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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서 코로나19 백신 맞기

로잔에서의 코로나 백신 접종과 PCR 검사, 정체성과 환대에 대한 질문

by Helping Hands

스위스 입국 당시의 코로나 확산세와 한국에서의 PCR 검사

이번에 스위스에 머물렀던 3개월(4월 말~7월 초)은 유럽에서 아직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고 있을 때였고, 이웃나라인 독일이나 이탈리아에서는 확진자가 수만 명씩 나오던 시기였다. 스위스는 그에 비하면 하루 확진자가 2000명대로 비교적 양호한 편이었지만, 800만의 인구 대비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니었다.


코로나의 위협이 계속되고 있던 만큼 각 나라의 출입국 규정도 시시각각 바뀌어서, 매일 대사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비행이나 출입국 규정에서 바뀌는 부분, 추가적으로 준비해야 할 서류는 없는지 살펴보았다.


그 당시 한국은 스위스의 방역 기준에서 다행히 코로나 위험 등급 리스트 중 안전한 국가로 분류되어 있었고, 한국 출발 전 72시간 이내에 받은 PCR 검사 음성 결과서와 스위스 보건당국에서 지정한 앱을 다운로드하여 QR코드를 보여주는 것이 전부였다. 한국처럼 입국 후 2주간 자가격리가 의무는 아니었다.


비행기표를 끊고 출국 시간을 계산해 가까운 보건소에 가서 PCR 검사를 받았다. 일 년 이상 코로나의 위험 속에 살았지만 그 전에는 주변에서 직접적으로 확진자를 보거나 확진자와 접촉한 적이 없었기에 처음 해보는 코로나 검사였다.


긴 대기줄을 거쳐 컨테이너 박스로 만들어진 검사소에 들어가서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과 마주 보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푹 푸욱 쑥 쑥-


잠시 기분 나쁜 촉감이 콧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빠르게 검사를 마치고 나가는 길, 코안이 얼얼하고 찡했다. 알레르기성 비염이 있는지라 재채기와 눈물이 계속해서 나왔다. 그렇게 다소 매운맛의 첫 번째 코로나 검사를 한국에서 받았다.



스위스 입국 후 코로나 상황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의 환승 시간을 포함해 열다섯 시간 정도 걸려 스위스 제네바 공항에 도착했다. 암스테르담에 현지 시각으로 새벽 5시경 떨어진 덕에 공항에는 문을 연 상점도 없었고, 아직 동이 트기 전이라 공항 주변은 어두운 밤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환승 대기 장소 외에 다른 곳에는 가지 말라는 항공사의 안내가 있기도 했고, 딱히 갈만한 곳도 없어서 대합실에서 아침이 밝아오길 기다렸다. 한두 시간 정도 지나자 공항 상점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하나둘씩 출근해서 가게 문을 열기 시작했다.


제네바 공항에 내려 공항에 마중 나온 일행들을 만나 차에 올랐다. 한국이었으면 바로 자가격리 모드로 들어갔을 텐데, 한국이 코로나 안전 국가로 분류되었다고는 하지만 해외 입국자인데 이렇게 아무 제재 없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니, 아니 다녀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잠시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같은 질병에 대해서도 이렇게 나라마다 대응방식이 다를 수 있구나 싶었다.


코로나로 의심되는 증상이 있을 경우에는 자가격리를 해야 하지만, 내 경우에는 아무런 증상이 없어서 도착 직후부터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또, 실외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었기에 숙소 근처의 숲을 산책하거나 시내에 나갈 때 야외에서는 그나마 상쾌한 공기를 마실 수 있었다. 물론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의무사항이 아니라도 조심하는 차원에서 마스크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스위스에서 코로나19로 인한 활동 제약이나 생활의 불편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식당이나 카페, 펍 등의 실내 영업은 올해 초부터 계속 중단되고 있는 상태였다. 테이크아웃이나 매장 밖에 있는 테이블에서만 취식이 가능했고, 실내 영업이 재개된 것은 6월 초부터였으니 실내 취식에 관한 부분은 한국보다 훨씬 까다로운 편이었다.


또, 종교활동이나 모임과 관련해서도 실내공간에서 모일 수 있는 인원 제한과 함께 비말 전파 우려 때문인지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서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그래서 스위스에 있는 동안 종교활동을 하거나 모임을 할 때 노래 부르는 시간이 있으면 다 같이 마스크를 쓴 채 입모양만 뻥긋하거나 입모양도 하지 않고 속으로 가사를 되뇌는 것이 전부였다. 이 제한 역시 6월경에 조금 더 느슨해졌다.


