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창궐한지 벌써 4년이 넘어간다. 당시의 기억이 생생하다. 왜냐하면 코로나가 창궐하기 직전인 2019년 9월, 나는 난생 처음 내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초등 학원이었기 때문에 코로나의 영향을 크게 받았었다.
코로나가 막 언론에서 터지기 시작한 시점을 기억한다. 당시는 완전히 공포분위기였고, 사람들은 집 밖을 나오질 않았다. '걸리면 죽는다더라'는 인식과 함께 각종 자극적인 괴담이 퍼져나갔었다. 사실 나도 겁을 좀 먹기는 먹었었다. 개업 후 4개월, 이제 좀 원생이 모이려나 싶은 시점에 학원엔 아무도 나오지 않게 되었다. 계속 그랬던 건 아니고 한동안이었지만, 그래도 텅 빈 학원을 보고 마음이 좋았을 리가 없다. 현실적인 문제들도 계속 닥쳐왔고 말이다. 월세 내는 날은 얼마나 빨리 다가오던지.
어쨌거나 몇 번의 파도가 있었다. 코로나가 창궐했고, 사람들은 공포에 질렸고, 외출을 하지 않았다. 그 공포가 조금씩 사그라들고 사람들이 활동을 조금씩 다시 할 무렵 코로나는 다시금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했다. 사람들은 또 몸을 사렸고, 그런 패턴이 몇 번이 지나갔고 이제는 마치 그런 질병은 세상에 없었던 것 처럼 우리는 다시 살아가고 있다.
경계심의 물현화
팬데믹 기간, 참으로 많은 것들을 느꼈었다. 당시 우리는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착용했고, 아이들이 있는 곳이나 공공장소 같은 곳에서는 서로에게 침이 튀지 않도록 가림막을 설치해야 했다. 거리두기는 법으로 제정되었고, 서로 접촉을 꺼려했다.
그 상황을 바라보면서 나는 어쩐지, 우리들 마음 속에 있는 서로에 대한 [경계심]이라는 것이 현실로 구현된 것 처럼 느껴졌다. 우리의 생각과 에너지는 실제 현실로 창조되는 것이니 말이다. 우리는 서로들 친하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가까운 사람 사이에서도 자기만의 틀이 존재하고, 상대방에 대한 미묘한 경계의 지점이 있다. 완전히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 경계심은 더욱 심하기도 하고, 낯선 사람에게 때로 공포감과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는 우리이지 않던가. 생각이 현실이 된다는게 이런 것일까, 하고 바라보았던 현상들이었다.
사랑이 아니었던 것이 사랑이 되었다
한편으로 '사랑'에 대해서도 다시 살펴보게 되었다. 우리가 보통 사랑의 표현이라 생각하는 것들은 서로 포옹하고, 자주 만나며, 함께 밥을 먹고, 동고동락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팬데믹 때에는 가까운 사이일수록 서로 멀리 하는 것이 오히려 서로를 위하는 길이었고, 연락은 전화로만 하는 것이 미덕이었으며, 마스크를 벗지 않고 얼굴의 표정을 보여주지 않고, 스킨쉽을 하지 않는 것이 서로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라 여겨졌다. 우리는 흔히 사랑의 표현에 대해서 어떤 고정된 상이 있는데, 사실 사랑의 표현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것보다 훨씬 폭넓으며, 때로는 우리가 전혀 사랑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표현까지 사랑이라고 할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는 사랑에 대해서 너무 폭 좁게 생각하고, '이래야 사랑이지'하는 틀에 너무 얽매여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서로의 연결감
사실 팬데믹 기간에 내가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우리는 정말 하나로 연결되어 있구나'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감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당시에 우리는 이름 모를 어떤 확진자가 잠시 스쳤던 어느 쇼핑몰에서, 버스를 지나갔다는 이유만으로 격리를 하거나 실제로 병을 앓기도 했었다. 이런저런 방법으로 추적하기는 했지만 사실 어느 누구때문에 병에 걸렸는지 누가 정확히 알겠는가. 다만 한 사람의 영향력이 이렇게나 클 수도 있으며, 한사람 한사람이 자기도 모르는 새에 서로의 삶에 깊이 영향을 줄 수 있구나, 사실 원래도 그랬겠구나, 단지 우리가 몰랐던 것 뿐이다, 라는 느낌이었다.
외부 환경에 휘둘리지 않는 '나만의 그 무언가' 발견하기
사실 저렇게 생각이 정리되기까지 내 마음 속의 파도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많은 고통의 시간이 있었고, 수많은 두려움을 마주했다. 나만 그랬던 게 아닐 것이다. 마치 목숨을 위협하는 것 같은 상황속에서 사람들은 여러 가지를 느끼지 않았을까. 어떤 사람은, '곧 죽을지도 모르는데 하고 싶은 걸 해보자'라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고, '죽으면 어쩌지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죽는거 1도 안무서운데?' '걍 막살자'등등 다양한 생각들이 있었을거다.
