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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하 Jul 22. 2024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필사독서노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2015노벨문학상 수상자/벨라루스 


차분하게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끝내는 다들 거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지른다.

 “내가 목격자야……

 우리 빨치산 부대 지휘관 이야기를 들려줄게…… 지휘관의 이름은 밝히지 않을래. 그의 혈육들이 아직 살아있거든. 알면 가슴 아플 거야……

 지휘관 가족이 게슈타포에게 붙잡혔다는 소식을 연락병이 전해왔어. 아내와 어린 두딸과 늙으신 어머니가 적의 손아귀에 있다는 거야. 사방에 경고문이 나붙고 시장에 삐라가 뿌려졌어. 만약 지휘관이 항복하지 않으면 가족을 모두 교수형에 처하겠다고. 생각할 시간이라고 주어진건 이틀이었어. 경찰이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빨갱이들은 괴물이라고, 그들에게는 소중한 게 아무것도 없다고, 비행기가 숲 위를 맴돌며 삐라를 뿌려댔어……지휘관은 항복해야 하나,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하나 번민에 휩싸였지. 우리는 지휘관을 잠시도 혼자 두지 않았어. 계속 옆에 붙어 있었지. 자살이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모스크바와 연락을 취했어. 상황을 보고했지. 지시가 내려왔고……

지시를 받은 그날 부대에서 회의가 소집됐어. 결국 ‘독일군의 도발행위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결정이 내려졌지. 지휘관은 공산주의자로써 당의 규율에 복종했어……

 이틀 후 우리 정찰병이 마을로 내려갔어. 그들이 가지고 온 소식은 끔찍했어. 지휘관의 가족이 교수형을 당했다는 소식이었으니까. 첫 전투에서 지휘관은 전사하고 말았어……이해할 수 없는 죽음이었어. 전혀 예기치 못한 죽음. 내 생각에 일부러 죽음을 택한 게 아닌가 싶어……

 나는 그저 눈물만 흘려. 말은 못하고……나 스스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확신이 안서는걸 어떡해? 믿게 할 자신이 없는 걸……사람들은 그저 편안하게 살기를 원하지. 고통스러운 이야기 따위는 들으려고 하지 않아……” (코로타예바, 빨치산 병사)

 그래서 나는 더더욱 이 일을 멈출 수 없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시대가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어. 우리를 증명해 보이도록. 그런 시대는 또 없을 거야. 다시는 오지 않을 테지. 그때는 우리의 사상도 젊었고 우리도 젊었어. 레닌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지. 스탈린은 살아있고……소년단 넥타이를 얼마나 자랑스럽게 매고 다녔는지 몰라. 콤소몰 배지도……

 그런데 전쟁이 난 거야. 그래서 우리도……당연히 우리 지토미르에도 곧바로 지하조직이 만들어졌지. 나는 즉시 지하조직으로 들어갔어. 들어가도 될까? 무섭지는 않을까? 이런 건 따져보지도 않았어. 사실 따져보고 말 것도 없었고……

 몇 달 후에 우리 조직이 뒤를 밟혔어. 누군가 우리를 배반한 거야. 게슈타포에게 붙잡혔어……당연히 무서웠지. 나한텐 죽는 것보다 놈들 손에 붙잡히는 게 더 겁나는 일이었으니까. 나는 고문이 무서웠어. 너무 두려운 게……혹시 내가 끝까지 견디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도 나하고 똑같은 걱정이었지……모두들 다……특히, 나는 어려서부터 아픈 걸 유난히도 참기 힘들어했거든. 하지만 그건 우리가 자신을 몰라서 하는 걱정이었어. 우리가 얼마나 강인한지를……

