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차 톨레도
우리가 톨레도에 도착한 날은 스페인에 머무는 동안 가장 절정의 날씨를 보여줬던 날이었다.
톨레도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었지만 맑은 날씨 덕분에 걸음걸음이 가벼웠달까?
톨레도에 도착하자마자 대성당으로 향했다. 계속되는 성지순례에도 냉담신자인 아녜스 자매님은 지치지 않았다.
엄마 요새 성당 안 나가잖아..
볼수록 눈이 가는 스테인드글라스의 화려한 색감은 마지막까지 황홀했다.
특히 예수의 탄생부터 고난을 겪고 천국으로 가기까지의 모든 일대를 표현해 놓은 천국의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천장에 구멍을 뚫어 빛이 들어오게 만들어 놓은 모습은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잡아두기에 충분했다.
대성당의 내부는 전반적으로 어두웠는데 천국에서 내려오는 채광이 내부를 비추는 구조로 인해 그 부분은 빛이 드는 천국이 되었다. 심지어 빛이 드는 각도까지 계산해서 성모마리아가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쪽으로 빛이 떨어지게 된다.
순환, 처음이 곧 끝이요.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었다.
이렇게 톨레도 대성당을 마지막으로 스페인 성지순례는 끝이 났다.
대성당에서 나와 발길 닿는 대로 들어선 골목은 내 취향으로 가득했고 늘어서있던 작은 가게들은 시간만 여유로웠다면 조금 더 머물고 싶을 만큼 좋았다.
블로그에 검색하지도, 구글맵에서 찾아본 것도 아닌데 계획하지 않아도 이런 보물 같은 가게들을 발견할 수 있다니. 아니 계획하지 않아서 닿게 된 걸까?
어느 한 조용한 가게에서 액세서리를 구경하던 중, 엄마가 무언가를 가리키며 작은 목소리로 "나 이거 사줘"라고 말했다.
가격표를 확인하지도 않고는 "그래 이걸로 달라고 할게"라고 대답했다.
그리곤 속으로 이 말을 덧붙였다.
작고 반짝이던 귀걸이보다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한 엄마의 모습이 더 반짝였다고.
우리는 귀여운 소품 하나에도 호들갑스럽게 "우와 우와"를 뱉었다.
골목 안 작은 가게들을 다니며 엄마의 귀걸이와 마그넷, 와인 뚜껑을 샀다. 더 돌아다니고 싶었지만 버스 시간이 정해져 있기에 절제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 또 톨레도에 가게 된다면 그땐 좀 더 오래 머물면서 작은 가게들에도 시간을 더 쓰고, 엄마의 취향에도 더 신경 써야지. 아쉬움이 남아 다시 갈 이유가 생겼으니 오히려 좋다고 합리화를 했다.
다음에는 더 멋진 여행이 될 거라고.
쇼핑에 모든 정신을 쏟아부은 우리는 당 충전을 위해 지나치며 본 젤라토 가게로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기에는 시간이 애매하다고 생각했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이 손에 젤라토 하나씩 들고 있는 것을 본 이상 우리 손에도 젤라토가 들려있어야 할 것 같았다.
젤라토 가게를 생각보다 많이 지나쳐왔는지 한참을 가도 안 보여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얼른 가게를 찾아서 주문도 해야 하고 길도 찾아야 하고 돈계산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귀로는 엄마의 말을 듣고 있지만 머릿속으로는 버스 시간이 촉박하다는 생각에 콘으로 시켜달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도 컵으로 주문해 버렸다. 별 거 아닌데도 젤라토를 괜히 먹자고 한 건 아닐까 싶은 생각에 자책했다.
젤라토를 담는 직원은 여유로웠고 나는 그 골목에서 가장 초조한 사람이었다.
스페인에서 처음 맛본 젤라토는 본연의 맛의 충실한 젤라토였다. 이게 진짜 민트초코맛이구나 싶어서 "너무 맛있다"를 연발했다.
젤라토 사진을 찍고 지도앱을 켜서 시간을 확인하는 순간, 이대로라면 버스를 놓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엄마에게 빨리 뛰라고 재촉하며 앞장서 뛰었다.
톨레도의 골목길은 왜 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건지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서기도 해서 지도상에서 도착시간이 늘어나기도 했다. 아마 내 인생 최고로 구글맵에게 가장 화가 났던 순간이다. 지도앱을 켜면 길을 잘 찾아가는 편인데 톨레도 골목길은 당최 길을 찾을 수 없었다.
뒤돌아보니 엄마 이마에는 땀이 흥건했고 손에는 톨레도 골목길에서 산 기념품이 들려있었다.
길을 찾는다는 명분으로 엄마에게 짐도 들게 하고 빨리 좀 뛰라고 재촉도 했다. 결국 돌아 돌아 길을 찾았고 간신히 출발 직전인 버스에 탈 수 있었다.
골목길을 뛰어다니던 중, 엄마가 우리의 마그넷이 담긴 포장지를 떨어뜨렸는데, 포장되어 있어서 깨졌는지 바로 확인할 수 없었지만 불길한 느낌이 들었고 나도 모르게 "깨지면 엄마 탓이야"라고 말했다.
다행히 마그넷은 깨져있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톨레도에 다시 갈 일이 없으니 다신 못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엄마와의 시간이 더더욱 살 수 없는 것이었다. 그깟 마그넷이 뭐라고.
난 아직도 냉장고에 붙어있는 톨레도 마그넷을 볼 때면 그때가 떠올라. 나 자신이 너무 창피해.
앞으로도 계속 떠오를 거 같아. 떠오를 때마다 엄마에게 잘해야겠다고 한 번씩 더 다짐해 볼게.
나의 버럭에 삐진 엄마는 버스에 타서 내 옆좌석이 아닌 뒷좌석에 앉았고 뒤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에 진땀을 뺐다.
엄마에게 화가 났던 게 아니야. 나 자신에게 화가 났던 건데 미안해 엄마. 나도 당황해서 그랬어 미안해.
그렇게 이번 여행에서 엄마와 싸우지 않기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 사건은 우리에게 스페인 1차 모녀전쟁으로 불린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다면 좋았을 '1차' 스페인 모녀전쟁.
엄마 기억에는 그리 나쁘지 않은 날이길 바라는 건 내 욕심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