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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균 May 15. 2024

“부르고뉴가 신의 은총이면, 보르도는 사람의 창조물이다

와인의 여정도 생로병사 하는 인생을 닮았다

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신은 물을 만들었을 뿐이지만, 사람은 와인을 만들었다.”고 했다. 와인은 떼루아르에서 태어나던 그 순간부터 사람의 몸으로 흡수되기까지, 길거나 혹은, 짧은 여정일지라도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 와인은, 와인병 안에서조차 성장하고 숙성하고 노화한다. 그래서 와인의 일생을 보면 마치 ‘생·로·병·사’하는 사람의 일생과도 닮았다.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은 “한 병의 포도주엔 세상의 어떤 책보다 많은 철학이 담겨있다.”고 했다.

  

떼루아르, 샤또(Chateau), 구대륙, 신대륙, 효모, 발효, 2차 발효(malo-lactic), 오크통, 바리끄, 피에스, 토노, 푸드르, 숙성, 시음, 떫은 맛, 둥근 맛, 산도, 바디, 드라이, 잔당, 시각, 후각, 미각, 여운(P.A.I, Persistance Aromatique Intense), 다리(jambes), 눈물(larmes), 마리아주, 빈티지, 무수아황산, 까베르네 쇼비뇽, 메를로, 피노 누아, 샤르도네, 까베르네 프랑, 쇼비뇽 블랑, 말벡, 쉬라즈, 네비올로, 산지오베제, 네그로 아마로, 뗌쁘라니오, 까르미네르, 진판델, 보르도, 부르고뉴, 론, 알자스, 소테른, 피에몬테, 토스카나, 리오하, 리베라 델 두에로, 두오루, 산토리니, 라인가우, 모젤, 바하우, 나파 밸리, 마이포 밸리, 바로사 밸리, 멘도사, 말버러, 스텔렌보시, 콘스탄치아, 그랑 크뤼(Grand Cru), 비욘디 산티, 베가 시실리아, 브루넬로 디 몬달치노, 로쏘 디 몬달치노, 수퍼 투스칸, 사시카이아, 티냐넬로, 솔라이아, 오르넬라이아, 미셸 롤랑, 자코모 타키스, 카를로 페리나, 로버터 파커, 블랜딩, 아로마, 부케, 퓌마, 5대 샤또, 샤또 오존, 샤또 라피트 로스차일드, 영화 ‘사이드웨이’에서 마야가 마일스에게 “특별한 날에 따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슈발 블랑을 따는 그 순간이 그때가 최고의 순간인거에요.”라고 말한 ‘샤토 슈발 블랑61’, 샤토 마고, 뵈브 클리코(‘카사블랑카’에서 잉그리드 버그만이 험프리 보카트에게 “‘뵈브 클리코’라면 남겠어요.”라고 한 그 ‘뵈브 클리코’), 콩트 샹파뉴, 귀부병(Botryitis Sinerea), 샤토 디껨, 프란치아코르타, 피작, 핀구스, 소시앙드 말레, 모렐리노 디 스칸사소, 세냐, 돈 멜초, 알마비바, 오푸스 원, 우니코, 바롤로, 바르바레스코....

   

최근 와인에 깊이 빠졌다. 형편을 넘어서는 고가(내 기준에서)의 와인 몇 병을 샀고(물심양면으로 아내의 공헌이 지대했다. 할인하는 매장을 찾아 직접 사 주기도, 찾는 와인을 온라인에서 어렵게 찾아 구매해 주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활비에서 와인 구매 명목으로 10만 원이라는 거금을 떼어 놓는 통 큰 배려를 했다),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수량의, 그렇게 싸지도 않은 수십 병의 와인을 사서 와인셀러에 쟁여 놓았다. 이 중 몇 병은 혼자서 또는 지인과 마셨으나, 고가의 와인은 가치도 모른 채 마실까 두려워 손도 대지 못했다. 그래서 수시로 인터넷에서 와인 지식을 검색하고, 와인 책도 4권을 읽었다. 한 권은 삼독三讀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 아직 ‘부케’와 ‘퓌메’는 고사하고 ‘아로마’조차 구분하지 못한다. 겨우 라벨 읽는 법 정도나 알까.

