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느 어느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연을 보고 나는 혼자 큭큭 웃었다. 15년차 신화 빠순이인 누나를 둔 남동생이 쓴 글이었다. 요약 하자면 글쓴이의 누나는 혼자 썼던 이층 침대의 1층을 막아 가림막을 만들어 자물쇠로 단단히 잠궈 놓고 신화 관련 보물들을 모아놓았었는데, 사춘기의 여자아이에게는 자기만의 고래 뱃속이 필요하다는 것을 어디에선가 주워듣고 만든 자신만의 방이었다는 것이다.
고래 뱃속이라. 나에게도 고래 뱃속 같은 것이 있었던가...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 나의 고래 뱃속은 벽장 속이었다. 겨울이불을 켜켜이 쌓아 놓았던 벽장. 한줌 빛도 들어오지 않은 깜깜한 그 곳에 누워 있다 보면 시간도, 중력도 느껴지질 않았다. 조금 두둥실, 몸이 떠오를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까지 누워 있다가 밖으로 나오면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곳은 엄마도, 아빠도 들어갈 수 없는 오롯한 나만의 공간이었다. 이후 동생이 태어났고, 기숙사엘 들어갔고, 입시를 치렀고, 마치 다랑어나 멸치처럼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떼지어 바다 속을 유영하던 시절을 보내야 했기에 고래뱃속에 들어가 있을 여유는 없었지만, 나는 항상 그리워했던 것 같다. 다만 쉴 수 있고, 다만 숨을 수 있는 그 곳을.
그래서 나는 나의 고래 뱃속을 끊임없이 찾아 나섰던 것 같다. 벽장 속에는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었기에 나의 고래 뱃속은 주로 집 밖이었다. 그곳은 동아리방이었다가, 남자친구의 품이었다가, 남자친구네 집이었다가, 그랬었다. 하지만 백수가 된 당시에는 남자친구가 없었기에 당연히 남자친구의 집도 없었으므로 나는 새로이 들어갈 고래뱃속을 개척해야만 했다. 그곳은 바로 내가 ‘신성한 작업실’이라 칭했던 바로 그곳. 김중혁 작가의 산문집 중에서 '나는 우리 동네에서 제일 싼 원룸을 작업실로 이용한다. 그곳에서 혼자 밥도 해먹고, 낮잠도 잔다.'라는 구절을 읽고 저지른 일이었다.
호오....작업실이라... 글 쓰는 작가들은 추리닝 입고 골방에서 원고를 쓰는 줄만 알았었지 따로 작업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었다. 하여튼 작업실이란 단어는 내게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었다. 뭔가 고독하고 내밀한, 비밀의 화원 같은 어감이었다고나 할까. 크리에이티브 하고 막 엄청 아티스틱 하고 심오하고 막 아방가르드 하고 막막 포스트 모던스럽고 ...는 개뻥이고 ,'작업실이란 미명하에 백수라는 죄책감을 조금은 덜어 내면서도 부모님의 잔소리에서 벗어나 편히 뒹굴 수 있는 공간'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래, 아직 잔고도 있고, 실업급여도 나오니 그렇다면 작업실을 구해버리자. 어디서? 어떻게?
우선 대학교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방을 뒤졌다. 대학교엔 도서관도 있고 무엇보다 주변의 밥값이 싸고 방도 많기 마련이니까. 만 하루 동안의 폭풍검색을 거친 후에 원룸을 석 달 동안만 빌리기로 했다. 이중계약을 맺은 셈이었는데 사정상 빈방에 월세만 내던 방주인은 공과금을 내주겠다는 파격조건을 제시해 월세 25만원에 빅딜(?)이 체결되었다.
오예, 때는 바야흐로 엄동설한이었단 말이다. 하룻 동안 청소와 이사를 한 후 나는 뜨뜻한 방에 누워 공짜 공과금의 혜택을 마음껏 누렸다. 보일러를 살짝만 켜도 금방 바닥이 절절 끓는 기특한 방이었다. 조그마한 간이 욕조를 들여놓고 호사스럽게 반신욕을 하며 책을 읽었다. 그리고 집에서 쌀을 가져다 밥을 해먹었고, 이불속에 들어가 하루 종일 TV를 보다가 지치면 낮잠도 잤다. 되도록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고 했고,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아하기를, 바랐었다. 오롯이 나만의 공간이었던 고래뱃속에서 진공이나 무중력의 상태로, 그렇게 숨어 있고 싶었다. 그러면, 편안해지리라.
그런데 그렇게 무중력의 시공에서 부웅, 떠올랐던 것은 또 한 번 낙오했구나, 란 짙은 자각이었다. 역시 나는, 어쩔 수 없다는. 익숙하지만 무섭고도 무거운 자각. 정말이지 나는 함량 미달의 인간이 아닌가.
그랬다. 집에서건, 학교에서건, 회사에서건 나는 느렸고, 경쟁에 약했고, 멍했고, 하여간에 잘해야 하는 것들은 죄다 잘 해내지 못했다.
그렇지만 나도 노력했단 말이다,
어둠 속에서 힘주어 나는 항변했었다. 멍 때리고 싶은 욕구, 경쟁하기 싫은 욕구, 빨리빨리 살아가는 것이 무서운 마음, 등등을 꾹꾹 누르고, 남은 모든 것을 쥐어 짜내 ‘그들’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나름 노력했다. 그렇게 모든 걸 쥐어 짜내면 겨우겨우 해내긴 했었다. 그래, 그래서 입학을 했고, 그래, 그래서 취직을 했다. 그래서 학교를 나왔고, 그래서 회사에서 잘린 것일 테니까. 때로 나 자신도 헷갈리곤 했다. 내가 안하고 있는 것인가 못하고 있는 것인가. 나는 이유 있는 반항을 한 것인가 아니면 단지 도망쳐버린 것인가. 나는 할 만큼 한 것이 맞는가 아니면 매번 도망에 대한 변명만 늘어놓고 있는 것인가.
확실한 것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해낼 때 나의 에너지는 두 배 빨리 소진된다는 데에 있었다. 일단 무언가 나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어떤 부분을 꾹꾹 누르고 누르는데 에너지를 써야 했고, 그렇게 그것을 눌러야 비로소 그들이 원하는 ‘그것’을 해나갈 수 있었다. 이런 과정에 나는 급격히 에너지를 소모하고, 스스로가 소진, 혹은 연소되는 기분을 느끼고, 그리고 나서는 빵! 나가 떨어져 결국은 고래 뱃속에 숨어 있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고래뱃속에 우두커니 앉아 무서운 것들과 또다시 마주했다. 컴컴한 벽 저편에서 오랜 세월 묵혀온 것들이 뭉게뭉게 피어올라 방을 가득 채웠다. 자책감, 자괴감, 패배감, 열등감, 가랑이가 찢어지게 무언가를 쫓아다녔던 스스로에 대한 자조, 나약함에 대한 부끄러움, 같은 것들이.
십년세월이었다. 십년동안 친구처럼 내 주위를 맴돌고 있던 저런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지지는 않으리라. 그래도 하나씩, 하나씩 떠나보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검은 연기를 헤치고 일어나 불을 켜고, 옷을 벗고 욕조에 뜨거운 물을 가득 받아 목욕을 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검은 연기를 벗겨내 버리기 위해서.
<12~3년 전에 쓴 글입니다. 너무 힘든 시절에 쓴 글이라서 그냥 올리지 말까 하다가 예전과 지금의 변화를 담고 싶어서 올려두었습니다.^^
얘가 전에는 이렇게 살았구나~정도로만 봐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