예전에 스위스에 방문했을 때는 상상할 수 없던 일들이, 코로나로 인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한국이나, 스위스나 정도와 방법의 차이는 있었지만 코로나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로잔에서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이렇게 스위스에서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법에 조금씩 익숙해질 무렵, 로잔이 속해있는 보(Vaud) 주에서 스위스 전체의 연방주들 중 가장 먼저 지역 거주자에 대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마 4월 말 아니면 5월 초쯤이었던 것 같다. 한 지인은 보 주에 대형병원도 많고, 이 지역이 진보적인 색채가 강해서 아마 더 접종이 빨리 진행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이 접종대상에는 현지 보험 가입 등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외국인도 포함되었다. 다행히 보험에 가입해 있었기에 온라인으로 1차 접종을 예약하고 정해진 날짜에 접종 장소로 향했다. 내가 간 곳은 로잔 시내에 있는 임시 센터로, 병원은 아니었고 다른 용도의 건물을 잠시 접종 장소로 사용하고 있었다.


정해진 시간보다 10분 정도 일찍 도착해 대기하다가 안내에 따라 입장해서 몇 가지 서류를 작성하고 드디어 백신을 맞으러 갔다. 내가 맞은 백신은 1, 2차 모두 모더나였는데, 1차 접종 때는 약간 긴장이 되었지만, 친절한 의료진들 덕분에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백신을 놔준 의료진과 잠시 대화를 나눴는데, 포르투갈에서 유학 온 간호학과 학생이라고 해서 백신을 맞고 나가는 길에 포르투갈어로 "오브리가도!(Obrigado: 고마워요)"하고 인사했다.


백신을 맞고 나서 이상 증세가 없는지 15분 정도 대기한 후 집으로 돌아가는데, 나도 그렇고 주변의 지인들을 봐도 대부분 1차 접종 이후에는 크게 증상이 많이 없는 것 같았다. 거의 대부분 같은 곳에서 모더나 백신을 맞았는데, 주사를 맞은 팔이 묵직하고 뻐근해서 움직이기 어려운 느낌이 공통적인 증상이었다. 그 외에는 드물게 미열이나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게 1차 접종을 마치고 4주 정도 지난 후 2차 접종을 하러 갔는데, 접종 진행 방식은 1차와 동일했다. 다만 2차 접종 후에는 1차 접종 때보다 후유증이 조금 더 있었다. 접종 당일에는 아무렇지도 않아서 시내에서 볼일까지 보고 들어갔는데, 이튿날이 되니 오한과 식은땀, 어지럼증과 메스꺼움이 심해서 하루 정도 침대에만 누워있고 식사도 죽으로 대신했다. 다행히 삼일째가 되자 컨디션이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주변 지인들을 봐도 대부분 1차보다 2차 때 더 아픈 것 같았다.


나보다 스위스에 오래 있던 지인들 중에는 이미 작년에 코로나를 앓고 회복된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런 경우에는 회복일로부터 6개월 이상 경과된 후 1회에 걸쳐 2 회차분(second shot)에 해당하는 백신을 한 번만 맞으면 되었다. 이미 몸에 항체가 형성된 상태라서 그런 건지 몰라도 이렇게 예전에 이미 코로나에 걸렸던 사람들이 백신을 맞는 경우 걸리지 않았던 사람들보다 더 아파하는 것 같기도 했다. 지인 말로는, 코로나에 걸렸을 때만큼 아팠다고 했다.


로잔의 코로나 19 백신접종 센터


로잔과 한국에서의 PCR 검사


한국 입국을 얼마 앞두고 해외 백신접종자 자가격리 면제 규정이 바뀌었다. 해외에서 백신을 2차까지 모두 맞고 2주 이상이 경과한 경우에는 대사관에 자가격리 면제 서류를 제출하고 심사를 받으면 2주간의 자가격리를 하지 않아도 되게 된 것이다. 나는 시기가 잘 맞은 덕분에 자가격리가 면제되었다. 하지만 한국에 들어오기 전 PCR 검사 음성 결과서 제출은 여전히 필수였기에, 로잔에서 두 번째 PCR 검사를 받았다.


이번에도 온라인으로 미리 예약을 하고, 검사소로 향했다. 한국과 비슷하게 임시로 마련해 놓은 컨테이너 진료소 앞에서 10분 정도 대기한 후 검사를 받았다. 두 번째라서 그런지 첫 번째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끝났다. 혹시 몰라 검사 결과서에 진료소명, 검사 시간, 결과 등 표기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최대한 많이 다 써달라고 부탁했다.