나 같은 경우도 왔다갔다 했던 것 같다. 사실 시시각각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계속 닥쳐왔는데, 처음에는 무서웠다가,
'어차피 다같이 겪는건데 뭐'
'그래봤자 내가 죽진 않는다'
'그래 기왕 이렇게된거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그냥 내 하고싶은대로 하자'
이런 생각들이 혼재되어서 점점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해서 뭔가 무뎌지게 되었다. 일종의 자포자기 상태였던 것 같기도 하고, 지나친 두려움에 휩싸여 있던 부분에 계속 시달리다보니 어느 순간 그냥 내려놓게 되면서 되려 자유로워진 부분도 컸다. 그런 것들이 혼재되어있긴 했지만, 나 같은 경우는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내가 가장 원하는 것들을 더 많이 시도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외부적인 요건들은 자꾸 끊임없이 변화하고, 기존에 해 왔던 그 어떤 방식도 같은 패턴으로 결과가 나오지 않았고, 그것들을 내가 컨트롤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다만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현 시점에서 하고 싶은 일, 그와 관련되어서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하도 외부의 변수가 많다 보니 오히려 나 자신이 가진 고유한 창조성에 집중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역설적으로, 위기처럼 보였던 것들이 나를 조여올 때 나는 그때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점점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세상이 두쪽이 나도, 어떤 외부적인 파도가 쳐 와도 사라지지 않을 그 어떤 것. 내가 지켜가고, 키워가고 싶은 , 내가 추구하고 싶은 가치. 나는 그런 것들을 더 지켜나갔다. 이상하게도, 더더욱 그렇게 되었다. 그래서 그 사업이 성공했냐고? 그렇지도 않다. 나는 그때 진 빚을 아직도 갚고 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나는 내가 원하는 실체에 좀더 다가가게 되었고 '돈 없으면 죽는다'라는 생존의 공포에서 어느정도 자유를 찾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러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는 보다 흔들리지 않고, 내가 몰랐던 내 자신과 더욱 합일되어 좀더 크고 안정적으로 내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 십수년 글을 써왔지만 쓸 때마다, 마주할 때마다 공포였던 워드프로세서의 흰 화면을 마주하는 시간이 이제는 가장 온전하다 느껴지는 시간이다. 머리를 쥐어짜도 한줄 쓰기 어렵던 시절을 지나 나는 한 호흡에 나 자신도 놀랄 정도로 안정된 흐름으로 나의 생각을 전개해 나갈 수 있다. 여전히 진행중이긴 하지만, 나의 영혼이 원하는 방향성과 나의 방향성을 맞춰 나가려고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나의 영혼이 바랐던 것은 보다 속박을 깬, 자유로운 창조를 할 수 있는 존재로의 진화였다. 그러면서도 균형과 조화를 맞추어 세상과 살아갈 수 있는 삶이었다.
사실 팬데믹으로 어떤 극심한 어려움을 전지구적으로 겪었을 뿐이지, 코로나 아니라도 개별적인 인간은 이런 것들을 살면서 끊임없이 겪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끝없이 더 자유롭기를 원하기 때문에 자신의 두려움을 마주한다.그럼으로써 내가 두려워 하는 것들이 줄어들기를 원한다.그래서 더 행복하기를 원하고, 내가 원하는 것들을 더 창조할 수 있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더 행복하기를 원하는데 왜 고통 속에 빠지느냐고? 내가 처한 고통은 내가 가지고 있는 속박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내 삶은, 내가 인지하지 못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나의 영혼적인 에너지로부터 창조가 되기 때문이다. 콩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나는 것과 같다. 내가 어떤 부분에 있어서 반복적으로 극심한 고통이라 느껴진다면, 그것은 영혼이, 내가 자유롭지 못한 부분에 큰 돋보기를 대고 삶을 창조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만큼 해당 부분에 대해 간절히 자유를 찾기를 원하는 것이다.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 내가 자유롭지 못한 부분에 돋보기를 들이대고 마주할 수 있는 아주 용기 있는 영혼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계속되는 어려움에 처하신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다. 당신은 지금 당신이 가장 어려워하는, 당신의 경계를 깨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기 때문에 단지 고통스럽기만은 하지는 않으실 수도 있다고. 이번
기회를 통해
당신은 외부의 어떤 조건에 휘둘리지 않는, 자신만의 고유한 창조성을 발휘하고, 그로부터 보다 원하는 미래를 창조해내실 수 있을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