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스위스에서 화장실 찾기

화장실 문화는 다르지만, 결국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

by Helping Hands

유럽의 화장실 품귀 현상


스위스를 비롯한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바로 화장실이다. 말도 안 통하고 문화도 다른 유럽에서 음식이나 다른 여러 가지 애로사항이 많지만 생리현상이 급할 때 화장실을 찾지 못하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을 거다.


화장실 사용에 관대한(?) 우리나라와는 달리, 유럽은 대부분 공중화장실이 유료이거나 화장실 자체를 찾기가 쉽지 않다. 유럽으로 패키지여행을 가본 적이 있다면 아마 가이드분이 "여러분~ 화장실 찾기 어려우니까 이번에 가는 음식점/카페에서 화장실 꼭 다녀오세요."라고 하는 말을 한 번 이상은 반드시 들어봤을 거다.


요즘은 우리나라도 카페나 식당 화장실에 비밀번호나 열쇠가 따로 있는 곳이 많지만, 그래도 지하철이나 공원의 공중화장실, 상점 화장실 등을 찾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다. 유럽에 비하면 화장실 인심이 매우 후한 편이다.


스위스 역시 다른 유럽 나라들처럼 화장실이 개방되어 있는 곳이 많지 않다. 지하철역이나 기차역의 화장실을 이용할 때도 1~2 CHF(한화 약 1,200~2,400원)을 내야 하거나, 카페나 음식점 안의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해도 대부분 비밀번호가 걸려있다.



스위스에서 화장실 찾기


나 역시 로잔에서 시내에 나갈 때면 화장실을 찾느라 애를 먹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처음 스위스에 왔을 때는 모든 상점들이 오후 7시도 안 되어서 문을 닫고, 그마저도 일요일에는 아예 영업을 하지 않는 시스템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화장실 역시 마찬가지였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 마시고 싶지도 않은 커피를 마시고 카페 화장실을 이용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러다가 차츰 나름의 노하우를 터득했다. 스위스에 오래 산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당연한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시내에 가면 Migros나 Coop 같은 대형 슈퍼마켓 건물이나 Manor, Globus 같은 백화점들이 있다. 보통 이런 건물의 꼭대기층에는 해당 브랜드에서 운영하는 뷔페식 레스토랑이 있다. 마치 Ikea에 가면 레스토랑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옆에는 쇼핑몰 이용객들을 위한 화장실이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런 쇼핑몰이나 마트에는 층마다 화장실이 있지 않고 꼭대기 층에만 화장실이 있다. 그래서 층마다 화장실이 있는 것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1,2층만 돌아보다가 화장실이 없는 줄 알고 나가기 쉽다. 하지만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갖고 4, 5층 정도에 위치한 식당가를 찾아보라. 그 길의 끝에 한줄기 구원이 있을 찌어니.


Migros나 Coop, Globus 같은 곳들은 스위스 어느 도시를 가도 규모가 조금 있는 지역이라면 시내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지역에 상관없이 유용한 팁이 될 수 있다.


이 방법 말고 조금 더 구차한 방법도 있는데, 나의 경우에는 로잔에 오래 있었던 만큼 자주 가는 카페나 레스토랑의 화장실 비밀번호를 외우기도 했다. 영세한 개인사업자가 하는 카페나 식당에서 주문도 하지 않고 화장실만 이용하면 민폐겠지만, 스타벅스나 맥도널드 같은 프랜차이즈에서는 이 방법이 유용했다. 작은 카페나 레스토랑은 화장실에 비밀번호 자체가 없는 곳이 많다. 하지만 매장을 이용하지 않고 화장실만 가기에는 양심상, 도의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그나마 손님이 많고 자유로운(? 뭐가 자유롭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읭?) 스타벅스나 맥도널드를 타깃으로 정했다. 물론 이 때도 음료나 메뉴를 주문한 경우가 대부분이긴 했다. 웬만하면 화장실만 이용하지 말고 메뉴도 주문하는 것이 교양 있고 매너 있는 선진시민으로서의 도리겠지.



