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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서 예술가들 만나기

몽트뢰와 브베, 같은 대상을 새롭게 보는 눈

by Helping Hands

로잔 근교에 있는 도시 중 예술가들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몽트뢰(Montreux)와 브베(Vevey)가 있다. 로잔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면 20~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지역이다.



프레디 머큐리가 사랑한 도시, 재즈 페스티벌의 도시 몽트뢰


몽트뢰는 로잔과 가깝지만 휴양도시 느낌이 많이 나는 곳으로, 호숫가 주변에 큰 호텔들도 많고 야자수가 쭉 심어져 있어 이국적인 정취를 풍긴다. 이곳의 랜드마크 중 하나는 바로 전설적인 락 그룹, 퀸(Queen)의 메인 보컬이었던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의 동상이다. 레만 호수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곳에 위치한 그의 동상은 그의 대표곡이라고도 할 수 있는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를 지금도 살아서 부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지금도 음악에 조예가 깊지 않은 편인지라 그의 음악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어릴 적 오빠가 이 '보헤미안 랩소디'를 흥얼거렸던 것은 또렷이 기억이 난다. 가사의 뜻을 알고 난 후에는 조금 충격을 받기도 했다. 몇 해 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한국에서 다시 인기를 끌며 그의 삶과 노래가 주목받았다. 특이한 가사와 긴 서사 형태로 만들어진 당시에는 가히 실험적이었다고 할 수 있는 곡의 구성, 인도 출신 영국인이었던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프리카 출신의 락커. 가사만큼이나 복잡하고 속을 알 수 없었을 것 같은 그의 정신세계와 내면이 그가 만든 곡에서도 잘 나타나는 것 같다. 그의 동상과 함께 몽트뢰의 레만 호수를 따라 걷다 보면 카지노의 부속 건물로 남아있는 그가 작업했던 마운틴 스튜디오를 찾아볼 수 있다.


몽트뢰에서는 매년 7월 초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는데, 프레디 머큐리도 생전에 이 페스티벌에 참여한 적이 있다고 한다. 나는 5년 전 스위스에서 일 년간 머무를 때 시기가 맞아서 잠시 이 페스티벌 기간 중 몽트뢰를 찾았다. 호숫가를 따라 펼쳐진 잔디밭과 공원 곳곳에 섹션을 구분해 시간대별로 다양한 재즈 연주자들의 공연을 들을 수 있었다.


재즈 페스티벌 기간이 아닌 평상시에는 주로 호숫가를 따라 산책하거나 20여분 정도 걷거나 버스를 타면 만날 수 있는 근처의 시옹성에 가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시옹성 내부도 한 번쯤 구경해볼 만 하지만, 시옹성이 유명한 것은 건물 내부보다 호숫가에 성이 떠있는 듯한 신비로운 자태 때문이다.


몽트뢰의 호숫가에서는 수영을 즐길 수도 있는데, 수영하다 보면 어느새 옆에 와서 함께 헤엄치고 있는 백조와 인사할 수도 있다. 프레디 머큐리 동상 바로 옆에 있는 쇼핑센터에서 Migros 같은 슈퍼마켓, 맥도널드, 피자와 파스타를 파는 레스토랑, 화장실 등이 있으니 필요한 편의시설을 이용하면 된다.


호숫가에서 나와 큰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다 보면 시옹성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이 있는데, 그 주변으로 상점과 쇼핑을 할 수 있는 거리, 식당들이 많이 있는 시내가 나온다. 몽트뢰 시내가 궁금하다면 한번 둘러보고 쇼핑을 즐겨도 좋겠다.


몽트뢰에서 바라본 풍경과 프레디 머큐리 동상, 시옹성 전경
주말에 가면 오른쪽 사진과 같이 작은 플리 마켓이 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채플린이 사랑한 도시, 브베


브베는 로잔에서 몽트뢰로 가는 길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 역시 몽트뢰와 마찬가지로 호숫가를 따라 아름다운 경치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기차역에서 내려 조금 걸어 내려오다 보면 호숫가를 찾을 수 있는데, 호수를 따라 걷다 보면 자그마하게 자리 잡고 있는 찰리 채플린의 동상을 만날 수 있다. 브베에 있는 그의 생가는 현재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하니 채플린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방문해보면 좋을 듯하다.


