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내 여행메이트

엄마에게

by 윤지아

엄마 안녕,

우리가 스페인 다녀온 지도 어느새 두 계절이 지나가.

브런치북 <애증의 스페인>을 연재하면서 그때를 다시 떠올려봤어. 하루하루 쌓인 에피소드들을 곱씹어보니 왜 다퉜나 싶었던 것도 있고 더 즐기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도 남았지만 그래도 재밌었어 난.


모녀사이를 애증의 관계라고 하던데 우리는 애증 같은 거 하지 말자.

애틋하다, 애정하다, 애달프다, 애쓰다 등 우리 사이를 표현할 단어가 이렇게나 많은데 '애증'이라는 단어까지는 사용하지 말자.

음.. 그중에서 이왕이면 우리는 애틋한 사이하자. 누가 뭐래도 애틋한 사이.


웬만한 사내아이보다 활발했던 유년기, 지독하게 유난스러웠던 질풍노도의 시기, 사교육비로 기둥 뽑던 애매한 재능까지 나도 나를 생각하면 돌아버리겠는데 어째서 엄마는 날 그렇게 사랑해 주었어?

나도 이런 나를 사랑만 할 수 없겠는데 어째서 그렇게 해주었어?

다음생에는 내 딸로 태어나주라. 내가 먼저, 더 많이 사랑해 줄게


내가 엄마를 속상하게 할 때마다 엄마가 내게 했던 말 기억나?

“꼭 너 같은 딸 낳아라”

난 그런데 그 말이 싫지만은 않았어

엄마, 나는 꼭 나 같은 딸 낳아서 엄마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되면 좋겠어.


엄마 딸로 살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

느리고 부족하고 못난 딸일지라도 항상 우리 딸이 최고라고 말해줘서,

딸이랑 여행 와서 부럽다고 말하는 한국인 여행객들에게 나를 자랑스러워해 줘서 고마워.

엄마는 내게 첫 유럽 여행을 선물해 줘서 고맙다고 말했지만

내 인생의 첫 여행을 선물해 준 건 엄마 당신이란 걸 잊지 마

앞으로는 엄마가 선물해 준 삶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할 테니 항우울제에 의존하고 있는 나를 모르는 척 넘어가줄 수 있을까? 늦더라도 반드시 괜찮아질게.


고마워, 이 한 마디가 이렇게나 무겁다는 걸 덕분에 새삼 깨닫게 되네.

이 글이 언젠가 엄마에게 닿게 된다고 생각하면 부끄럽지만 그럼에도 진심을 담아 글을 써내려 봤어.


그저 나는 엄마에게 솔직하게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어. 그런데 사랑을 담은 말들을 입 밖으로 내뱉는 것이 낯간지럽고 당연한 걸 굳이 말로 하는 것 같아 꾹꾹 참다가 비행기에서 잠이 든 엄마 손을 잡았어.

엄마도 손가락에 힘을 줘서 내 손을 꼭 잡아주었을 때 서로의 마음은 충분히 전달되었다고 생각해.

장난 섞인 말투로 "여행은 역시 친구랑 가는 게 최고다, 엄마랑 여행 가주는 딸이 많은 줄 알아?"라고 말했지만 곧 돌아오는 다음 여행도 내가 먼저 엄마에게 같이 가자고 제안했지.

"엄마 나랑 스페인 갈래?"라고 물어본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아 뱉은 말,

"엄마 우리 호주갈래?"

엄마의 대답은 이번에도 "YES"였고 벌써 다음 주면 우리는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를 즐기러 떠난다고!

역시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최고의 여행메이트라니까.



- 여전히 손이 많이 가는 우리 집 막내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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