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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시러브 Jan 29. 2024

외할머니를 보내드리고 왔습니다..


일요일 아침.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강력한 슬픔을 간직한 듯한 힘겨운 목소리로.

설마..


"할머니 돌아가셨어."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사실 일주일 전에 엄마에게 전화가 왔었다. 할머니가 지금 다시 병원에 가셨는데 많이 위독하시다고.  병원에서도 오래 못 사실 것 같다고 말했다고.


'나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분명 다시 좋아지실 거야." 이렇게 생각하며 억지로 외면하려 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며칠 후 갑자기 이틀 동안 몸이 무지막지하게 아팠던 게.


특히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하루 전 날에는

몸도 마음도 이상할 정도로 무겁고 힘들었다.


인생은 그런 걸까. 때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일과도 마주해야 할 때가 오는 것.


할머니가 계신 옥천으로 내려가는 길.

겨울인데 비가 내리고 있다. 그 비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든다. 죽음이 진짜 두려운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모든 사람이 결국에는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이 세상에 '죽음'처럼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남겨진 사람이 견뎌야 하는 죽음의 무게는 왜 이토록 무거운 걸까?









장례식장에 도착. 온 가족이 다 모였다.

자식이 넷, 며느리와 사위, 손주가 아홉이다.

거기에 손주사위인 내 남편과 외증손주인 우리 아이들까지.


어릴 때 이후로는 외가 식구들과 다 같이 모이는 일이 적었다. 다 흩어져 있었고 아직 어린 손주들도 있었기에 쉽지 않았지만, 할머니가 편찮으시면서 더욱 어려워졌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모두 조심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할머니는 병원에 자주 계셨던 걸로 알고 있다.


할머니가 살아 계셨을 때 이렇게 온 가족이 모였더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이런 생각이 들다가도, 적어도 할머니 가시는 길은 외롭지 않으시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주들이 다 청년이 되어 나타났으니, 할머니도 든든하셨으리라.


제일 걱정이 됐던 건 입관이다.

13년 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입관하면서 한바탕 울음판이 벌어졌는데 4남매 중 첫째 딸인 우리 엄마가 너무나도 슬프게 울었기 때문이다. 그걸 지켜보면서 뒤에서 가슴이 무너질 듯 아팠다. 내 슬픔과는 감히 비교할 수도 없을 거라 짐작만 할 뿐이다.


둘째 날 오전.

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외할머니 입관 절차가 진행됐다. 역시나. 우리 엄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슬프게 흐느꼈다. 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며 오열하는 엄마를 보면서 걱정이 들면서도,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이렇게 울음을 토해낼까 싶어서 가만히 뒤에서 울면서 지켜보기만 했다.


수의를 입고 누워 계신 할머니를 보는데. 우리 할머니가 이렇게 작았던가. 물론 실제로도 작은 키셨지만 그보다 훨씬 더 작게 느껴질 만큼. 이상했다. 왜 지금 유독 이렇게 작아 보이는 걸까. 이제 다시는 할머니를 뵙지 못하겠구나. 애통한 마음이 들면서 한없이 눈물이 흘렀다.


장례식을 치르는 3일 동안 계속 기도했다.

우리 할머니, 부디 좋은 곳으로 가셔서 편안히 쉬시길.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은

어떤 나이가 되더라도 절대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다.


할머니를 보내면서 다시 한번 깊이 깨달았다. 우리 삶에는 죽음이 있기 때문에 더 잘, 더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걸.


"사람이 죽음을 맞는 그 순간이야말로 한평생 삶을 총 결산하는 시간이다. 한순간, 한순간 충만하게 살아가다 인생의 마무리를 아름답게, 멋지게 수놓을 일이다." 예전에 읽은 책, 김열규 작가의 <그대, 청춘>에서 봤던 문장이다.


하루하루 지금 이 순간을 한없이 소중하게 살면 좋겠다.

더 감사하고 더 사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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