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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서 하늘을 날기, 패러글라이딩

인터라켄과 브리엔츠 호수에 사랑의 불시착

by Helping Hands

스위스와 사랑의 불시착


자연이 아름다운 스위스에서는 하이킹, 스키, 수영, 카약킹 등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다. 그 중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패러글라이딩'인데, 특히 인터라켄 지역은 하이킹과 함께 패러글라이딩을 즐길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작년 초 손예진과 현빈 주연의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한참 인기를 끌었는데, 이 둘이 만난 계기는 손예진이 패러글라이딩을 하다가 우연히 북한에 불시착했기 때문이다.


물론 남한에서 출발해 북한으로 불시착했다는 설정이었기에 스위스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 후 드라마 스토리에서 현빈과 손예진이 예전에 이미 스위스에서 마주쳤던 적이 있었고, 또 헤어진 후 다시 스위스의 아름다운 호수에서 현빈이 피아노를 치며 재회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렇게 억지로 억지로 사랑의 불시착과 인터라켄 패러글라이딩 사이의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까닭은, 인터라켄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현빈과 손예진이 만났던 흔들다리(suspension bridge)와 현빈이 피아노를 쳤던 브리엔츠 호수를 하루에 다녀왔던 날이 있었기 때문이다. 굳이 엮어서 얘기하자면 '인터라켄과 브리엔츠 호수에 사랑의 불시착한 날’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하지만 현빈은 없었다는 슬픈 사실...).



인터라켄(Interlaken)에서 패러글라이딩 즐기기


인터라켄은 스위스의 관광지 중 한국인들에게도 매우 잘 알려진 곳이다. 독일어로 '호수 사이'라는 뜻을 가진 '인터라켄(interlaken)'이라는 지명답게 좌우로 호수를 끼고 있는데, 서쪽이 튠(Thun) 호, 동쪽이 브리엔츠(Brienz) 호다.


인터라켄에는 이미 3~4번 정도 와본 적이 있어서 익숙한 장소였지만 패러글라이딩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로잔에서 3시간 정도 차를 타고 인터라켄에 도착했는데, 오는 길에 보이는 호수와 산의 경치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스위스에 오래 있었지만 언제 봐도 결코 질리지 않는 풍경이다.


인터라켄 중심가에 있는 패러글라이딩 회사 사무실에서 등록하고 차로 이륙 장소까지 10여분 정도 산을 올랐다. 금액은 일행들과 함께 단체(group) 기준으로 140CHF(한화 17만원 정도),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주는 별도 요금 40CHF(한화 5만원 정도)였다. 사진과 동영상 촬영은 선택사항이고, 단체 기준으로 할인된 금액이니 개인으로 하게 되면 더 비싸다.


나는 평소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높은 건물에 올라가는 것을 무서워하는 편이다. 오죽하면 큰 쇼핑몰 안에서 위아래가 개방되어 있는 대형 에스컬레이터에 타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런데 희한하게 그나마 자연에서는 고소공포증이 좀 덜하다. 높은 산에 올라 옆에 낭떠러지가 있을 때 물론 두려움을 느끼기는 하지만, 실내 건물에서 느끼는 것만큼의 공포는 아니다.


전에 필리핀에서 살 때 세부에서 패러세일링(parasailing, 보트에 낙하산을 묶어놓고 배가 출발하고 달리는 가속력으로 낙하산이 공중으로 뜨는, 하늘에서 즐기는 액티비티)을 한 적이 있다.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괜찮을까 했는데 출발 전에는 긴장했지만 오히려 하늘로 올라가고 나니 속도도 빠르지 않고 평온하고 안정적이었다. 함께 탄 지인들과 상공에서 나중에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평화로운 시간을 즐기고 무사히 착륙해 보트로 돌아오니, 패러세일링을 하자고 했던 지인이 그제서야 사실은 얼마 전에 패러세일링을 하다가 한국인들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있었다며, 미리 말하면 다들 무서워서 안 한다고 할 것 같아서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도 무사히 살아돌아와서 이 글을 쓰고 있으니 다행이다.


어쨌든 그 이후로 거의 10년만에 다시 하늘을 날게 되었다. 이륙 장소에서 비행을 인도하는 조종사와 함께 2인 1조로 낙하산에 몸을 연결했다. 내가 앞에, 조종사가 뒤에 탄 채 적당한 때를 기다렸다가 비탈길을 따라 힘차게 달리다보면 어느새 몸이 공중에 떠있다. 낙하산이 힘을 받으려면 주저앉지 않고 언덕을 따라 쭈욱 달리는 것이 중요한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생후 30년이 훌쩍 넘은 나이에 갓 태어난 송아지마냥 비틀비틀대며 "I can't walk(못 걷겠어요!)"를 외치다가 조종사가 뒤에서 달려주는 힘으로 간신히 출발할 수 있었다.


