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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서 이방인으로 살기

어디에도 속하지 않지만, 어디에나 속하는 나그네로서의 삶

by Helping Hands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자각


스위스에서의 삶은 이방인,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으로서의 내 정체성에 대해 더 생각해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9년 전 여행객으로 며칠간 머물렀을 때도, 5년 전 일 년 간 스위스에 살 때도, 올해 세 번째로 다시 스위스에서 세 달간 지냈을 때도.


생각해보면 '이방인', '외국인'으로서의 내 위치에 처음 눈뜬 것은 스위스가 아닌 필리핀에서였다. 10여 년 전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던 그 당시, 왜인지 알 수 없는 가슴속의 뜨겁고 강렬한 무언가가 지금 바로 필리핀으로 가야 한다고 소리쳤다. 대학원을 3학기까지 마치고 한 학기만 더 수업을 듣고 논문을 쓰면 졸업이 코앞인 시점에서 굳이 왜 지금 필리핀을 가야 하는지 지도교수님은 이해하지 못했다. 정 가고 싶으면 논문을 4학기째에 빨리 쓸 수 있도록 해줄 테니, 졸업하고 가라는 것이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나조차 왜 지금 시점에 꼭 그곳에 가야 하는지 알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저, 가슴속에서 무엇을 향해서인지 모를 불꽃 하나가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오르는 것 같았고, 그 결과가 어찌 되었든 일단 그것을 좇아가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일 년간 살게 된 필리핀에서 처음으로 가족들과 떨어져 생각지 못했던 여러 가지 어려움과 해외생활의 고단함을 느끼며 그렇게 애써 떠나온 한국을 날마다 그리워했다. 누가 등 떠밀어 억지로 온 것도 아니었건만, 20대의 어리고 순진했던 나는 타지 생활의 어려움을 미리 예상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 한국사람으로 살 때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매일매일 깊게 새겨졌다. 길을 나서면 필리핀 사람들과 다른 외모에 어딜 가든 주목받았고, 따갈로그어와 영어라는 언어 차이, 더운 열대성 기후와 스콜이라는 날씨 차이, 뭐든 빨리빨리에 익숙한 우리와 달리 세상 느긋하고 급할 것이 없는 필리핀과의 문화 차이 등. 숨 쉬고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다름'을 인지하고 내가 '낯선 이방인'으로서 이곳에서 살고 있음을 실감케 했다.


필리핀.jpg 필리핀에서 살던 빌리지의 풍경. 이곳을 떠나온 지도 어느새 10년이 지났다.


익숙한 곳에서 낯선 곳을 그리다


집 앞마당에서 빨래를 널다 하늘 위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바라볼 때면 '저 비행기는 한국에 가는 걸까.' 하며 집에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 돌아온 후 시시때때로 필리핀이,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필리핀에서의 삶'이 그리웠다.


모든 것이 느리고 달라서 분명 힘들었는데, 과거의 일은 언제나 좋았던 것만 기억되기 때문일까. 그 느리고 단순한, 지루하고 따분했던 삶의 방식이 그리워졌다.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돌아가고 생각할 것도, 따질 것도, 챙길 것도 많은 한국에서의 삶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꼭 한국에서만 살아야 하는 건 아니겠다.'라는 생각이 머리 한구석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한국사람이니 당연히 한국에서 살아야 한다, 아니 사는 거지'라고 생각했던 사고가 확장되었다. 짧은 일 년간의 경험이었지만 다른 세계, 다른 삶의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내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늘어난 것 같았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그런 자유로운 생각은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들로 인해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췄다. 그저 하루하루를 버티고 살아가기에도 급급한 삶이었다. 특별한 재미나 즐거움은 바라지도 않으니 그저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그거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시기에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또 한 번의 해외생활을 경험했다. 직장에서도 이미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에는 늦은 나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버리고, 낯선 곳에서 이방인으로서 다시 제로 그라운드에서 시작하는 기분으로 또다시 떠나게 된 것이다. 아니, 떠나게 된 것도 있었지만 내가 떠나기로 선택한 것일 테다.



디아스포라, 나그네로서의 삶


지금이나 그때나 스위스는 언제나 나에게는 쉼과 안식같은 곳이고, 따뜻하게 나를 감싸 안아주는 곳이다. 그래서 힘들 때면 늘 스위스 생각이 났고, 언제 다시 그곳에 갈 수 있으려나 그리워서 마음이 아픈 그런 곳이기도 했다.


스위스에 있을 때도 필리핀에서와 마찬가지로 어쩔 수 없는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한국에 돌아와서도 이곳에 온전히 속하지 않은 이방인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언제나 혼란스러웠다. 여기에도 저기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은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왜 내가 태어나고 평생을 나고 자란 이곳에서조차 나는 이방인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일까. 왜 나는 잠시 머물렀을 뿐인, 어쩔 수 없이 언제나 이방인으로서 살 수밖에 없는 곳을 끊임없이 그리워하고 갈망하는 것일까.


몇 년간이나 풀리지 않는 이 수수께끼 같은 질문의 답을 찾지 못한 채 헤맸다. 지금도 여전히 이 질문에 완벽한 답을 찾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런 정체성의 분열과 같은 괴로움에 꽤 유용한 처방이 될 수 있는 설명을 찾았다. 한 세미나를 통해 접한 '구성적, 메타포적 경험으로서의 디아스포라'로서의 정체성이 바로 그것이었다.


디아스포라라고 하면 성서에서 바벨론에 끌려간 유태인들, 그 이후 세계 각지로 흩어진 유태인들을 일컫는 말로 처음 사용되었지만 최근에는 정치, 경제, 종교 등 다양한 이유로 본국을 떠난 사람들을 일컫는 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그 개념을 더욱 확장시켜서 '구성적, 메타포적 경험으로서의 디아스포라'는 반드시 본국을 떠난 사람들이 아니라도 다양한 이유로 자신이 속한 사회나 공동체에서라도 주변인, 소수자와 같은 경험을 하는, 그래서 디아스포라들이 느끼는 것과 같은 의식세계와 정체성을 경험하는 것을 의미하는 광의의 개념을 내포한다.


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방황하던 나의 영혼이 드디어 적절한 이름을 찾은 것 같았다. 한국과 필리핀 사이, 한국과 스위스 사이, 한국사회 안에서 느끼는 괴리감을 형용할 적절한 표현을 드디어 발견한 것이다. 그러면서 30대가 다 되도록 아직도 헤매고 있는 늦된 나의 자아정체성에 대한 부끄러움이 조금은 씻어지는 것 같은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아, 나는 이상한 사람, 사회 부적응자가 아니라 조금 특별한 디아스포라일 뿐이었구나. 나의 정체성에 새로운 수식어 하나를 덧붙이며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이런 새로운 이름과 함께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지만, 또 반대로 어디에나 속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나는 앞으로도 계속 여행하고, 길을 묻고, 길을 찾고, 머물고, 떠나고, 돌아오고, 방황하는 삶을 계속 이어가려고 한다. 그 여정에서 자그마한 나만의 방이 되었던 스위스처럼, 더 많은 방들을 만들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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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去者必返). 만남에는 헤어짐이 정해져 있고 떠남이 있으면 반드시 돌아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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