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차 그라나다
나이 들수록 사진첩에 꽃 사진이 늘어간다던데 내 사진첩 켜기가 무서운 요즘이다.
바르셀로나를 떠나 스페인의 소도시인 그라나다로 향했다.
그라나다 일정은 하나뿐이었지만 그 일정이 알함브라 궁전 투어라 온전한 하루를 썼다.
그라나다는 몇 년 전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알게 되었다. 드라마는 1화만 보고 내 취향이 아닌 듯하여 2화부터는 보지 않았지만, 덕분에 그라나다를 알게 되었으니 그걸로 된 거다.
그라나다에는 알함브라 궁전을 보겠다는 이유만으로 갔다.
알함브라 궁전은 상상했던 것보다 경이로웠고 황홀했다. 엄청난 정교함에 감탄을 하면서도 높은 강도의 노동으로 고통받은 이는 없었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단순히 눈으로 보면 아름답지만 깊이 들여다보고 생각하면 복잡해지는 것들이 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일수록 더 그렇다.
궁전 안에 있는 정원들까지 보려고 하니 어느새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이토록 아름다운 모습을 눈에 담기 위해서겠지. 나는 사진 찍기 바빴고 엄마는 조경에 감탄하기 바빴다.
조경이 끝내주긴 하네
알함브라 궁전을 걷는 내내 엄마와 손을 잡고 다녔다.
어릴 적에는 에너지가 넘쳐서 엄마 손을 뿌리치고 뛰어다니기 일쑤였는데, 이제는 엄마 손보다 커진 내손으로 엄마 손을 잡는다.
넓디넓은 이곳을 걷는 동안 서로의 손을 놓지 않았다. 손에 땀이 나더라도 놓지 않았다.
이렇게 행복한 순간에 엄마와 손을 잡고 걷는 게 이 시간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같았다.
한참을 걷다가 엄마에게 말을 걸었다.
"잠깐만, 나 전생이 떠오르는 것 같아."
엄마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공주님 수발들던 시절 말이야?"
역시 난 아직 엄마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거라던데, 그렇다면 난 앞으로도 이길 생각이 없다.
그라나다는 쇼핑할만한 곳도 없고 맛집도 없지만 알함브라 궁전 하나만 보러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알함브라 궁전을 보고 나오는 길에 가이드님이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음악을 틀어주셨는데, 이어폰을 타고 흘러나오는 그 음악을 듣던 순간이 그라나다 하면 바로 떠오르는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나무 사이로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과 따뜻한 엄마의 손, 이어폰을 통해 들려오는 음악까지.
진짜 알함브라 궁전에서 이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사랑하는 엄마와 함께라는 것이,
시간을 멈추고 싶은 순간이었다.
알함브라궁전 관람 팁
1. 알함브라궁전 티켓은 몇 주전에 미리 예약하고, 가장 빠른 시간의 티켓을 예약하면 여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2.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는 불충분한 설명에 이상한 번역투의 말투라고 하니, 실제 가이드 분들이 해주는 투어를 신청하면 훨씬 더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다.
3. 입장 시 여권과 티켓을 확인하므로 미리 준비해 놓을 것, 중간에 가방 검사 구역들이 있으니 웬만하면 작은 가방과 소지품을 적게 들고 가는 것이 좋다.
4.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노래를 다운로드하여 가서 나오는 길에 들으면 기억에 오래 남는다.
5. 사진도 좋지만 영상으로 남기면 볼 때마다 그 순간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파주의 한 수목원처럼 보이기도 하고
누가 보면 스페인인줄 모를 수도 있지만 엄마와 나는 알잖아. 그럼 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