 마지막 심문 후에 나는 벌써 세 번째, 총살대상자 명단에 이름이 올랐어. 그런데 세 번째 심문자로 나선 파시스트가……자기 전공이 역사라고 밝히더니 우리가 왜 그런 사람들인지, 왜 우리에겐 이념이 그토록 중요한지 알고 싶다는 거야. 생명이 이념보다 소중하지 않느냐면서. 당연히 나는 동의하지 않았지. 그러자 소리를 지르며 나를 때리더라고. 그러고는 또 물었어. ‘뭐야? 뭐가 너희들을 이렇게 만든 거야? 대체 그게 뭐라고 죽음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는 건데? 왜 공산주이자들은 공산주의가 전 세계에서 반드시 승리할 거라고 확신하지?’ 그는 러시아어를 아주 잘했어. 그래서 그에게 모든 걸 설명하기로 마음먹었지. 어차피 죽을 목숨, 헛일하는 셈 치고 우리가 얼마나 강한지 알려주고나 죽자싶었거든. 그는 거의 네 시간동안 질문해댔고, 나는 최대한 아는 대로 대답해줬어.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배운 마르크스-레닌주의까지 다 이야기했지. 그랬더니 오, 그가 하는 행동이라니! 자기 머리를 움켜쥐고는 방안을 뛰다시피 서성이고, 한자리에 못박힌 듯 꼼짝도 않고 서 있고, 나를 쳐다보고 또 쳐다보고……하지만 처음으로 매질은 안하더군.

 나는 그의 앞에 서있었어……머리칼이 반이나 뽑혀나간 채로, 그 전에는 양 갈래로 땋아내린 탐스러운 머리채였는데. 배가 고프더라고……처음엔 아주 작은 거라도 빵 한조각만 먹으면 소원이 없겠다 싶었어. 그러다 나중엔 빵껍질이라도, 더 나중엔 빵부스러기라도 제발 먹었으면 했지……그런 몰골로 파시스트앞에 서 있었어……하지만 내 눈빛만은 형형하게 살아 있었지……-중략

 매질을 하고 매달아놓고. 그것도 언제나 완전히 발가벗겨서. 그런 내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손으로 겨우 가슴만 가릴 수 있었어.……여자들이 정신줄을 놔버리는 걸 봤어……돌도 채 지나지 않은 어린 콜랴가 있었어. 우리가 ‘엄마’란 말을 가르쳤지. 그 어린 것이 엄마한테서 떼어놓자 이제 엄마랑 영영 이별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를 소리쳐부르는 거야. 그건 말이 아니었어. 그저 단순한 말이 아니었어……당신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전부 다……아, 거기서 만난 사람들이 어땠는지 당신은 몰라! 그들은 게슈타포 지하실에서 죽어갔어. 그들이 얼마나 용감했는지는 오직 그곳, 거기 지하실 벽만 알지. 이제 40년이 흐른 지금 나는 마음속으로 그들 앞에 무릎을 꿇어. ‘죽는 것이 가장 쉽다’고 그들은 말했어. 하지만 사는 건……아, 우리가 얼마나 살고 싶어들 했는지! 우리는 승리가 오리라는 걸 믿었어. 다만 한 가지, 우리가 그 위대한 승리의 날을 살아서 볼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가 없었지.

-중략

 “전쟁이 끝나고 우리는 아우슈비츠와 다하우(나치의 유대인 강제포로수용소가 있던 곳)에 대해 알게 됐지……세상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 어떻게 아이 낳을 생각을 해? 하지만 나는 이미 임신중이었지……

 나는 기부금을 모으는 임무를 띠고 마을로 파견됐어. 정부에 돈이 필요했거든. 공장들이고 기계설비들이고 다시 돌려야 했으니까. 마을이라고 도착했는데 마을이 없는 거야. 세상에, 마을 사람들 모두 땅속에 살고 있더라고……땅속 토굴집에……한 여자가 밖으로 나왔어. 옷이라고 입었는데 옷도 아니고 보기에 끔찍할 정도였어. 여자를 따라 토굴로 들어갔더니 아이 셋이 잔뜩 허기진 배로 앉아 있더군. 여자가 아이들에게 주려고 뭔가를 절구에 넣고 찧었어. 무슨 풀 같은 거였어.

 여자가 나에게 물었어.

- 기부금을 모으러 왔나요?

내가 대답했지.

-맞아요.

여자가 다시 말했어.

- 돈은 없고 대신 닭 한 마리가 있어요. 어제 이웃 여자가 닭을 팔지 않겠느냐고 물어봤는데 혹시 산다고 하면 지금이라도 팔아서 그 돈을 줄게요. 

