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 _ 2부

장면 4

by 실마리

# 북한산 1


//네가 여기 있을 줄 알았다.

//그래? 술이나 더 사 오지 그랬어.

//이미 넌 많이 취했어. 그리고 지금은 오전 9시야. 정신 차려.


그들은 북한산 자락의 야트막한 모서리에 앉아 있다. 해는 구름 속에 가려 어스름한 기운을 자아내고 있었다.


//자, 내려가자. 내가 잘 아는 순두부 집이 있으니 거기 가서 해장하자.

//잠깐, 여기서 조금만 더 있자. 시원하잖아.

//술 먹고 산길 오르는 것은 자살행위야. 도대체 어떻게 여기에 왔니?

//여기는 내가 버려진 곳인 동시에, 구원을 얻은 곳이기도 하지...

//뭐?

//난 고아야.


정수는 알고 있었다. 저토록 무거운 고독이 용재의 주위를 휩싸고 있었음을. 직감적으로 용재를 처음 만났을 때 정수는 이미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 그런데 고아란 단지 고독의 정도가 심한 인간일 뿐인 것 아닌가? 인간은 원래 고독한 법이지.

//훗훗. 그런가? 대단하시군그래.

//넌 원래 문학을 했어야 한다고 그러더군, 누군가가.

//웃기는 얘기군. 그래, 난 참으로 할 말이 많아.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야. 내가 꼬부랑 할아버지가 됐을 때는 가능할지 모르겠군.

//도대체 뭐 그리 할 말이 많은 거지. 너만 고민이 있는 건 아니야. 모든 사람은 누구나 다 고민이 있어. 자신만이 절망적인 고민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큰 오산이야.

//훗훗. 그래? 그런 거야? 그럼 먼저 네 고민부터 털어놔 보시지그래.

//넌 먼저 상대방의 마음을 긁지 않고 얘기하는 것부터 배워야 해. 그리고 맨 정신에 얘기하는 것도.

//날 훈계할 생각은 마! 도대체 니가 뭔데 내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야! 꼴도 보기 싫어! 어서 꺼져 버려!

//하하하.

//웃어?

//내가 누구냐구?


정수는 용재의 시선을 피하여 멀리 고봉을 바라보았다.


//난 네 친구일 뿐이야. 그냥 친구 말이야. 친구는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지.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친구는 또 그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을 그냥 하면 돼. 그런 거 아닌가, 친구는?

//감성을 자극하지 말어.

//그것도 내 자유야. 친구로서 말이야. 안 그래, 친구!

//도통 말이 통하지 않는군.

//...

//어디야, 그 순두부 집이. 속이 퍽 쓰려. 어서 가자. 나 돈 한 푼 없다.


정수는 용재를 부축하여 비탈을 걸어갔다. 이윽고 얼마 가지 않아 구기터널 근처의 작은 순두부 집에 당도하게 되었다.


//아주머니, 여기 2인분이요.

//오랜만에 오셨구만그래. 웬일이여, 식전 댓바람부터.

//예, 그렇게 됐습니다.

//알았슈. 내 맛있게 해 줄게.


좀 있다가 아줌마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작은 항아리 하나를 들고 왔다.


//야, 이거 장난 아니네. 아줌마 잘 먹겠습니다.

//모자라면 더 청하시유.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용재는 정수의 어깨에 기대어 곯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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