     

「실버라도, 실버 오크, 알마비바, 알마비바 EPU, 세냐, 돈 멜초, 샤또 딸보, 꼬네따블 딸보, 오봉 클리마 피노 누아, AXI, 이스까이 말벡, 꽁떼 디 깜삐아노 아피시멘토, 포스트마크, 페시지 카베르네 쇼비뇽, 케이머스 나파밸리, 케이머스 캘리포니아, 조셉 팰프스, 오스틴 호프 파소 로블레스, 호프 패밀리 퀘스트, 오린 스위프트 팔레르모, 저스틴 카베르네 쇼비뇽, 저스틴 아이소셀레스, 저스틴 저스티피케이션, 샤또 뽕떼까네, 오푸스 원, 마시 코스타세라 아마로네, 바롤로, 테누타 산 귀도 귀달베르토, 페이라노 이스테이트 올드 바인 진판델, 페이라노 이스테이트 카베르네 쇼비뇽, 소시앙도 말레, 라 드무아젤 드 소시앙도 말레, 로마네 꽁띠, 레 볼테 테누타 델 오르넬라이아, 틴토 페스케라 알레한드로 페르난데스, 모스카토 다스티 토조, 펜폴스 389, 동 페리뇽, 모엣 상동, 말도나도 파 빈야드 샤르도네, 파밀리아 마로네 랑게 샤르도네 메문디스」는 내 모바일 노트에 올려져 있는 와인 목록이다. 이중 절반 정도는 와인셀러에 누워 있고, 절반 정도는 구매 목록에만 올려져 있다.(구하지 못해서 와인 셀러에 눕지 못한 ‘태양의 피’도 있는데, ‘페이라노 이스테이트 올드 바인 진판델’ 같은 경우가 특히 그런 와인이다. 가격이 비싸지 않은 것이 큰 장점인데, 와인숍에서는 가격이 너무 올라 수입상이 수입을 안 한다고 했다. 다시 수입하게 되면 가격이 많이 오를 것 같다는 예상이다. 들어오면 꼭 연락을 달라고 했다. 이 와인은 무려 120년 이상 된  캘리포니아의 포도나무에서 수확한 포도로 와인을 만든다고 한다. “오래된 포도나무의 와인을 마셔라.” 누군가 이야기했다) 구대륙과 신대륙의 와인이 뒤섞여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신대륙 와인이 많은데, 진입장벽이 다소 있는 구대륙 보다 맛이 둥글둥글해 누구나 선호하는 신대륙 와인이 내게 더 잘맞는 것 같다. 얼마 전 면세점에서 신대륙 호주의 ‘펜폴즈 389’(직전해의 ‘펜폴즈 그랜지’에 사용된 오크통을 사용한다. 그래서 ‘Baby Grange’라는 별칭이 붙었다) 한 병을 현금 80달러를 주고 샀다. 면세점 직원이 원래 가격은 145달러라고 했다. 믿거나 말거나. 어쩌면, 요즘 나는 와인에 미쳐 있는 것 같다.

     

와인 애호가는 말한다. “와인이 열리는 순간 그의 영혼은 우리에게 날아오고, 향을 맡고 입에 대는 순간 우리는 이미 다른 세계로 날아가 있다.” 또 다른 와인 애호가도 말한다. “좋은 와인은 비싼 와인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맛이 적절한 균형감을 이룬 와인이다.” 그러면서 그는 또 말한다. 평범한 와인이라도 동료들과 함께 마시는 것이 좋은 와인을 혼자 마시는 것보다 즐겁다.” 나도 그렇다.

   

“나는 와인을 아주 많이 마시고 싶다. 내가 무덤에 들어갔을 때 와인 향이 넘쳐나서, 그래서 전날 반쯤 취한 취객들이 내 무덤을 방문하러 왔을 때 무덤에서 나온 향에 만취할 수 있도록....” 11세기 페르시아 시인 ‘오마르 하이얌’의 말이다. 어떤가? 와인을 사랑한다면 한번 따라해 보고싶지 않은가?


P.S. 제목 ‘부르고뉴가 신의 은총이라면, 보르도는 사람의 창조물이다’는 프랑스 배우 ‘쟈크 패랭’의 말이다. 부르고뉴는 자연이 준 것을 그대로 유지하고, 보르도는 자연이 준 것에 인간의 노력을 더한다는 말이다..“전통이 풍부한 구세계는 때로 사라진 전통을 다시 모으고 재건하여 부활시킨다. 전통이 빈약한 신세계는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 낸다.”, “포도 품종이 이름이라면 테루아르는 성이다.”, “한 병의 와인은 나눔을 전제로 한다. 나는 결코 인색한 와인 애호가를 만난 적 없다. 최근 삼독三讀까지 한 ‘와인 읽는 CEO’<21세기 북스, 안준범, 2009>라는 책에서 발췌한 글이다. 나는 이 책을 10년도 더 전에 누군가로부터 선물을 받아 오랫동안 책꽂이에 꽂아 두었다가(책 가장자리가 누렇게 변해 있을 정도였다) 최근 와인에 흥미를 가지면서 세 번이나 읽었다. 이 책은 와인에 관한 전문 서적이라기 보다 와인을 매개로 한 인문학 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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