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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는여름 Nov 30. 2021

마흔여덟, 신입입니다_4주차

신규공무원 4주차: 마침내 정규직

 처음 글을 쓰려고 결심했을 때는 한 주 한 편 일상을 기록하는 게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금요일까지의 일상이 끝나고 토요일 밤 느즈막하게 차라도 한 잔 홀짝이며 글을 쓰는게 뭐 대수겠냐 했는데 아니, 벌써 5주차 월요일이 지나려 하고 있어. 첫 마음이란 먹기는 쉬웠건만 지키기가 이다지도 어렵다.

 이제 신입이라고 몰려다니던 시간도 끝나고 제대로 업무도 배정받고 바야흐로 직장인 느낌을 내고 있다. 직장인이 되면서 나의 변화를 정리해보자면,


 첫째,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얼마 전 동기와 밥을 먹다 요즘 자꾸 새벽에 깨요, 눈 뜨면 네 시, 다섯 시, 막 이래요. 크게 힘든 일은 없는데 스트레스 받나봐요. 했는데, 몇 시에 자냬. 저, 열 시쯤요.  본인이 그 시간에 자서 자꾸 새벽에 깬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래. 흐흐흐.

 둘째, 아무도 강력하게 요구한 바 없으나 나름 정장에 가까운 옷을 입고 있다. 본래 나는 흔한 동네 아줌마의 패션을 하거나 약간 독특한 옷 사이를 오갔는데 한 달 동안 옷을 막 사들였어, 막. 10년 이상 격식을 갖춘 옷보다는 일상복인지 외출복인지 경계가 흐릿한 옷만 샀는데 이젠 사계절 재킷에 바지, 겨울로 넘어가는 지금은 기모가 약하게 든 옷들, 코트들과 머플러도 갖춰놨다. 아무도 봐주는 이 없지만 제대로 입고 출근길에 오르면 비로소 이야, 사회인 됐구나 기합이 들어간달까.

 셋째, 아들이 더 애틋해졌다.

 제 새끼 안 사랑하는 부모가 잘 있겠냐만 애만 보고 있을 때는 예쁘고 사랑스러운 만큼 와, 쟨 대체 왜 저러냐,싶게 열받는 순간도 만만찮게 많다. 그런데 지금은 기특하고 대견한 부분이 더 커졌다. 지난 주 애가 임파선이 부었었나 보다. 퇴근 무렵에야 전화가 왔기에 뭐, 맛있는거 사갈까 했더니 아니래 목이 아프대. 목에 좋은 약을 사왔으면 좋겠어.  그거는 엄마가 가서 봐야되겠는데? 서둘러 와서 애를 데리고 9시까지 영업하는 병원을 다녀왔다. 언제부터 아팠넀더니 2시쯤부터 아팠대. 왜 바로 전화 안 했어? 아, 전화해서 오면 엄마 짤릴까 봐. 엄마 월급도 못 받고 잘릴까 봐 6시까지 참고 있었단 어린이. 아, 어린이도 사회의 냉혹함에 눈 뜬 것이냐. 귀여우면서 애틋해.

 넷째, 이것은 나의 변화라기보다 남편의 변화인데 집안일을 스스로 매우 많이 척척 해내고 있다. 본래 나는 돈 버는 사람에게 집안일은 시키지 않겠다,가 모토였긴 한데 그런 것 치고도 그는 좀 안 하는 편. 그런데 그가 마누라가 넘 고생한다며 빨래도 돌리고 설거지도 하고 쌀 씻어 밥도 하고. 그런 남편의 등을 보며 아들 보듯 애틋해진 게 나의 변화. 자본주의 사회의 애정은 이렇게 또 싹이 트나 봅니다.

 다섯째, 하아, 이것이 심각한 일인데 설렘이 사라졌다. 하아, 설렘.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 설렘.

 나는 뭘 배우든 뭘 하든 설레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 홍콩 영화에 빠져 침사추이에 가고 중국 노래에 빠져 중국어를 배우고 (따라 불러야 하니까!) 일본 가수에 빠져 일본어도 배우고. 그런데 문제는 설렘이 짧아, 뭘 진득하게 배우고 마스터하기 전에 다 끝나. 당최 깊이 있는 게 하나도 없다. 그래도 뭐, 발이라도 담갔다는데 만족을 하자,인데.

 그런 설렘이 사라졌어요, 내 안에서. 본래는 아들 재운 후 늦은 밤까지 영화도 보고 직캠도 보고 책도 읽고 이것저것 뒤졌는데 싹 다 흥미가 사라졌어. 아직 일에 적응하는 시기이기 때문인 것일까?

 노 설렘, 노 라이프. 설렘이 없음 인생이 아닌 거 아닌가요. 흑. 이렇게 설렘없는 진짜 늙은이가 돼가는 걸까?

 십 년 이상 같은 일을 무한반복하는 하루하루들을 보내며? 아, 그런 삶은 아직 조금 두려운데.


 <노부타를 프로듀스>란 드라마가 있었다. 주인공 고등학생은 아침 출근길 비슷비슷한 어른의 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저런 어른은 되고 싶지 않아.

 그러나 소년은 사회와 비슷한 학교에서 또 많은 경험을 하고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아침 출근길 직장인들 속에서 새롭게 생각한다.

 어쩌면 저들도 아쉬워하거나 기뻐하거나 누군가를 소중히 하며 일하고 있는 건지도 몰라.


 늘 사회인이 되는 게 무서웠다. 설렐 수 없는 삶을 살까 봐. 하여 가볍게 비정규직 사이를 떠돌며 이게 인생이라고 결론내렸다. 하지만 그 시간 내 자유로운 영혼을 위해 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사회 속에서 부단히 부딪치고 깨져왔을거다.

 드라마 속 소년 슈지처럼 나 역시 매일 똑같은 표정으로 출퇴근하는, 설렘을 잃은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설렘이 사라진 진짜 세상 속에서 책임감을 갖고 걸어나가야할 시간인 것 같아. 그 시간들 속에서 나 역시 여전히 뭔가를 아쉬워하거나 기뻐하거나 누군가를 소중히하며 일해나가겠지. 이걸 나이 오십 앞두고 깨닫다니 하아, 고개가 절로 흔들린다.


 오늘 공무원증을 받았다. 마침내 나도 인생 처음의 정규직 직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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