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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아 Nov 14. 2024

행복은 세비야 메트로폴 파라솔 위에

6일 차 세비야

스페인에서 바르셀로나, 그라나다, 론다를 거쳐 번째 도시 세비야에 도착했다.


세비야는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에너지를 가진 도시였다.

스무 살 첫 해외여행을 기점으로 이곳저곳을 다니며 느낀 건 역시 난 너무 자연도, 너무 문화유산도, 너무 세련된 도시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적당한 문화유산과 적절한 자연을 보기 위해 스페인의 여러 도시를 다니기로 계획한 것이다.

그중 세비야는 자연과 문화유산, 적절히 붐비는 도시가 혼재되어 있는 곳이었다.


여행할 때 디테일하게 계획하고 계획대로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mbti J형 인간이지만, 이번엔 엄마와 나의 첫 유럽여행인 만큼 더더욱 완전히 슈퍼 울트라 J답게 여행을 시작했다.

나는 나의 스타일을 좋아하지만, 그런 여행 패턴이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은 막상 가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데 다음 일정이 빠듯해서 더 오래 머물지 못할 때이다. 마치 전날 갔던 론다처럼.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세비야 대성당은 짓는 데 100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외관도 외관이지만 화려한 내부는 입이 떡 벌어질 만큼이나 멋있었다. 세비야 대성당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갔지만 가이드님의 파워 설명으로 무교인 나도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었다.


특히 죽어서도 스페인에 묻히고 싶지 않다던 그의 유언대로 콜럼버스 무덤이 공중에 떠 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스페인 도시마다 성당에 들리게 되어 성지순례하는 느낌도 받았지만 좋은 가이드님을 만난 덕분일까? 세비야 대성당은 무교인의 성지순례 중 가장 재미있었다.



세비야에서 가장 기대했던 건 목조 건축물 메트로폴 파라솔이었다.

메트로폴 파라솔에 도착한 시간, 해가 그리도 쨍할 수 있나 싶을 만큼 투명한 날씨였다.

덕분에 메트로폴 파라솔 위에서 본 풍경은 색깔이 하나하나 다 선명하게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외쳤다. 

"바로 이거잖아!"



내가 바라던 스페인의 모습은 메트로폴 파라솔 위에 있었다.

아래에서 위를 보는 것도 좋았는데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너무나도 좋아서 핸드폰을 자주 떨어뜨려 카메라 액정에 약간의 흠집을 낸 과거의 내가 밉기도 했다.


메트로폴 파라솔 위는 숨 막히는 더위 속 숨이 트였던 유일한 순간이었다. 

메트로폴 파라솔 위에 서 있을 때에는 바람이 많이 불어 머리카락이 내 뺨을 사정없이 내려쳐도 좋았다. 게다가 다다음생에는 건축학도가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도 다시 떠올랐다.


이곳에서의 석양도 끝내준다던데 언젠가 메트로폴 파라솔 위에서 석양을 보는 날이 올까?

그때도 내 옆에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세비야 광장은 광장 주변이 붉게 물들어갈 때쯤 도착했다.

도착하자마다 본 세비야의 하늘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고 흔한 비눗방울마저 특별하게 느껴져서 시간 가는 게 아까울 정도였다. 이 모습을 눈에 담아 오래오래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내 인생샷을 찍어주기 위해 내게 자주 휴대폰을 들이대곤 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좋은 딸이 되어보자 다짐했건만, 빼곡한 스케줄에 지친 나는 엄마의 “여기 좀 봐바”라는 말에도 툴툴거리고 말았다.

나는 엄마가 이 멋진 풍경을 눈에 많이 담아가기를 바라서 했던 말인데, 엄마는 엄마가 담아가고 싶었던 모습을 찍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엄마에게 여태 이렇게 좋은 곳도 안와보고 뭐 했냐며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지금이라도 엄마가 이곳에 올 수 있어서 좋았어. 그것도 나와 함께.



세비야 광장에서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플라멩코 공연을 보러 갔다.

플라멩코는 보기 전까진 그저 구두굽소리가 가득한 공연이려니 싶었다. 공연을 위한 연기일까 정말 그들의 삶의 일부일까 싶을 정도로 진지하게 빠져들기 전까진 말이다. 볼수록 그들의 열정에 박수가 절로 나왔다.

내게 한 번이라도 저렇게 열정적이었던 순간이 있었나? 

저 정도로 열정을 쏟아본 일이 있었나, 애써 앞만 보고 살던 나를 되돌아보게 했다.



내리쬐는 강렬한 햇볕만큼이나 에너제틱했던 세비야,

스페인에 다시 가게 된다면 론다와 함께 세비야도 또 가야지. 아디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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