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는 화, 목, 토가 쓰레기 배출일이다. 두 사람 사는 살림에 웬 쓰레기가 이렇게 많이 나오는지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분리수거를 줄이기 위한 방법은 없을까, 삼시세끼 외식을 하면 쓰레기가 안 나올까, 쇼핑요정인 남편의 카드를 압수할까... 혼자 궁시렁거리며 오늘도 비닐이며 플라스틱이며 한 뭉치씩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정원에서 떨어진 놈인지, 지렁이 한 마리가 뜨거운 돌 위에서 이리저리 몸을 굴리며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비 온 후 가끔씩 보도블록에 나와 돌아다니는 지렁이를 집에 가라며 풀밭에 던져주곤 했던지라, 이번에도 아무 생각 없이 그놈을 집어 제일 가까이 있는 나무 밑 잔디에 놓아주었다.
비닐은 비닐대로 플라스틱은 플라스틱대로 상자에 담아 주차장 앞에 놓아두고 다시 계단을 올라오다 아까 그 지렁이가 궁금해졌다. 우리 집에 같이 사는 녀석이니 도로에서 만난 녀석들보다는 왠지 정이 더 갔다고 할까? 어려서 아빠와 낚시 가서 바늘에 지렁이를 꿰며 수없는 살생을 저지른 죄가 생각나 이 놈들에게 특히 더 관심이 갔던 걸까? 아파트 화단에서 기어가는 지렁이를 동생과 풀로 간질이며 깔깔거리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던 걸까?
해가 이렇게 뜨거운데 벌써 땅 속으로 숨었겠지 하며, 아까 그 녀석을 놓아준 나무 밑 잔디를 슬슬 헤쳐보니..... 개미였다.... 녀석이 개미들에게 둘러싸여 처음 봤을 때보다 더 격하게 몸을 굴리고 있었다. 혹시 아까도 저 나무 밑 개미 지옥에서 시달리다 남아있는 온 힘을 짜내 기어 잔디밭 경계석을 넘어 계단으로 굴러 떨어진 것인데, 이제 겨우 살았다 하고 숨을 돌리며 슬슬 움직여 볼까 하고 있었던 참이었는데, 이 물색없는 인간이 제 기분에 빠져 오지랖을 떤 것이 아닌가, 아차 싶었다.
개미들도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니 이 놈들을 욕할 수는 없고,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이 코앞인데 아직도 자기중심적 오만함을 내려놓지 못한 오지라퍼 인간 하나를 탓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