인터라켄의 아름다운 산과 평야


하늘에서 바라본 인터라켄 풍경


바람도 잔잔하고 쾌청한 날씨였던 덕분에 하늘에서 바라본 인터라켄의 풍경은 청사진을 보는 것처럼 맑고 선명했다. 높은 고도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아래에서 바라볼 때와는 또다른 느낌을 주었다. 작은 성냥갑처럼 보이는 집과 차들, 낙하산 옆으로 손에 닿을듯 가깝게 스쳐가는 산자락들, 발 아래로 펼쳐진 튠 호수와 브리엔츠 호수의 물줄기들와 평야들. 사람이 만들어낸 회색빛과 무채색들은 점점 아득히 멀어지고 연두빛, 초록빛, 청록빛, 하늘빛같은 자연의 색감들만이 필터링되어 남아있었다.


한편 조종사는 이 하늘에 있는 자신의 오피스에서 열심히 직업정신을 발휘하느라 바빴다. 낙하산 방향과 속도도 조절하면서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도 취하라고 하고, 동영상을 위해 "여기 올라와보니까 기분이 어때? 경치가 어떻니?" 하는 등등의 말도 계속 시키고. 참 사람의 능력이란 한계치가 어디까지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하늘에 낙하산 기구 하나와 자신의 조종 실력만 가지고 이렇게 떠있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거기서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고, 앞에 앉은 고객까지 챙기다니 말이다.


이렇게 평화로운 비행을 어느 정도 즐기고 하늘에서의 체공(滯空)에 익숙해질 때쯤이면 조종사가 또 다른 이벤트를 선물해준다. 트릭(trick)이라고 하는 공중회전이나 급선회하는 기술을 선보이면서 스릴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주로 착륙을 얼마 앞두고 하는데, 고소공포증은 느끼지 않았지만 급선회할 때마다 어지럼증과 멀미 증상이 느껴져서 아쉽게도 즐기지 못하고 그만해달라고 조종사에게 부탁해야 했다. 착륙하고 나서 다른 일행에게 들어보니 자기도 멀미가 나서 그만해달라고 하고 싶었는데, 영어가 유창하지 않기도 했고 당황하다보니 제대로 말이 안 나와서 너무 힘들다는 말을 "I'm crazy"라고 했단다. 그러니 조종사는 너무 좋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공중회전과 급선회를 더 많이 했다는 웃픈 이야기였다. 만약 패러 글라이딩할 때 어지럽거나 멀미가 나면 절대 "I'm crazy."라고 외치지 말 것.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테니 말이다.


착륙 지점에 도착해서 보니 곳곳에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많은 사람들, 더 정확하게는 낙하산들이 보였다. 조종사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처럼 이렇게 조종사와 함께 즐기는 경우도 있지만 개인이 자격증을 따서 주말이나 여가 시간에 이렇게 혼자 장비를 챙겨 나와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취미로 패러글라이딩이라니, 참 멋지기도 하고 용감하기도 하다.


발 밑으로 펼쳐지는 경치가 장관이다. 하늘 위에 앉아 있는 기분이 색달랐다.

브리엔츠 호수의 피아노와 흔들다리


패러글라이딩을 마치고 잠시 인터라켄 시내를 구경한 후 차로 20분 정도 달려 브리엔츠의 호숫가로 이동했다. 들판 사이 사이로 보이는 농가와 얼룩소들이 맞이해주는 입구를 지나 조금 걸어 내려오자 브리엔츠 호수가 한 눈에 내려다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 작은 선착장 같은 곳이 보였는데, 바로 현빈이 피아노를 쳤던 그 장소였다. 지인 말대로 생각보다 자그마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 뒤로 보이는 호수와 산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곳까지 알고 장소 섭외를 했을까, 참 대단하기도 하고 노력을 많이 했겠구나 싶다.


브리엔츠 호수와 호수로 내려가는 길에 만난 소들, 농가의 풍경

그곳에서 잠시 경치를 감상하고 포토 타임을 가진 후, 다시 조금 더 이동해서 피크닉을 즐기기에 적당한 호숫가를 찾았다. 일행들 모두 많이 배가 고팠던 터라, 도착하자마자 잘 구워진 고기와 소시지 등을 허겁지겁 먹고 각자 호숫가에 앉아 쉬거나 수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배가 빵빵하게 차고 나서는 남아있는 잔불에 스모어(S'more)를 구워먹었다. 비스켓 사이에 구운 마쉬멜로우와 초콜릿 등을 넣어서 먹는 북미 지역의 간식인 스모어는, 칼로리로만 보면 가히 악마의 디저트라고 할만하겠지만 그 맛 역시 악마의 맛이라 할만큼 중독성이 강하다. 오죽하면 이름조차 "더 주세요(Some more)"를 계속 반복하다 보니 나온 말인 스모어(S'more)일까.


