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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아 Nov 21. 2024

세고비아 백설공주는 어디로 갔을까?

8일 차 세고비아

세고비아에 도착하자마자 본 것은 로마 수도교였다.

세고비아라고 적힌 버스정류장에서부터 존재감을 내뿜고 있는 수도교는 가까이 갈수록 압도적인 규모였다.



2천 년 전 로마인들이 이곳을 지배했을 때 산에서 흐르는 물을 도심으로 끌어오기 위해 만들었다. 2만 400개의 화강암을 쌓아 만들었는데 어떤 철심이나 시멘트도 사용하지 않았고 떠받고 있는 167개의 아치가 수도교의 무게를 지탱해주고 있다.

가까이서 보면 돌마다 구멍이 뚫려있는데 돌을 들어 올리려고 쇠붙이를 넣기 위해 홈을 낸 것이라고 하는데, 2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굳건히 보존되어 있다니 여러모로 대단했다.

이곳에서 쌓은 엄마와 나의 추억도 이렇게 굳건할 수 있을까?



세고비아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만큼 곳곳에 세고비아만의 멋을 간직하고 있었다. 

하몽으로 유명해서 그런지 어렵지 않게 하몽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구하기 어렵다는 프링글스 하몽맛도 사고, 엄마가 귀여워하던 아기 돼지가 앉아있는 머그컵도 샀다. 


멋진 풍경이 그려진 컵도 많은데 왜 하필 아기 돼지 컵이냐고 물으면서도, 쇼윈도 너머로 아기 돼지 머그컵을 가리키며 쟤는 꼭 데려가야겠다고 하던 엄마의 모습을 한번 더 보고 싶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성의 모티브가 된 곳이 세고비아 알카사르라고 한다.

백설공주 동화를 읽고 동화 속 세상을 믿던 내가 이만큼이나 자랐다.

어렸을 적 내가 생각한 것처럼 세상은 그리 동화 같진 않았지만 앞으로 내게 남은 날들 중 며칠쯤은 동화 같은 날도 있진 않을까?

아직 동화를 버리지 못한 어린 시절의 내가 조금은 남아있나 보다.



실제로 보면 아담하지만 그래서 더욱 동화 같았던 알카사르.

스페인 제국의 황금기였던 펠리페 2세 때에는 왕의 결혼식이 거행되기도 했던 성이자, 지하에는 죄수들을 가두었던 동굴감옷이 있던 성.


알카사르성에는 내가 알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는 없었다.

공주가 살았다고 보기엔 투박했고 내부에 가득 차 있던 무기들이 내 어릴 적 환상을 단번에 쫓아냈지만, 그럼에도 백설공주 동화를 읽고 동화 속 세상을 꿈꾸던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해 준 소중한 곳임엔 틀림없다.

알카사르성에서 엄마와 백설공주 대한 이야기를 하던 시간은 어린 시절의 내가 엄마 손을 꼭 잡고 동화 속 환상을 쫓아 시간을 거스렀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는 어린 시절 과거에 남겨둔 채 세고비아를 떠나 우리의 마지막 여행지인 마드리드로 향했다.

마드리드에 도착해서는 가장 먼저 프라도 미술관을 방문했다. 미술학도였던 내가 기대했던 곳이었지만 시간이 촉박한 관계로 몇 가지 그림 설명만 듣고 나왔다. 수박 겉핥기도 이것보단 더 핥는 걸 비유한 말일 것 같다.


사실 여행 마지막날의 마지막 일정이라고 생각하니 집중이 되지 않았던 것도 있다. 기분이 이상했다. 

마지막은 언제나 이렇게 아쉽다. 언제쯤 마지막에 익숙해지는 나이가 될까,

언제쯤 마지막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내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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