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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현모 Oct 27. 2024

대학 시절, 나의 상담 일대기

대학 시절 여러 차례의 상담을 받았던 터, 마침 최근 어떤 이의 상담 수기를 읽기도 했기에 나의 상담 일대기도 간략히 적어 볼까 한다.


아마 초중고 시절에도 위클래스 같은 곳에서 상담을 받아본 적은 있을 텐데, 기억이 잘 안 난다. 초등학생 땐가, 또래상담사 프로그램 같은 것도 참여했던 것 같고... 아무튼 학년별 담임선생님들과의 진학상담 같은 대화까지 고려하더라도 상담 전문가에게 제대로 된 상담을 받아본 건 대학 진학 이후부터다.


학습상담 같은 건 제외하고, 진로 및 심리상담만 놓고 봤을 때 교내 학생 전체를 커버하는 상담 센터에서 받았던 상담이 하나. 가장 오랫동안 진행했고 가장 좋았던 건 소속 단과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단과대 상담실에서 받았던 상담. 일회성이었지만 전공 관련 센터에서 진로 상담을 받은 적도 있고, 가장 마지막에 받았던 것은 진로 관련 센터에서의 개인 상담이었다.


1. 학교 상담 센터 상담

이 상담은 비대면으로 진행했다. 상담 전 심리검사는 기관에 방문해 대면으로 진행했고, 이후 상담은 전면 비대면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솔직히 말해서 이때의 상담은 아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기대와는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었던 대학생활로 인해 나는 많은 불안과 우울을 경험하고 있었고, 그렇게 예민함이 극에 달한 나와 대생원 상담은 잘 맞지 않았다. 상담 선생님과의 상성이 잘 맞지 않았는지, 비대면이라 한 겹의 벽이 더 놓인 기분이 들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둘 다였을 거다) 상담 시간이 되어도 나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문제는, 내가 비록 상담은 처음이었으나 상담과 관련된 책은 물론, 심리학 책을 상당히 찾아본 이후였다는 것. 나는 이미 각종 상담 수기나 심리학 도서들을 섭렵한 상태였고, 'HSP' '수치심' '가면(페르소나) 증후군' '번아웃' '완벽주의' 이런 키워드들이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이상적인 상담은 이러이러하게 진행되어 내 안의 얽힌 매듭을 명쾌하게 풀어나갈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된 상태였고, 그에 들어맞지 않는 현실에서의 상담이 만족스러울 수가 없었다. 영 맞지 않았던 센터 상담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담이지만 이때 여러 심리학 책을 찾아 읽은 다음 ('다 잘 될 거예요' 식으로 양산되는 에세이 말고 비교적 심리학 지식을 표방하는 책들 말이다) 내게 남은 건 브레네 브라운 교수님과 허지원 교수님의 책. <수치심 권하는 사회>와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는 지금도 내 최애 서가에 꽂혀 있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것치고는 많이 사지 않는(못하는..) 편인 것을 감안했을 때 매우 소중하게 남아 있다는 뜻이다. 수치심이나 취약성 같은 키워드에 관심이 있다면 브레네 브라운 교수님의 영상이나 책을, 그게 아니더라도 삶과 이 세상을 조금 덜 힘들게 살아가고 싶다면 허지원 교수님의 글을 적극 권해 본다. 아마 허지원 교수님의 글은 어디선가 한 문단쯤('실패에 우아할 것') 마주친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에 교수님의 글 일부를 필사해 책상 앞에 붙여놓고 매일같이 곱씹던 시절도 있었는데... 새삼스럽다 참.


2. 단과대 상담

내 단과대에서 운영하는 단과대 상담실은 두 번 찾아갔다. 한 번은 온라인으로, 한 번은 오프라인으로. 첫 번째 상담을 종결한 이후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다 동일한 선생님을 다시 찾아가 오프라인으로 한동안 상담을 진행해 완전히 종결했다. 나는 이 두 번의 상담 시기를 대충 시즌1과 시즌 2 정도로 부른다.


시즌1은 앞서 언급한 1번 센터 상담 시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때라, 내가 굉장히 뾰족하고 예민한 상태였다. 센터에 비해 상담 선생님은 더 좋았지만, 온라인 상담이라는 벽도 동일하게 존재했고 지금 생각해도 내가 많이 까칠했다. 그럼에도 1번 센터 상담에 비해서 훨씬 나와 잘 맞았기에 종결 시기까지 무사히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원래 에세이든 일기든 팩트와 행적보다는 나의 생각과 감정을 많이 적는 편인데, 이때 상담과 관련된 기억은 정말 별로 없다. 기억이 잘 안 난다. 힘들었던 시기는 쉽게 잊히는 걸까.


그리고 시간이 지나 이루어진 상담 시즌2. 이전과 동일한 선생님과 상담을 진행했다는 게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진짜 생각과 말이 많은 사람이고, 평소에도 항상 나에 대해 생각하고 나를 알아가며 살아가기 때문에 상담을 한 번 하려고 하면 나에 대해 할 말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새로운 상담사를 만날 경우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언제 내 이야기(=상담을 위해 상담사에게 들려주어야 할 내 과거사)를 다 말하나...' 였다. 그러나 나를 아시는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이 부분은 가볍게 생략할 수 있었다.


