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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현모 Oct 11. 2021

그래도 괜찮다는 마음

때때로 꼭 필요한 혼잣말

어떤 날은 좋고, 어떤 날은 그리 좋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 볼 때 좋은 순간들이 남아 있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닐까. 조금 전 불현듯 든 생각이다. 기분도 그렇고 성과도 그렇고, 삶에서 참 많은 것들이 우상향 그래프만을 그리며 변화하지는 않는다. 계단 모양으로 천천히 상승하며 때로는 수평을, 때로는 수직을 그리기도 한다. 사분원 모양으로 휘어지듯 움직이며 초반에는 가파르게, 후반에는 느리게 나아가기도 한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곡선의 연속을 따라 불규칙적으로 올라갔다 내려오기를 반복하기도 한다. 특히 내려가는 순간을 겪을 때, 꽤 좌절스러울 때가 많다. 이 변화가 긍정적인 것은 맞는지, 이 모든 움직임 자체에 대한 의문이 드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렇게 내려감과 부침을 겪어 이리도 힘들다면 이 순간들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혼란스러워진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순간들이 있기에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이 좋을 순 없다. 매일이 좋을 수도 있지만, 아주 어려운 일이다. 오늘 좋다고 느낀 것이 내일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을 수도 있고, 매일이 좋은 것 같다가도 어느새 좋음의 기준이 올라가버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좋은 순간들, 좋은 날들이 분명 존재한다. 일주일 내내 울적한 것 같은 때에도 문득문득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순간이 오는가 하면 잠시나마 기분이 상쾌해지는 찰나도 있다. 계속해서 바다에 빠져 있는 것만 같은 몇 주, 몇 달, 혹은 몇 년이 계속되더라도 분명 숨을 쉬기 위해 수면 위로 올라오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물 밖으로 나오는 시간이 처음에는 한 달에 한두 번, 일주일에 한 번이더라도 시간이 흐르다 보면 조금씩 더 잦은 순간들이 반복된다. 일주일에 두 번, 세 번, 네 번... 그러다 보면 바닷속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물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나를 적시는 물보다 물기를 날려 보내는 바람과의 시간이 더 많아질 때, 그래서 내가 더는 습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될 때, 나는 비로소 물 밖의 나를 알게 된다.


이 모든 게 끝날까? 아니, 이제 나는 영원한 끝은 믿지 않는다. 완벽한 끝이란 없을 거다. 그렇지만 어느 시점 이후, 정도는 가정할 수 있겠지. 물 밖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자연스러워질 때가 바로 그런 시점일 거다. 물 밖에서의 자유를 누리면서 바닷속에 온종일 잠겨 있던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 그 끝없어 보이던 어둡고 축축한 시간 속에서도 기억에 남는 것들이 분명 존재할 거다. 바닷속에서 발견했던 새까만 어둠이라거나, 아주 잠깐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 마주한 석양이라거나 뭐 그런 것 말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모든 게 그리 나쁘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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