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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따스하고 서늘한, 시선을 담아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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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송현모 Oct 12. 2021

솔직한 이야기

솔직한데 어떻게 담백할 수 있을까

자기 자신에게 얼마나 솔직해질 수 있는가. 스스로에게 더할 나위 없이 솔직하되 주변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필수적인 예의와 다정을 갖출 수 있는가. 선뜻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나조차도 내가 스스로에게 얼마나 솔직한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종종, 나는 스스로에게조차 보이고 알리고 싶지 않은 생각과 기억들을 무의식 저편으로 밀어 넣고 애써 잊으려 한다. 돌이키고 싶지 않은 실수라거나, 이기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소망이라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스스로에게 솔직하되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솔직함을 전부 드러내지 않는 것보다는, 나 자신과 다른 사람 모두에게 속마음의 일부만을 보여주는 것이 나에게는 더 편하다. 어쩌면 나 자신까지 속이는 것이겠지만, 최소한 일관성은 있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나는 왜 속마음을 그 누구에게도,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는 것일까? 내가 유별나게 나쁘고 비도덕적인 사람이라거나 숨길 것이 많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기준이 매우 높고 잣대가 엄격하며 완벽을 지향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매사 모든 것에 스스로가 완벽하길 바라고, 모든 순간과 상황이 완벽하길 바란다.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 비슷한 무언가에라도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소망한다. 그래서 완벽하지 않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기가 쉽지 않다. 이렇듯 나라는 무척 까다롭고 까탈스러운 사람을 만족시키기가 쉽지 않으니, 차라리 다른 사람들에게라도 완벽한 사람이 되어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길 바란다. 하지만 그 역시도 실현 가능하지 않다는 걸 나는 늘 잊고 싶어

한다.

모든 사람의 취향을 맞추는 건 불가능하다. 열 명의 사람이 있으면 그중 두세 명은 나를 좋아할 것이고 한두 명은 나를 싫어할 것이며 나머지는 별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듯 내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든 그 법칙은 비교적 비슷하게 유지될 것이니 그냥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은 대로 살라는 교훈을 주려는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상황에서마저 몇 명이라도 더 내 편으로 끌어들이고 싶고 모두가 행복했으면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대할 때 최선의 답변, 최선의 반응, 최선의 행동을 하고자 노력한다. 내가 건네는 말이 좋은 위로가 되기를, 내가 주는 도움이 유의미한 일이 되기를, 나라는 사람의 존재가 좋은 버팀목이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는 달성할 수 없는 목표이다. 그 누구도 나를 완벽히 마음에 들어 할 수는 없고, 설령 그렇다 해도 나 자신이 그 사실을 확신할 수 없으며, 인간인 나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더욱더 많은 이들이 나를 좋아하기를 소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다는 마음은, 나를 자꾸만 움츠러들고 눈치 보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어느 정도 본능적으로 분위기와 사람의 기분을 느낀다. 그리고 분위기가 좋지 않거나 주변에 있는 사람의 기분이 좋지 않으면 설령 거기에 내 잘못이 하나도 없더라도 일말의 책임을 느끼고 그 상황을 타개하고 싶어 진다. 어떻게 보면 매우 이타적인 행동이면서도 어리석은 행동이고, 어떻게 보면 사실 이기적인 행동이다. 내가 사람들의 기분과 상황을 나아지게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은 그에 영향을 받는 나 자신의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서라는 목표 하에 갖는 소망이기 때문이다. 이런 성향이 진정으로 이기적인 것인지, 이타적인 것인지는 잘 가늠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를 힘들게 만든다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MBTI를 완벽히 믿는 것도 아니고, 잦은 언급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런 나의 성향이 ENFJ라는 성격 유형과 많이 흡사하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내가 해당하는 유형인 ENFJ는 매우 희귀하다는데, ENFJ였던 사람들이 그 성격을 가지고 사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변해 버려 얼마 남지 않기에 그렇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반드시 ENFJ라고 일반화하지만은 않더라도, 나와 같이 예민하고 생각이 많은 성향은 때로 힘겹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많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더 편하게 살기 위한 노력 내지는 방어기제로서 점점 무언가를 포기하거나 무언가에 일부러 무감각해지려는 선택을 하게 된다. 사실 나는 이렇게 무언가를 포기하고 둔해지려 하는 선택이 정말 싫다. 하지만 원래의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내 성향을 온전히 발휘하며 사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그 싫음조차 감수하고 점점 무뎌지는 것이다.

솔직함이라는 단어로 글을 시작했더니 생각보다 더 솔직한 글이 되고 말았다. 이미 나 자신에게는 솔직하게 토로하고 직면한 이야기였지만 글로 쓰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첫 문단에서 이야기한 스스로에게의 솔직함이라는 화두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이 글을 통해 스스로의 어떠한 측면을 솔직하게 드러냈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 싶다. 거짓을 말하며 진실을 가리는 것이 아닌, 진실의 일부만을 말하는 것으로 스스로의 솔직하지 않음을 정의하고 있는 지금이지만 앞으로 솔직함에 대해 더 많은 고민과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오늘과 또 다른 생각의 결이 생겨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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