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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균 Sep 11. 2022

위례 9월, 추석

추석에 만월이 뜨면 누구나 같은 생각을 한다.

지난 7월과 8월, 찌는듯한 더위에 온종일 선풍기를 틀고 에어컨을 켠 채 여름을 보냈다. 올 여름은 다른 해보다 무척 더웠다. 미디어가 그렇게 말을 했고, 내 육체가 그 말을 반대하지 않았다. 덕분에 아파트 관리비의 전기료 항목 숫자가 예년보다 훨씬 큰 숫자로 바뀌어 나왔다. 난 아파트관리비 고지서를 보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주식의 가치도 그렇게 커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선풍기를 틀고 에어컨을 켜도 물러가지 않던 더위는 9월이 되면서 거짓말처럼 제 몸의 열기를 낮췄다. 자연 앞에서 인간의 기술은 하찮은 것이었다. 새벽녘 침대 위에 개어져 있던 이불을 끌어당기는 잠결 속에서 난 그것을 느꼈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있었다.


오늘은 추석이다. 올해 추석은 여느 때보다 일찍 찾아왔다. 고향도 가지 않아 특별히 갈 곳이 없는 나는 또 특별히 할 일이 없다. TV는 재탕 삼탕으로 볼 만한 프로그램이 마땅치 않고, 추석날 서재에 들어앉아 책을 읽기도 민망하다. 하루가 너무 빨리 간다며 소파 누워 게임을 하고 있는 아들을 꾀어 휴먼링(위례휴먼링은 남위례 일부를 두르고 있는 길이 약 5km에 달하는 산책길이다. 좌우 양측으로 호수공원과 천변공원이 있고, 산책로 옆으로는 마가목, 자귀나무, 산딸나무, 흰말채나무, 개쉬땅나무, 벚나무, 느릅나무, 은행나무 등이 있으며, 철따라 철에 맞는 꽃이 핀다.)이나 몇 바퀴 돌자며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 처음엔 재미없어 하던 아들이 몇 바퀴 돌더니 재미가 있는지 집에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위례호수공원, 몇 주 와 보지 않은 사이 어지럽던 천변이 호수공원으로 변해 있었다. 

하늘이 더없이 높고 푸르다. 구름마다 제 각각 멋이 있고 겨드랑이를 스치는 바람이 시원하다. 흉노의 말이 살찌는 천고마비天高馬肥는 오래전 일이라 나와는 상관이 없다. 나는 말을 대신해 자전거를 탄 게 아니다. 휴먼링 산책로의 산수국이 화사한 자태를 뽐낸다. 산사나무는 작고 빨간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았다. 마가목도 질세라 탐스런 주황 빛 열매를 주저리주저리 가지마다 늘어놓았다. 저만치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까치가 산딸나무 빨간 열매를 물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황매화는 제 색을 잃어 바랬는데, 그것 또한 자연의 일이었다. 아들은 오랜만의 일탈에 신이 난 듯 자전거의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몇 주 오지 않은 사이(그랬다. 한동안 글도 쓰지 않았고, 책도 읽지 않았고, 산도 찾지 않았고, 휴먼링을 찾지도 산책도 하지 않았다. 의미가 없었고, 무슨 소용이랴 싶었다.) 관할지자체에서 휴먼링 끄트머리 천변을 정리하고 위례호수공원이라 이름 붙여 놓았다. 내가 보기에 좋았다.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한다. 연인도 있고, 가족도 있고, 혼자도 있다. 햇볕이 알맞고, 기온은 서늘해서 산책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다. 공원 한편의 장미밭이 예쁘다. 갑자기 “장미를 꺾으려면 가시에 찔릴 생각을 해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오늘 대한민국 어디서나 꽉 찬 보름달, 만월滿月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 달을 보며 오래된 소원 몇 개를 빌어야겠다. 자전거를 타고 새로 생긴 위례호수공원을 지나며 나는 뜬금없이 그런 생각을 했다. 소원을 빌어야겠다. 소원을 몇 개 빌어야겠다....추석에 만월이 뜨면 누구나 같은 생각을 한다.


P.S. 기상청의 예보에도 불구하고 추석 만월은 구름에 가리어 그 빛을 절반만 보여주었다. 그렇다고 나의 소원을 반만 빌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내 소원의 전부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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