호숫가에는 주인과 함께 나온 강아지가 신나게 놀고 있었다. 사람보다 동물에 관심이 더 많은 나는 강아지 주인들이 알콩달콩 데이트를 즐기는 동안 강아지에게 작은 조약돌을 던져주며 놀아주었다. 내가 개와 놀아준 것인지 개가 나와 놀아준 것인지는 묻지 않기로 한다.


피크닉을 즐긴 호숫가의 풍경

평화로운 오후의 한 때


그렇게 오후 시간을 보내고 다시 근처에 있는 흔들다리로 이동했다. 현빈과 손예진이 서로를 알기 전 마주쳤던 바로 그 다리다. 이 다리는 건너는 데 5분 정도 걸리는데,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 무서울 수도 있다. 하지만 실내 건축물에만 한정된 나의 희한한 고소공포증은 고맙게도 패러글라이딩 때와 마찬가지로 이 곳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다리 위에서는 좌우로 펼쳐진 산자락의 고즈넉한 풍경과 호수 등을 조망할 수 있다.


흔들다리 위에서 바라본 풍경



로잔으로 돌아오는 길, 튠에서 모히또 한잔


이미 상당히 많은 것을 한 하루였지만 모처럼 나온 김에 일찍 돌아가기 싫었던 우리 일행들은 로잔으로 가는 길에 잠시 인터라켄 근처에 있는 튠(Thun)에 들렀다. 스위스의 수도인 베른(Bern) 옆에 있는 이 도시는 2년 전 스위스에 왔을 때 베른을 둘러보면서 함께 당일치기로 여행왔던 곳이다.


시내 중심가로 들어가는 길에 있는 강가와 목조다리를 건너면 광장과 레스토랑 등이 쭉 늘어서 있다. 이미 저녁 8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이어서 쇼핑몰이나 웬만한 상점들은 문을 닫아 있었고, 광장 중심에 있는 레스토랑과 펍, 카페들은 그래도 영업을 하고 있었다. 로잔까지 다시 가려면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일행들과 간단히 차를 마시고 가기로 했다.


카페에 들어가 각자 메뉴를 정했다. 나는 상큼한 음료가 마시고 싶어서 모히또를 골랐고, 다른 일행들은 핫초콜릿, 커피 등을 시켰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아름답게 저물어 가는 어느 토요일 저녁을 만끽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튠의 풍경을 바라보며 즐기는 모히또 한잔


새로운 경험에 도전해보는 것, 옆구리를 찔러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스위스에 그렇게 자주, 오래 있으면서도 패러글라이딩을 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라켄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해보라고 추천해주기도 했지만, 별로 그렇게 와닿지는 않았다. 이번에도 아마 이렇게 일행들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었다면 굳이 내가 찾아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옆구리 찔려서 새롭게 시도해보는 일들이 생각보다 재미있고, 해보길 잘했다 싶은 경우들이 꽤 있다. 한달 전부터 브런치를 시작한 것도 사실은 내가 자발적으로 했다기보다는 옆구리를 찔러준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몇년 전에도 브런치를 해보라는 지인의 권유가 있었지만, 누군가에게 내 글을 공유하고 보여준다는 것이 왠지 부끄럽기도 했고 그 때 마음으로는 썩 내키지 않았다. 내 안에 나만 알고싶은, 아직 어딘가에 꺼내놓기는 조심스러운 설익은 생각과 감정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난 지금, 다시 같은 제안을 여러 사람에게 받으면서 새삼 '그럼 한번 해보지 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옆구리를 찔려 도전한 패러글라이딩은 항상 밑에서만 바라보던 인터라켄을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새로운 시야를 허락해주었고, 브런치는 항상 습관처럼 해오던 글쓰기를 많지는 않을찌라도 꾸준히 읽어주는 누군가와 공유하는 즐거움을 선물해 주었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며칠 전에는 '스위스에서 세 달 살기' 시리즈 중 한 편인 '#5.스위스에서 산행하기'Daum 메인화면 '여행맛집' 카테고리에 소개되어 요며칠간 평소보다 훨씬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물론 잠시간의 일이겠고, 갑자기 내 글이 엄청 훌륭한 글이 된 것도 아니다. 반대로 주목받지 못한 다른 글들이 그 글보다 못한 것도 아니다. 모두 하나같이 내 손가락 아파 낳은(?) 소중한 내 자식들이다. 하지만 그냥 그 경험 자체가 신기하고 새롭고, 감사하다. 시작해보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다.


이렇게 새로운 경험에 도전해 보는 것, 옆구리를 찔러주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것, 참 좋은 일이다.


Daum 메인화면에 노출된 브런치 글 '#5. 스위스에서 산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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