로잔에서 PCR 검사를 받은 코로나19 검사소


검사 결과를 메일로 받고 백신 접종 증명서류, 자가격리 면제 증명서류 등을 챙겨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인천공항에 내려 태어나서 한국 공항에서 경험한 것 중 가장 까다로웠던 입국 심사를 마쳤다. 코로나로 인해 통과해야 할 게이트가 4~5군데 정도로 늘어났고, 그때마다 코로나 관련 서류를 모두 보여주거나 제출해야 했다. 그렇게 입국심사를 마치고 나서 바로 집으로 가서 자가격리 후 다음날 보건소에 가서 PCR 검사를 한번 더 받았다. 음성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자가격리가 의무였다. 다행히 다음날 아침 일찍 음성 통보를 받고, 그 후 일주일 정도 매일 자가진단 앱에 아침저녁으로 상태를 체크하고 하루에 한 번 담당 공무원의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6일째 되는 날 다시 보건소를 찾아 PCR 검사를 받고 다음날 음성결과를 받았다.


자가격리가 면제된 것만으로도 대단히 감사하기는 했지만, 스위스에 입국했을 당시 자유롭게 바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과 많이 대비되었다. 어찌 보면 그만큼 철저하게 관리를 하는 것이니 내국인으로서 안심이 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각각 장단이 있는 것 같다.



백신 접종과 코로나, 정체성과 환대에 대한 질문들


어쨌든 나로서는 코로나가 한창인 시기에 생각지 못하게 스위스에 가서, 더 생각지 못하게 백신을 맞는 경험을 했다. 덕분에 한국에 있었다고 가정했을 때보다 상대적으로 빠른 시기에 백신을 맞을 수 있었다.


백신 접종을 하면서 코로나19나 백신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도 더 많아졌는데, 백신을 맞을 수 있는 상황이 되더라도 맞을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 그중 하나였다. 실제로 지인 중 일부는 체질적으로나 유전적으로 백신이 잘 맞지 않거나 독감 예방 주사 등을 맞았을 때도 부작용이 있었던 경험으로 인해 백신을 맞지 않기로 선택했다. 백신을 맞을 수 있는 여건이 되더라도 모든 사람에게 백신이 최선의 선택지는 아닐 수 있음을 새삼 깨닫는 사건이었다.


또, 외국인 신분으로 코로나 시기에 스위스에 있으면서 처음에 느꼈던 불안감과 백신 접종을 하면서 느낀 감사함 등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하기도 했다. 4월 말경 스위스에 도착할 당시 이미 코로나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터라 작년 코로나가 처음 발생했을 때만큼 아시아인에 대한 반감이 심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미국이나 유럽 곳곳에서 혐오범죄가 발생한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미 많이 가보았고 익숙한 로잔이었지만 이번에 다시 갈 때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혹시 시내나 길을 다니다가 범죄의 표적이 되면 어떻게 하나, 사람들이 경계의 눈으로 바라보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정체성,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나의 정체성이 '아시안 여성'이라는 한 단어로 정의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올라왔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이유로 스위스에 와있는지는 하등 관계없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내가 그냥 수많은 '아시아' 사람 중 하나로만 비춰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처음 스위스에 다시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외출할 때마다 더 조심스럽고 괜히 남의 시선을 더 많이 의식했다. 하지만 다행히 스위스에 있는 동안 그런 차별적인 시선이나 언행을 경험한 적은 없었다. 산책을 하며 숲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코로나가 있기 전 평범했던 여느 때처럼 미소로 화답해주었고, 가볍고 경쾌하게 "봉쥬르(Bonjour)", "봉수아(Bonsoir)"하고 짧은 인사를 건네며 지나쳐 갔다. 한 번은 한국에서 마스크 쓰기에 너무 익숙해진 나와 지인이 맞은편에서 사람이 오는 것을 보고 후다닥 마스크를 쓰자 그 사람 역시 웃으면서 함께 마스크를 써보이며 우리를 안심시킨 적도 있었다. 외국인인 나에게도 여전히 따뜻하게 웃어주고, 백신 접종의 기회를 준 스위스와 스위스 사람들에게 왠지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제껏 유례없는 징글징글한 이 역병 앞에서 우리는 사람들과 '거리두기'를 실천해야 하고, 서로를 만져서도 안되며 안아줘서도 안된다. 참 서글프고 안타까운 현실이다. 하지만 이 전대미문의 역병을 더욱 무시무시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 어쩌면 그로 인해 우리 마음속에 생기고 있는 '타인과의 거리'가 아닐까 싶다. 물리적으로는 어쩔 수 없이 당분간 계속 거리를 두어야겠지만, 우리의 마음속 거리는 더 가까워질 수 있기를, 낯선 이방인에게 경계와 의심의 눈빛을 보내기보다는 환대온기를 나눌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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