 아, 지금도 그 이야기를 하면, 목이 메어와.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있을까!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남편은 전쟁에 나갔다 죽고 혼자서 셋이나 되는 아이들을 키우고 있으면서, 게다가 가진 거라곤 그 닭 한마리가 전부인데. 그런데 그 닭을 팔겠다는 거야. 나한테 돈을 주려고 말이야. 그당시 기부금은 전부 현금으로만 받았거든. 여자는 모든 걸 내놓을 각오가 돼 있었어. 그래서 세상이 평화로울 수만 있다면자기 아이들이 무사히 자랄 수만 있다면여자의 얼굴을 기억해세 아이들 얼굴도……

 그 아이들은 어떻게 자랐을까? 소식을 알면……찾아가서 만나고 싶어……”


 “그때는 울지 않았어……

 두려운 게 딱 하나 있었는데……그건 동료들이 독일군에게 붙잡혀갈 때였어. 소식을 기다리는 동안 정말 피가 말랐지. 고문을 견뎌낼 수 있을까? 고문을 견디지 못하면 우리도 다 발각되는 거였으니까.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붙잡혀간 동료들이 처형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지. 그러면 ‘가서 오늘 누구 목이 매달리는지 살피고 오라’는 임무가 떨어져. 길을 걸어가면서 벌서 교수대를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어……절대 울면 안됐어. 아주 잠깐이라도 그 앞에서 머뭇거려서도 안 됐고, 사방에 스파이들이 깔려 있었거든. 용기라는 말이 그리 적절하지는 않지만, 정말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는지, 얼마나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 했는지 몰라. 아무렇지도 않은 척 태연하게 굴기 위해. 울지 않고 그 옆을 지나치기 위해. -중략

……우리는 두고 온 아이들은 떠올리지 않았어아이들을 생각하면 두려웠거든


 민스크에 도착했는데 남편이 없는거야. 딸은 다샤 이모네에 가 있고, 남편은 내무인민위원회에 붙잡혀 감옥에 있었어. 남편을 찾아갔지……거기서 무슨 소리를 들은 줄 알아? 내 남편이 반역자라는 거야. 남편과 나는 지하단체에서 활동했어. 둘이서 함께. 남편은 용맹하고 정직한 사람이었어. 나는 남편이 억울하게 모함을 받았다는 걸 알 수 있었어……중상모략을 당한 거지……내가 ‘아닙니다. 내 남편이 반역자일 리가 없어요. 나는 남편을 믿어요. 남편은 진정한 공산주의자라고요’라며 항변했어. 그랬더니 남편의 사건을 맡은 예심판사라는 사람이……나에게 소리쳤어. ‘조용히 하시오, 프랑스의 창녀 주제에! 입 다물어!’ 독일군 점령치하에 살고, 포로로 잡히고, 독일로 끌려가 파시스트 수용소에 수감됐던 남편의 모든 이력이 의심을 불러일으킨 거였어. 질문은 하나였어. ‘그러고도 어떻게 살아남았나?’ ‘왜 전사하지 않았나?’ 심지어 죽은 사람들조차 의심의 눈길에서 벗어나지 못했지……우리가 적과 싸웠고 승리를 위해 모든 걸 희생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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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상에 존재했던 어떤 소설도, 어떤 영화도 이것을 다 표현해내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문자로도, 사진으로도, 영상으로도, 그 어떤 것으로도 전체를 담아낼 수 없었죠. 

 그것의 이름은 현실! 리얼리티! 사실이지만 벌어지고 나서 아무리 쫒아가려고 노력해도 무지개처럼 잡힐 수 없습니다. 지난다음에는 무엇으로도 그것을 다 담을 수 없으며, 다 표현할 수 없으며, 다 느낄 수 없으니까. 그것을 겪어낸 사람들조차도 그것을 표현하기 힘들어하니까.

현실은 너무나도 방대하고 잔인하고 일어나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으니까. 소설은 현실 앞에 무력합니다. 그래서 알렉시예비치는 없었던 장르를 만들었죠. 목소리문학이라는.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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