우스꽝스러운 광대 이미지, 희극인 느낌을 주지만 그가 만든 영화들에서 나타나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로 인해 그는 미국에서 추방당하고 이곳 스위스에서 여생을 보내다 삶을 마감했다.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던 그의 삶은 평탄하지 못했던 것 같다. 주류를 거스르려는 사람들,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쉬운 삶을 살기는 어려운 운명의 무게를 짊어지고 태어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런 운명을 지고 태어난 사람들은 어쩌면 스스로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좋든 싫든 자신은 그런 소명을 지니고 태어났으며, 보고 느끼고 깨달은 것들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깨우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복잡한 내면의 생각과 고민들로 평온한 삶을 살기 어려웠을 프레디 머큐리와 찰리 채플린. 그들이 스위스의 작은 도시 몽트뢰와 브베를 그토록 사랑했던 것은 모든 내면의 소용돌이를 잠재우기에 충분한 대자연의 모성을 느낄 수 있는 이곳에서 평안함과 안전함을 찾았기 때문은 아닐까 짐작해본다. 단순하고 단조로운 삶, 자연이 주는 치유적 힘이 그들의 고단했던 삶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기를 바라본다.


채플린 동상과 함께 브베의 또 다른 명물은 네슬레사에서 만든 조형물인 '포크(pork)'다. 호수 가운데에 대형 포크가 서있는 이 재미있고도 흥미로운 랜드마크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각도를 잘 맞춰서 포크를 손으로 잡고 있는 것 같은 모습 또는 누운 채 배에 포크가 찍힌 것 같은 모습을 연출해서 사진을 찍는다.


브베 풍경. 호숫가의 풍경 자체는 같은 레만 호수이기 때문에 몽트뢰에서 보는 것과 거의 비슷하다.
브베의 공원 풍경과 아기자기하고 소박한 골목길
유명한 포크 조형물과 찰리 채플린 동상


같은 대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눈


이전에 로잔에 머물렀을 때는 브베에 그렇게 자주 오지 않았다. 아빠를 모시고 유럽여행에 왔을 때 스위스에 잠시 머무르면서 몽트뢰와 묶어서 당일치기로 한 번 다녀온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번 세 달 살기 동안에는 몽트뢰보다 오히려 브베를 더 많이 찾았다. 예전에 왔을 때는 너무 조용한 시골마을 같아서 큰 재미를 못 느꼈는데, 이번에 다시 브베를 찾았을 때는 오히려 그 조용함과 한적함에 매력을 느꼈다.


몽트뢰가 관광객들로 붐비는 세련된 도시의 느낌이라면, 브베는 현지인들이 조용한 일상과 휴식을 즐기는 작은 마을 같은 느낌이다. 조용하지만 적당한 활기가 느껴지는 호수 주변의 카페와 레스토랑, 호수 옆 공원의 잔디밭에 누워 즐기는 피크닉의 여유가 좋아서 이번 세 달 머물기 동안에는 브베가 가장 즐겨 찾는 곳 중 하나가 되었다.


같은 장소에 대해서도 이렇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각 변화에 따라 바라보는 시선과 선호가 달라진다. 로잔 시내를 다니면서도 이따금씩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수십 번 다녔던 길, 수십 번 보았던 곳인데 살짝 각도를 틀어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니 같은 장소가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수십 번 오간 로잔 대성당이었는데 이 날은 완전히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았다. 그러자 익숙했던 성당이 처음 본 곳인양 전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사람에게서도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잘 아는 사람이라고 여겼는데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그럴 때마다 '의외성'이라는 새로운 감각이 눈을 뜬다. 그런 의외성으로 인해 때로는 가깝던 사람과 멀어지기도 하고 멀었던 사람과 급속히 가까워지기도 한다. 또, 내가 상대방을 바라보는 시선을 변화시키면서 멀어졌던 관계가 다시 가까워지기도 한다. 상대방을 바라보는 나의 렌즈 조리개를 조절하면서 빛이 투과되는 정도, 클로즈업하거나 포커스 아웃하는 정도를 달리하기도 하고, 때로는 카메라 위치 자체를 옮겨서 바라보는 방향을 아예 달리 하기도 하는 것이다.


어떤 대상이든, 대상과 내가 맺는 쌍방향적인 관계 속에서 대상의 변화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경우들이 있다. 그것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냥 바뀐 모습 그대로에 적응하거나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같은 대상도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이것은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여행을 할 때, 예전에 봤던 눈에 익은 대상이라도 새로운 각도와 방향에서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 이 스킬을 삶의 더 많은 영역에도 적용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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