든 말하면 다 채택될 것 같은 착각도 잠시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달 정기적으로 통장에 꽂히는 ‘월급’의 달콤함. 국가가 유일하게 허락한 마약이라는 ‘음악’ 말고도 합법적으로 허가된 마약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월급 주사’ 일 것이다. 학생 때는 견물생심이 들까 봐 쳐다보지도 못했던 물건들을 월급으로 Flex 하고, 할부로 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큰 지출도 하면서 삶의 질이 한껏 올라간 것 같다고 느낀다.


이직 혹은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한 이들에게 이 시기는 사회 초년생만큼은 아니더라도,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기대감과 약간의 불안감이 함께 공존하는 시기다. 하지만 전보다 연봉, 워라벨, 조직문화, 시장 잠재력 등 커리어적으로나 개인 삶의 측면에서나 더 나은 삶을 기대한다. 그리고 이런 조건 중 충족되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새로운 커리어 단계를 밟기로 결정했을 것이다. 그래서 허니문 시기에는 아직 좋지 않은 것보다는 좋은 면들이 훨씬 더 많이 보이고, 만족도 역시 높다.


하지만 진로와 커리어의 영역에서도 필연적으로 허니문 시기가 지나고 현실이 눈에 들어오는 때가 있다. 그때가 되면 내가 이러려고 이 일을 시작했나, 나는 무엇을 위해 이곳에 있는가 하는 회의가 들기 시작한다. 사람마다 이 시기가 얼마나 빨리 찾아오는지는 차이가 있지만, 연애나 결혼과 마찬가지로 진로와 커리어의 세계에서도 이 단계는 누구에게나 예외가 없다. 그러니 혹시 나만 이런 것은 아닐까 세상 불행해하거나, 내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 단지 과정일 뿐이다.



한 가지 희소식은...


한 가지 좋은 소식을 알려주자면, 다행히 진로와 커리어의 영역에서 회사나 다른 개인 등과 맺은 계약은 연애나 결혼보다(특히 결혼보다) 파기가 쉽고, 자동 갱신되는 종신계약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은 비록 매인 몸으로 주인님께 충성하고 있을지언정 그 계약에는 기한이 정해져 있고, 그 기한마저도 내가 원한다면 다 채우지 않고 나올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그렇기에 정말 해도 해도 안 되겠다 싶을 때는 언제든 계약을 파기하고 Bye Bye 해도 된다.


하지만 그 시기는 언제가 적당할지, 그리고 어떤 상태에서 그런 결정을 내려야 할지, 또 그 후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과 계획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내린 결정은 나중에 돌아봤을 때 후회하거나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누구나 그렇듯 마음 한편에 늘 ‘사직서’를 품고 다닐지언정 그 칼을 뽑아 드는 순간이 오기까지는 신중하고, 냉정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그 칼을 뽑기 전까지는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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