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 삶은 고구마
외부 평가 대신 나다움을 선택하기까지,
고민 많은 9년 차 마케터의 솔직한 회고.
여전히 일은 어렵고 매 순간 헷갈립니다.
정답은 없으니 그저 기록합니다.
고구마는 비교와 불안 속에서 자라나
나다움과 온기로 천천히 익어가는 중입니다.
오늘도 나답게 살고 싶은 당신에게 전합니다.
"그러니, 고구마 사세요"
팀원이든 리더든, 대행사 마케터든 인하우스 마케터든, 환경이 달라질 뿐 결국 나는 같은 나다.
어느 정도는 맞다. 문제를 정의하고, 목표를 세우고, 실행하고, 결과를 복기하는 일의 본질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다만 롤이 바뀔수록 일보다 달라지는 건 또 다른 나다.
언론사 프로모션 마케팅 기획자
처음 팀원으로 일할 때의 나는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대부분의 에너지였다. 숫자, 결과물, 칭찬, 다음 프로젝트. 이 모든 게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더 할 수 있지 않나.” “이 정도면 부족하지 않나.” 그 질문이 나를 성장시키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를 갉아먹기도 했다. 팀원이라는 롤은 내게 한 가지를 쉽게 허락했다. 더 많이 버티는 것. 버티는 사람이 성실한 사람처럼 보이니까.
글로벌 마케팅 대행사 AE
대행사 마케터로 있던 시간은 그 버티는 습관을 더 빠르게 익히게 만들었다. 대행사는 속도가 곧 실력이고, 설득이 곧 생존이다. 나는 여기서 문서로 생각을 구조화하는 법을 배웠고, 요구사항을 정리하고, 짧은 시간 안에 그럴듯한 최선을 만들어내는 법을 배웠다. 누군가의 평가가 곧 다음 일을 결정하고, 다음 일이 곧 내 커리어가 됐다. 다만 그 룰에 오래 있으면 나의 기준이 얇아지는 순간이 온다. 나도 모르게 내면의 원함이 아닌 외부의 맞음을 기준으로 사고하고 행동했다.
콘텐츠 플랫폼/커머스 앱 마케터
인하우스로 옮긴 뒤엔 책임감이 더 커졌다. 인하우스는 우리 문제를 안고 가는 곳이다. 캠페인이 끝나도 일은 끝나지 않는다. 실행 이후 운영이 남고, 개선이 남고, 고객이 남는다. 같은 숫자여도 무게가 달랐다. 대행사에서는 속도가 강점이었는데, 인하우스에서는 그 속도가 종종 조율을 건너뛰는 약점이 되기도 했다. 반대로 대행사에서 예민했던 감각은 인하우스에서 운영 기준을 세우는 힘이 되기도 했다.
팀원에서 리더로
그리고 리더가 되었을 때, 나는 또 다른 나를 만났다. 리더가 되면 업무 스콥이 넓어진다. 내가 잘하는 걸 넘어 잘하지 않는 영역도 책임져야 한다. 내 손으로 해결하던 문제를 다른 사람의 손으로 해결하게 만들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사람의 감정과 속도를 함께 다뤄야 한다. 나는 문제를 보면 빨리 해결하고 싶어 했다. 내가 가져가면 통제할 수 있고, 통제하면 덜 불안하니까. 어느 순간부터 그건 팀을 위한 방식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사람들은 스스로 판단할 기회를 잃고, 대신 지시를 기다린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리더십이란 많이 안다는 걸 넘어 다른 사람이 판단할 수 있게 구조를 만들어주는 것이라는 걸.
롤이 바뀔수록 나에게 반복해서 나타난 공통점도 있다. 나는 욕심이 많고, 책임감이 강하며, 촘촘하고 계획적이다. 이건 내가 좋아하는 나의 면이다. 동시에 나는 쉽게 과열되고, 불안을 성취로 덮고, 버티는 걸 미덕으로 착각한다. 이건 내가 경계해야 하는 나의 면이다.
물론 변화는 늘 불편하다. 익숙한 정체성이 흔들리고, 내가 잘하던 방식이 통하지 않는 순간이 오면 자존감도 흔들린다. 그건 내 습관과 기준이 더 선명해지고 성장하고 있다는 신호다. 어떤 환경에서 내가 빛나는지, 어떤 스콥에서 내가 닳는지, 어떤 관계에서 내가 과열되는지. 이건 책으로 배우기 어렵다. 직접 겪어봐야 보인다.
역할이 바뀌면 나는 바뀐다. 하지만 본질이 바뀌는 건 아니다. 그저 다른 방식으로 드러난다. 팀원일 때는 증명 욕구로, 대행사에서는 외부 기준 민감도로, 인하우스에서는 책임과 완벽주의로, 리더일 때는 통제와 떠안기로. 내가 나를 제대로 관찰하면, 롤 전환은 나를 정교하게 만드는 과정이 된다.
우리는 스스로가 다양한 상황과 역할을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본인만의 온도를 알아차리고, 불을 조절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기준과 습관이 결국 내 체온(생명)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경험이 쌓인다는 건
나를 해석할 테이터가 쌓인다는 뜻이다
오늘의 데이터.
당신이 가진 데이터를 통해 도출된 당신은 어떤 포지션에 최적화된 사람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