상담 선생님께서 시즌1과 시즌2의 내가 정말 달라보인다고 하신 게 기억난다. 두 차례의 상담 사이에 나는 학교생활에 꽤나 적응하기도 했고, 동아리 같은 각종 교내활동과 인턴을 비롯한 대외활동을 경험하며 여러모로 변해 있었다. 그래서 시즌1에서는 불안과 우울을 털어놓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힘썼다면, 시즌2에서는 그보다는 나아진 상태에서 나의 예민함 같은 요소를 잘 다루고 살아가기 위한 이야기를 나눴다. 짧지 않은 기간 진행된 두 번째 시기의 상담이 당시의 내 바쁜 일상을 잘 굴러가게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한다.


상담과 관련한 이야기는 해도 해도 끝이 없지만, 요약하자면 '내가 나로 더 잘 살 수 있게 해준 시간'이었다고 하겠다. 살면서 나를 바꿔가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에, 결국 인생의 과제는 '내가 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 자신을 파악하여 이런 나를 데리고 잘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일 테다. 그 과정에서 상담이 큰 도움이 되었다. 상담 시즌2 종결을 앞두었을 때, 상담 초기에 비해 할 말이 부쩍 줄어든 내 모습을 보며 '나 정말 많이 성장했고 나아졌구나' 하고 실감하는 동시에 '앞으로 상담 없이도 내가 잘 지낼 수 있을까?' 하고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기억이 무색하게, 상담을 진행하지 않는 지금 나는 잘 지내고 있다. 혼자 일기를 쓰며 일종의 셀프 상담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가끔 상담 선생님을 떠올리며 '선생님이라면 이 고민을 듣고 어떤 말씀을 해주셨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아무튼 그때 닦아둔 기틀과 원동력으로, 나는 무탈하게 살아가고 있다.


3. 진로상담

전공 관련 센터에서 진로상담을 한 번 받은 적도 있다. 사실 이미 다전공을 확정한 상태였고 기껏해야 부전공을 복전공으로 올릴지 말지 정도만 망설이던(그러나 올리지 않을 확률이 높은) 차였기에 이 센터에 가도 되나 싶었지만 어쨌든 갔다. 이곳에서의 상담은 글쎄, 평범했다. 나는 보통 결정을 내릴 때 남의 조언을 잘 청하지 않는 편이다. 성격이 급하고 호불호가 확실해서 그냥 내가 결정하는 게 빠르기도 하고, 애초에 생각을 많이 하기 때문에 내 생각들을 정리하다 보면 답이 나온다. 그렇지만 타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선택을 다시금 확신하고 생각을 정리하게 될 때도 있는데, 이곳에서의 상담이 그랬다. 교환학생을 강력 추천하시는 상담 교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역시 내가 해외생활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고, 당시 내가 고민하던 두 진로에 대한 교수님의 의견을 듣고 내가 어떤 부분을 반박하고 싶어지는지 실감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한 시간의 상담으로 향후 수십 년을 좌우할 결정을 쉽사리 내릴 순 없었다.


4. 진로 센터에서의 개인상담

대학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받은 상담은 진로 관련 센터에서 진행된 개인상담이었다. 명목상 진로상담이긴 했으나, 사실상 진로 고민에는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주 밀도 높게 결부될 수밖에 없다 보니 일반적인 개인상담처럼 진행된 면도 없잖아 있었다. 그러니까 나라는 사람의 개인적인 면모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진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상담이었던 거다. 이때의 상담은 이전의 상담들과는 또 달랐는데, 상담 초반에는 상담 선생님과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으나, 오히려 그 사실을 터놓고 이야기하다 보니 더 라포(rapport)가 잘 형성되어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상담을 통해 '진로 고민 끝!' 처럼 손쉽고 명확한 해결책을 찾아낸 건 아니었지만, 그 시기의 나를 좀 더 다잡고 눈앞의 선택지들을 구체화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받았다.



여러 차례의 상담은 대학 시절 나를 지탱해 준 든든한 기둥들이자, 어떤 면에서는 대학 등록금을 아주 알차게 활용하게 해 준 알찬 시간들이었다. 상담 선생님들, 그리고 그분들과 보낸 시간들 덕분에 대학 시절을 통과하기 전과 후의 나는 전적으로 다른 사람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토록 생각이 많고 예민해서 사는 게 피로하다 느끼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상담을 받지 않는 게 인생 하드 모드를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라 여겨질 정도로, 나에게 상담은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당연하게도 상담이 인생의 모든 걸 해결해주진 않는다. 다만 자기 자신의 삶을 더 잘 꾸려나가는 게 든든한 응원과 지지, 안내를 제공할 순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안내보다는 길동무에 가깝지만. 좋은 상담사를 만날 수만 있다면, 정말로 그건 가능하다. 이런 한 개인의 상담 수기가 누군가에겐 상담에 관심을 가지는, 혹은 좋은 상담사를 만나는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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