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랑 스페인 갈래?
우연히 가우디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후, 스페인은 다른 정보 없이 오래전부터 막연하게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마침 퇴사하고 휴식기를 갖고 있던 엄마에게 스페인에 가자고 제안했다.
항공권을 예약하고 출발일을 기다리는 동안 이미 다녀온 친구가 "스페인은 지아 네가 분명 좋아할 만한 곳이야"라고 말해줬기 때문일까? 디데이가 다가올수록 기대감은 커져갔다.
엄마와 단둘이 가는 여행이라는 점에 조금은 불안하기도 했다. 평소에 엄마는 내게 베스트프렌드나 다름없는 존재지만 진짜 동갑내기 친구는 아니라서 좋아하는 음식이나 원하는 관광지 및 쇼핑, 심지어 체력까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엄마는 sns에서 떠도는 '부모님 해외여행 10 계명'을 정독해 왔다고 말했다.
부모님 해외여행 10 계명은 아직 멀었냐 금지, 음식이 달다/짜다 금지, 겨우 이거 보러 왔냐 금지 등 자녀와 함께 해외여행 시 말하면 안 되는 문장들이다.
엄마도 나와의 여행이 긴장되었던 걸까? 그 순간 혼자 속으로 삼킨 말이 있다.
'엄마가 굳이 왜 봐? 나 엄마한테 짜증 내지 않을 거야. 진짜 진짜 진짜로!'
스무 살이 된 후 1년에 두세 번씩은 비행기를 탔지만 열 시간이 넘는 비행은 스페인이 처음이었다.
1년 전 얻은 허리디스크로 인해 허리 쿠션과 진통제, 파스까지 야무지게 챙기면서도 14시간의 비행이 걱정되었다. 14시간의 비행동안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도 걱정했는데 출발 하루전날까지 야근한 탓에 많은 시간을 잠에 쏟았다.
중간중간 스트레칭을 하기도 하고 한국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확신의 신파 영화를 보고는 주책맞게 눈물도 흘렸다.
그때 내가 본 영화 <3일의 휴가>는 3년 전에 죽은 엄마가 저승에서 휴가를 받고 지상으로 내려와 딸을 만나는 이야기를 담은 판타지 영화인데, 하필이면 엄마랑 봐서 새어 나오는 눈물을 참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영화 속 대사처럼 '기억이라는 게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연료'가 맞다면 내 주변 사람들에게 최대한 좋은 연료를 주고 싶어졌다.
엄마와도 더 많은 추억을 쌓아야겠다고 다짐하는 순간, 엄마와 단둘이 스페인행 비행기에 있다니.
아주 완벽한 여행으로 만들겠다고 한 번 더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