조금 다른 변기 문화를 경험할 가능성


너무 디테일한 정보인지 모르겠지만, 이왕 화장실 이야기를 시작한 김에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자. 대부분 스위스 화장실은 우리에게 익숙한 양변기 구조를 하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조금 색다른(?) 경험을 할 수도 있는데, 장소에 따라 변기 커버가 없거나 유럽인들의 큰 키에 맞춰져 높이가 높은(단신인 사람들은 뜻하지 않게 공중부양을 한 채 볼일을 보게 될 수 있다) 변기가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놀라거나 당황하거나 노여워하지 말고, 주어진 환경 안에서 최선을 다해 편안한 마음으로 최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인생에서 더 많은 시련도 헤쳐 나가는데, 그 정도 도전쯤이야. 할 수 있다!



화장실 문화는 다르지만, 결국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다


장황하게 화장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예전에 탄자니아로 2개월간 봉사활동을 갔던 때가 떠오른다. 처음 가본 아프리카에서 여러 가지 문화충격이 있었는데, 화장실 역시 그 안에 포함되었다. 물이 귀하고 상하수도 시설이 잘 갖춰지지 않은 탄자니아에서는 화장실이 대부분 푸세식이었는데, 나야 그래도 어린 시절 시골에 가면 두 손으로 코를 꽉 비틀어 막고 인고의 시간을 겪었던 경험이 있었기에 조금 힘들긴 했지만 전혀 적응하기 어려운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함께 갔던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외국인 친구들이었다. 팀원들 중에는 미국인, 뉴질랜드인 친구들도 있었는데, 이 친구들이 푸세식 화장실 문화를 알 리 없었다.


한 친구는 화장실에 다녀올 때마다 매번 발목을 닦곤 했는데, 봉사활동 기간이 끝날 무렵까지 아무도 그 이유를 몰랐다. 그러다 2개월 만에 그 비밀이 밝혀졌는데, 푸세식 화장실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던 이 친구가, 화장실에서 쪼그려 앉지 않고 볼일을 봤던 것이었다. 그러니 당연한 결과였다.


또 한 미국인 친구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화장실에 밤에 다녀오느라 손전등을 들고 갔는데, 그만 놓치는 바람에 아래로 떨어진 손전등이 3박 4일간 화장실을 환히 밝혔다는 구슬프고도 더러운 전설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나와 특별히 친해진 뉴질랜드인 친구가 있었는데, 그때 이 친구는 10대 후반으로 나와 나이 차이가 꽤 있었다. 그럼에도 이 친구와 더 가까워진 계기가 있었다. 그 당시 머무르던 숙소에서 화장실을 가려면 100m 정도를 걸어가야 했는데, 외국인이 흔치 않은 그곳에서 손에 두루마리 휴지를 들고 화장실을 갈 때마다 현지인들이 모두 쳐다보는 것 같은 시선이 느껴져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마치 화장실 런웨이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달까.


그러던 중 어느 날은 이 친구가 화장실을 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마치 동지라도 만난 것처럼, 반갑고 기쁜 마음에 그럼 나랑 같이 가자고 했다. "아니 나는 남자고, 너는 여잔데, 나랑?"이라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친구의 표정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혼자 가는 것보다는 둘이 걷는 런웨이가 그나마 좀 덜 부끄러울 것 같았다. 어차피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으니, 각자 볼일(정말 말 그대로 '볼일'이었다)을 보고 다시 만나 돌아오면 되는 거였다.

그렇게 첫 번째 런웨이를 함께 하고 난 후, 우리는 날마다 런웨이를 함께 걷는 동기가 되었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온 어느 날, SNS에서 이 친구가 내 이름에 태그를 걸었다. 무슨 내용인가 싶어서 봤더니, 화장실과 관련된 내용이었는데, 댓글에 영어로 소리 나는 대로 " ddong chin-gu(똥 친구)"라고 적어놓은 것이었다.


수많은 친구가 있지만, 이제는 똥 친구까지 생기다니. 정말 떼려야 뗄 수 없는 질긴 인연이다.

그래, 벽에 똥칠하는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 우정 영원히 포에버, my dear 똥 친구.



p.s: 다행히도(?) 이번 편에는 첨부할 사진이 없다. 구체적인 이미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keyword
이전 10화스위스에서 예술가들 만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