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에 쓸 단어를 몇 개 뽑아봤다. 출판 계약조차 아직 안 했지만, 어떻게든 세상에 나올 내 첫 새끼. 머릿속에서는 그야말로 ideal한, 나의 완전체. 뭘로 할까. 무슨 단어를 넣을까. 맨 처음 떠오른 단어들은 이랬다. 포기 전문가, 정도 이탈자, 방황 종결자, 일생이 한눈팔기, 실패종결자 ...... 이 낱말들을 뽑아 놓고 가만히 바라보자니,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나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걸까?
실상 저 위의 단어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삶이기도 했다. 대책 없고, 맥락 없던 삶. 긴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닌, 그런 삶. 인과관계 따윈 없어서 복기가 힘든 삶. 그도 그럴 것이 고등학교 입학 이후로 10여년 동안 대학 4년을 겨우 마친 것 외에는 무엇 하나 제대로 마친 것이 없으니 말이다. 남들은 한 번도 그만두지 않는 고등학교를 두 번이나 때려치웠고, 의도치 않게 재수에 이어 삼수까지 하고 말았으며, 취업과는 전혀 거리가 먼 학과를 변변찮은 점수로 졸업했고, 팔자에도 없는 영업사원을 하다가 그마저도 1년도 못되어서 잘렸다. 포기했거나, 하찮은 의지로 도전 비슷한 것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한 것들이었다. 방황은 끝도 없이 했고, 이제는 더 이상 방황은 하지 않으니 방황 종결자도 맞고, 중학교 졸업 이후로는 항상 벗어날 궁리만 하면서 한눈만 팔았으니 적어도 반생(半生)정도는 한눈을 팔며 살았던 것도 맞다.
지극히 전학을 가서도 그쪽 아이들과 완전히 섞이지 못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는 10대의 대집합 중에서 단지 ‘고등학생이 아닌’ 집합에 속해있었을 뿐이었다. 자퇴를 늦게 한 탓으로 19살 수능 날에는 혼자 놀았으며 남들 재수할 때 첫 수능을 쳤고 삼수할 때 재수를 했다. 입학 후에는 관심도 없는 전공수업을 들어야 했으므로 대학 생활은 또 한번 언저리의 시간들이었고, 어떻게든 무언가를 빨리, 많이 팔아서 살아남아야만 했던 계약직 1년 동안에도 나는 빨리, 많이 팔아야 할 이유를 납득하지 못해 언저리에 속했고 결국은 살아남지 못했다.
지금도 역시 언저리의 시간이다. 나는 20대 후반이고, 누군가의 말마따나 ‘청년백수’다. 남들 출근 준비 할 때 나는 식구들이 남긴 설거지를 하고, 남들 출근 할 때 빨래를 넌다. 저축 따위는 하지 않았기에 잔고는 넉넉지 않고 그렇다고 또다시 취직을 하고 싶지도 않다. 바꿔서 말하면 나는 솔직히 아무 것도 되고 싶지가 않다.
의도치 않게 나는 항상 어딘가의 언저리나 변두리에 걸쳐져 있었다. 이쪽도 저쪽도 아닌. 그야말로 주변인이었다. 부스러기나 파편, 같은 존재. 그래서 외로웠다. 항상 춥고 외로웠던 것 같다.
그런데 찰리 채플린이 그랬다던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고. 그렇다. 한발 물러나서 보니 희극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극도로 비극이었고 가장 비극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사실은 진정한 희극이었다.
한발 물러나면 보인다. 언저리에 있는 많은 게 보인다. 이쪽도, 저쪽도 살뜰히 다 보인다. 그리고 그 언저리에서의 시간들이 나를 만들었다. 그래서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언저리에 있는 , 나를. 앞으로도 나는 이 언저리에서, 위성처럼 쉼 없이 궤도를 돌며 내가 본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할 거다. 언저리에서 반짝거리는 것들을. 아무도 보지 못하는 것들을. 내가 알아차려주고, 사랑해 줄 것이다. 지금 내가 나 자신을 알아차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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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년 전에 쓴 글입니다. 너무 힘든 시절에 쓴 글이라서 그냥 올리지 말까 하다가 예전과 지금의 변화를 담고 싶어서 올려두었습니다.^^
얘가 전에는 이렇게 살았구나~정도로만 봐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